이-팔, '평화적 수단에 의한 평화' 필요

이-팔, '평화적 수단에 의한 평화' 필요

[ 11월특집 ]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 4)평화적 관점

표현모 기자 hmpyo@pckworld.com
2023년 11월 24일(금) 09:14
지금, 국제 정치질서와 안보는 10년 전에 비해 현저히 악화됐다. 전 세계적으로 더 많은 전쟁과 분쟁이 일어나고 있다. 많은 국가가 더 많은 군사비를 지출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더 많은 사상자가 발생하고 있다. 미국과 중국의 갈등은 지역과 세계의 안정을 뒤흔들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비평화적이고 폭력적인 상황이 점점 심해지면서 전쟁을 예방하고 종식할 수 있는 국제사회의 메커니즘도 무력화됐다. 기후변화로 폭염, 가뭄 및 홍수가 수백만 명의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심각한 식량 불안정이 증가했고 막대한 인명 피해와 경제적 비용이 발생했다.

요즘은 '평화적 수단에 의한 평화(peace by peaceful means)'가 더욱 절실한 시기이다. 군비증강과 힘에 의한 평화를 이야기하며 군사동맹과 군비경쟁의 국제 관계 속에서 시민들은 점점 더 평화롭게 살 권리를 찾지 못하고 희생되고 있기 때문이다. 시민들이 가져야 하는 생명 옹호의 가치, 인권 존중의 가치, 분쟁 예방의 가치는 적대와 혐오, 전쟁과 폭력의 문법 앞에 여지없이 무너지고 있다.

우리는 지난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시작된 이후로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사상자와 난민이 발생하고 있는지 알고 있다. 영토를 조금 더 확장하려는 양국의 전쟁 속에 무고한 시민들은 자신들의 평화적 삶을 보호받지 못하고 국가에 의해 평화의 권리를 위협받고 있다. 우리는 약탈과 폭력, 끝없이 반복되는 보복과 학살이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또 다른 공간에서의 무력 충돌을 보고 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를 통치하는 하마스의 분쟁으로 시작된 전쟁은 한 달을 넘어섰다. 이곳은 문명사적으로는 메소포타미아, 이집트, 헬라 문명이 교차하는 지역이자 유대교, 이슬람교, 기독교의 발원지이도 하다. 그러나 이 오랜 분쟁은 평화로 이어지지 못했다. 하마스의 공격으로 이스라엘의 사망자는 1400여 명이 되었고 하마스가 이스라엘에서 인질로 끌고 간 사람들이 240여 명에 이른다. 이후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을 무차별 공격했고 그 결과 가자지구에서 1만여 명이 넘는 사람이 사망했다. 이 중 어린이는 약 4100명을 넘어서고 있다. 유엔 팔레스타인 난민구호기구(UNRWA)는 "전쟁 중 평균적으로 10분에 한 명씩 어린이가 죽고, 두 명이 다치고 있다"라고 밝혔다. 국제인도법은 전쟁 중에도 병원을 보호 대상으로 규정하고 있지만 이스라엘은 하마스의 지휘 본부가 있다고 주장하며 병원 공습을 멈추지 않고 있다. 전 세계에서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휴전을 촉구하는 시민들의 시위가 본격화되고 있지만 미국은 이중적 태도를 보이며 국제사회의 리더십을 상실하고 있다. 그 사이 인간의 생존과 안녕, 그리고 자유는 보장되지 않은 채 수많은 무고한 시민들의 희생은 늘어만 가고 있다. 이렇게 많은 희생 속에서도 휴전은 이루어질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모두가 평화를 원한다고 한다. 그러나 그 평화는 매우 폭력적이며 힘에 의한 평화인 것이다. 폭력은 폭력을, 증오는 증오를 불러일으키며, 이러한 적대적인 관계는 점점 구조화된다.

평화는 인간의 결핍과 두려움으로부터 자유를 보호하고 전쟁과 폭력적 상황으로부터 안전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러한 평화의 권리는 유엔 헌장의 정신에서 당위성을 갖는다. 1981년 제정된 아프리카인권헌장과 1985년 유엔 총회에서 채택된 '평화의 권리 선언'은 평화롭게 살 권리를 보편적 인권으로 보장하고 있다. 1992년 유엔은 '평화의 의제' 보고서를 발표하면서 평화세우기 개념을 도입해 왔다. 이러한 선언은 2016년 유엔 평화권 선언으로까지 확대됐다.

평화권 선언에서는 모든 국가는 다른 국가의 영토보전과 정치적 독립에 반하는 방식으로 협박이나 무력을 행사하지 않아야 한다는 원칙, 모든 국가는 국제 평화, 안보, 정의를 위협하지 않는 평화로운 방식으로 국가 간 분쟁을 해결해야 한다는 원칙, 타 국가의 국내 관할권에 해당하는 일에 개입하지 않을 의무, 모든 국가가 다른 국가들과 협력해야 할 의무, 평등권과 자결권의 원칙, 주권 평등의 원칙, 그리고 모든 국가가 선의를 갖고 헌정으로 부여된 책임을 실현해야 한다는 원칙을 선포한 '국가 간 우호적 관계와 협력에 관한 국제법 원칙 선언'을 상기한다고 강조한다. 평화권은 평화가 모든 인류의 보편적 권리이며, 평화는 군사적으로 보장될 수 없으며 평화가 국가에 위임되고 잊히는 영역이 아니라는 것을 명백하게 밝히고 있다. 그러므로 평화의 권리 주체는 시민에게 있으며 이러한 평화는 구체적인 실천 속에서 지속적으로 형성해 가는 과정에서 세워갈 수 있다.

그러나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분쟁은 국가 간, 민족 간, 종교 간 폭력적 구조, 서구사회의 부정의가 뒤섞여 잔혹한 역사를 반복해 왔다. 국제사회는 이러한 상황을 오랫동안 외면해 왔으며 결국 갈등과 증오, 분쟁은 이 지역에 사는 모든 이들에게 고난의 역사로 되풀이되고 있다. 무고한 생명이 희생되는 역사는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우리는 평화를 국가 간의 상호관계로만 독점화 시킨 결과 국가안보의 개념 속에서 불완전한 평화가 어떠한 결과를 가져왔는지, 갈등의 근본 원인을 해결하려는 중장기적 노력 없는 평화, 비평화 구조에 대한 장기적인 시스템 변화 없는 평화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폭력적 구조를 어떻게 지속해 왔는지 목도하고 있다.

2004년, 나는 YWCA의 활동가들과 함께 팔레스타인 YMCA와 YWCA가 공동으로 펼치는 올리브나무 캠페인에 참여한 적이 있다. 세계YWCA가 주최한 한 국제회의에서 팔레스타인 YWCA의 회원은 팔레스타인의 공포와 억압 그리고 흩어진 난민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러나 그녀는 선명한 흑백 논리나 적대감과 편견의 시선을 넘어 사람들의 삶, 그리고 이 분쟁이 두 나라 사람들의 삶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를 이야기했다. 더 나아가 적대를 넘어선 평화를 이루어 가기 위해서는 깨어 있는 시민들의 참여적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눈물로 호소하는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며 가려진 사람들의 삶이 눈에 들어왔고 그 고통이 오롯이 전달되는 듯했다.

평화는 과정이다. 그리고 평화는 안보나 협정, 휴전으로 축소될 수 없다. 국가가 평화를 지켜주는 듯 하나 그렇지도 않다. 따라서 평화를 위해서는 다양한 비평화 상태에 대한 대안을 만드는 평화를 위한 구체적인 지향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상황에 처한 구성원들이 상호 호혜적인 상태를 지향해야 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폭력의 재생산을 막고 인간과 자연까지로 상호호혜성을 확장하여 내재화해야 한다. 사람들의 기본적인 안전의 토대 위에 정치적 절차와 함께 우리 모두가 인간의 기본적 욕구를 어떻게 보장하고 지켜나갈 것인지 구체적으로 참여하며 만들어가야 한다. 더 나아가 사회적 통합성을 증진하고 사회집단 간 신뢰를 구축하는 구체적인 화해의 과정이 반드시 실천적으로 모색되어야 한다. 평화가 모두의 것이라면 말이다.

힘과 폭력적인 방법에 따른 평화는 정당화될 수 없다. 상대방에 대한 존중과 협력, 대화와 화해 없이는 평화는 이룰 수 없다. 상대방에 대한 용서와 사랑 그리고 그 안에 고통스러운 인간과 비인간 존재의 삶을 들여다볼 때 분열과 갈등, 미움과 적대의 장벽을 허물 수 있다. 기독교의 가치 또한 이 과정으로서의 평화에 있다. 가난한 사람들, 억압받는 사람들, 인권이 침해되고, 차별받으며 삶의 터전을 잃고 있는 사람들, 매일 매일 전쟁의 공포와 두려움에 떨며 눈물 흘리고 있는 사람들의 손을 잡아주며 악을 버리고 선을 행하며 고통받는 이들을 위한 평화를 찾아 나서는 과정의 길을 함께 걷는 것이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전쟁은 인간이 만든 재앙이다. 이 전쟁을 누구의 탓으로 돌리기 전에 예방하고 중단할 수 있는 용기 있는 실천이 우선되어야 한다. 관계의 회복으로부터 출발하는 연대를 통한 평화 세우기를 위해 우리가 모두 함께해야 한다.

한나 아렌트는 이렇게 말했다. "사유한다는 말은 항상 비판적으로 생각한다는 뜻이고 비판적으로 사유하는 것은 늘 적대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이다." 그녀는 우리는 심사숙고할 수 있는 존재이고 사유하는 모든 일은 거기에 존재하는 것은 무엇이건 비판적으로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보다 신중한 태도로 깊은 사유와 집단 지성의 실천을 통해 평화의 과정에서 변화를 이루어 가길 기대한다. 지금의 갈등 상황을 더욱 갈등적으로 만들 것인지, 아니면 창조적인 전환의 기회로 만들 것인지는 우리에게 달려 있다. 평화적 수단에 의한 평화, 그것은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



조영미 박사

여성평화운동네트워크 집행위원장·CCA 실행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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