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 삼는 일

제자 삼는 일

[ 주간논단 ]

유재봉 교수
2024년 02월 06일(화) 08:00
교회의 본질적 사명은 교육, 즉 '제자 삼는 일'이다. '제자 삼는 일'은 한 때 유행했다가 사라지는 교회 프로그램이라기보다는 주님의 지상명령으로 교회의 본질적 사명에 해당한다. 이 점에서 우리의 신앙선배들이 교회를 '교제하는 공동체(交會)'라고 하지 않고, '교육하는 공동체(敎會)'라고 규정한 것은 의미가 있다. 교육이 없이는 진정한 삼위 하나님에 대한 경배와 교제가 이루어지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원히 부흥할 것만 같았던 한국교회도 서구 교회의 전철을 따라 쇠퇴하고 있으며, 특히 코로나를 거치면서 한국교회의 위기는 심화되고 있다. 그 위기는 단지 교인의 숫자가 급감하고 있다는 사실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한국 교회는 이제 더 이상 사회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고, 오히려 교회가 사회의 걱정거리가 되거나 조롱거리가 되고 있는 실정이다. 교회가 선한 영향력을 상실하게 된 이유는 다양할 수 있지만, 그 근본적인 원인은 교회가 주님의 지상명령인 '제자 삼는 일'을 소홀히 해 온 데 있다. 오늘날 대부분 교회의 관심사는 몇 명이 예배에 참석했는지에 있고, 그들이 얼마나 주님의 제자가 되어 가고 있는지에 있지 않다. 실지로 많은 교회들이 사람을 양육하고 교육하여 제자삼기보다는 교인들을 시스템에 따라 관리하는 데 치중하고 있다.

교회가 제자 삼는 일을 소홀해 온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다음 두 가지를 들 수 있다. 하나는 외적인 사회의 영향 때문이다. 교회는 오랫동안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며 사회를 변혁시키는 일을 수행해 왔으나, 오늘날에는 거꾸로 교회가 사회의 풍조를 따라가고 있는 실정이다. 그리하여 오늘날 교회는 가시적인 성과가 금세 드러나는 일에 집중한 나머지, 오랜 시간이 걸리고 그 결과가 잘 드러나지 않는 '제자 삼는 일'을 간과하고 있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교육 자체의 어려움 때문이다. 교육은 시간이 오래 걸릴 뿐만 아니라 복잡하여 정교한 일이어서, 교육을 흉내 내는 일은 누구나 쉽게 할 수 있지만, 교육을 제대로 하기는 어렵다. 교육은 교육자가 학습자에게 단순히 성경 속의 정보(information)를 전달하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고, 그 정보 이면에 들어있는 판단(judgement)을 전수해 주어야 한다. 이러한 판단은 가르치는 자의 미묘한 표정, 분위기, 어조, 뉘앙스 등을 통해 전수되기 때문에 교육자와 학습자의 인격적 관계가 중요하다. 제자 삼는 일은 교육자와 학습자의 인격적 관계를 통해 교육자가 믿고 추구하고 있는 성경적 진리를 성령님의 조명으로 학습자가 배우고 내면화해 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학교에서나 교회에서나 제자 삼는 일은 어려울 뿐만 아니라 인기 없는 일이다. 누군가에게 무엇을 가르치려면 시쳇말로 '꼰대' 소리를 듣기 십상인 오늘 날에는 제자 삼는 일이 더욱 힘든 일일지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일은 주님의 지상명령이기에 교회가 마땅히 힘써야 한다. 교회에서 목사의 중요한 사역도 교인을 가르치는 일이다. "어떤 사람은 목사와 교사로 삼으셨으니(엡4: 11절)"로 번역되어 있는 목사의 직분은 목사 직분과 교사 직분을 별개의 것이 아닌, '목사 겸 교사(the pastors and teachers)'로 이해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목사와 장로의 직무는 다른 무엇보다 성도를 가르치고 양육하는 일이라는 사실을 재인식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교회는 교육목사보다 행정목사를 우위에 두는 풍토를 개선하고, 미래세대의 교육을 담당하는 훌륭한 교회학교 교사를 양성하는 데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교회에 여러 직분을 주신 목적은 다름 아닌 주님의 제자로 양육하는 일, 즉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데 까지(엡4: 13)" 이르도록 하는 데 있는 것이다.



유재봉 교수/성균관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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