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려지지 않은 전도부인 삶, 오한나와 신마리아

알려지지 않은 전도부인 삶, 오한나와 신마리아

에큐메니컬선교연구회, '한국선교와 전도부인' 세미나 개최

최샘찬 기자 chan@pckworld.com
2024년 03월 08일(금) 09:33
에큐메니칼선교연구회가 '한국선교와 전도부인' 주제로 세미나를 개최했다. 우측부터 발표한 서선영 김은정 박사, 논찬한 김은하 박사.
한국 개신교 선교 140주년을 맞아 초기 한국선교 역사에서 그동안 주목받지 못한 전도부인 오한나와 신마리아의 삶이 조명됐다.

에큐메니컬선교연구회(회장:김홍덕)는 7일 연동교회(김주용 목사 시무)에서 '한국선교와 전도부인' 주제의 세미나를 개최했다. 세미나에서 서선영 박사는 캐나다장로교회와 관련된 오한나, 김은정 박사는 미국북장로회와 관련된 신마리아의 삶을 이야기했다.

세미나에서 서선영 박사는 오한나를 '시베리아 최초의 전도부인'이라 소개했다.
# 시베리아 최초 파송된 전도부인 오한나

오한나를 '시베리아 최초의 전도부인'이라 소개한 서선영 박사(장신대 객원교수)는 "전도부인 오한나는 루이스 맥컬리 선교사와 함께 일했는데, 오씨 성은 남편의 성이고 한나는 성경인물 이름을 받았기에 그녀의 본래 이름을 알 수 없다"며 "그녀가 언제 태어났는지 고향은 어디인지 기록이 없고, 캐나다장로교회 선교부로 보고된 영문자료에서 기록을 찾았다"고 말했다.

1900년 캐나다장로교회 파송으로 내한한 루이스 맥컬리(리루이시, 1864~1945) 선교사의 보고를 인용한 서 박사는 "오한나는 1년에 1160km를 걸어다니며 1200명이 넘는 여성에게 복음을 전하며 충성스럽게 일했다"며 "맥컬리는 조선인이 외국인의 말을 이해하기 어려운 어두운 때, 그리고 여성들이 가르침을 수용하기 전 그 사이 빈 공간을 오한나가 아름답게 채웠다고 평가했다"고 전했다.

이어 "함경지역엔 친척과 이웃 등 주변 사람들이 시베리아로 많이 가 있었는데, 1909년 조선독노회가 시베리아에 최관흘 목사를 파송하자 함경지역 교회여성들이 힘을 합쳐 오한나를 시베리아로 파송했다"며 "그곳에서 돌아온 후 오한나는 마르다윌슨기념여자성경학원 기숙사 사감과 전도부인을 겸해 활동했다"고 말했다.

1921년 기독신보 기사와 선교보고서를 통해 서 박사는 "그해 11월 오한나는 결핵으로 세상을 떠났는데, 이에 대해 루이스 맥컬리는 다음의 조사를 남겼다"며 "조선 사역에 있어 나의 둘도 없는 친구이자 조언자인 오한나를 주님께서 더 높은 섬김의 자리로 부르셨다. 캐나다 친구들에게 유명한 인물인 그는 20년간 여성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에 함께했다"고 설명했다.

시베리아에 파송된 전도부인과 관련해 서 박사는 "1926년이 되어 총회 외지전도국 결의로 한가자 여전도인이 시베리아로 공식 파송됐지만 오한나는 이미 16년 전 시베리아로 갔다"며 "오한나에 대해 '시베리아 최초의 전도부인'보다는 '시베리아 최초의 여성 선교사'라는 타이틀을 붙여드리고 싶다"고 전했다.

김은정 박사가 신마리아의 생애를 소개하고 있다.
# 연동교회 첫 번째 여집사 신마리아

한편 김은정 박사(연세대·전국여교역자연합회 사무총장 서리)는 신마리아에 대해 "미국북장로회 한국선교회 여성사역자 통계를 보면 1887년부터 전도부인이 나오고 할머니와 미세스 신(Mrs. Shin)이 기록돼 있고, 게일 선교사의 편지엔 미스 신이 작은 하녀(Little amah)가 기독교 교사가 되었다고 한다"며 "이 사람이 연동교회 1910년 세례교인명부에서 찾은 신마리아(1873-1921)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신마리아에 대해 김 박사는 "세례명은 김마리아, 1890년 신정우와 혼인했고, 정신여학교 교사이며 첫 번째 한국인 교감이자 연동교회의 첫 번째 여집사였다"며 "수잔 도티는 1894년 보고서에서 '신 부인은 일관성 있는 삶, 점잖은 태도, 능숙한 조력으로 학생들의 사랑과 존경을 받는다. 그녀는 '주님께서 주신 아름다운 은총의 상급'이라고 표현했다"고 전했다.

이어 "1914년 매일신보엔 신마리아의 평양여성경학교 졸업 소식이 나오고 1916년 신마리아가 자모강연한 원고가 연동교회 역사관에 전시돼 있다"며 "신마리아는 사람이 양반과 천민의 태어남으로 결정되지 않고 어머니의 교육으로 결정된다는 내용의 설교를 하며 차별의식을 깨는 기독교 정신을 이어왔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신마리아의 생애에 대해 김 박사는 "우리나라 근대 여성의 출현과 여성 지도력 형성의 과정을 잘 보여준다"며 "오늘날 연동교회가 여전도사님을 귀하게 생각하는 것은 이런 전통에 영향 받았을 것이고, 연못골이란 곳이 여성과 남성이 함께 어울려 하나님 나라를 이루기 위해 노력한 공간으로서 오늘날에도 상징성이 크다"고 평가했다.

한편 에큐메니컬선교연구회는 코로나 시기 조직된 스터디 그룹으로, 미장로교 미감리교 캐나다장로교 호주장로교 등과 관련해 1년에 두차례 연구 발표를 진행하고 있다.


최샘찬 기자

세미나에 전국여교역자연합회 은퇴위원회도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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