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곁에 있는 사람이 복의 통로자

내 곁에 있는 사람이 복의 통로자

[ 디지털시대의효이야기 ]

박철호 목사
2024년 05월 02일(목) 08:46
복의 통로자로서 카리스마적 존재는 아브라함처럼 하나님의 뜻에 따라 이땅에 우리 곁에 존재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정확한 뜻은 알수 없지만 복의 통로자로서 카리스마적 존재는 막스 베버가 언급한 바와 같이 오늘날 우리 곁에도 있게 마련이다. 우리는 이런 복의 통로자로서 카리스마적 존재를 만나 그를 축복하고 이를 통하여 복을 받게 된다. 그리고 반복하지만 결코, 복의 통로자로서 카리스마적 존재를 저주하지 말아야 한다. 그 저주가 저주한 사람에게 되돌아 올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어떻게 그런 복의 통로자로서 카리스마적 존재를 만나 복을 받을 것인가이다.

복의 통로자를 만나는 것이 쉽지 않다. 왜냐하면 카리스마적 존재가 자신이 복의 통로자임을 드러내지 않기 때문이다. 아브라함을 제외하면 성경에서도 누가 복의 통로인지 분명하게 밝히는 경우가 드물기 때문이다. 그런데 만일 누가 자기 스스로 사람들에게 자기가 복의 통로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우리의 경험상 소위 '사이비 카리스마'일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진정한 하나님의 복의 통로자를 어떻게 만날것인가? 이 문제를 간단히 해결하는 방법은 내 곁에 있는 모든 사람을 복의 통로자로 보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를 발견하게되다. 바로 내가 만나는 모든 사람을 하나님의 복의 통로자로 보는 것은 바로 지금 내 곁에 있는 사람이 나에게 복을 줄 수 있는 사람으로 인정하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만나는 모든 사람을 축복하고 선대하는 것이다. 반면 내가 만나는 그 어떤 사람일지라도 결코 저주하지 않는것이다. 왜냐하면 그 저주가 졸지에 복의 통로자를 저주한 것이 되어 그 저주가 내게 부메랑으로 돌아올지 모르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복의 통로자가 같은 피를 가진 혈족이나 동족일 수 있지만 가나안 땅에서 복의 통로자였던 아브라함처럼 이방인 즉 외국인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더구나 성경에서 발견되는 복의 통로자는 자주 접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우연히 만나는 사람 중에도 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우연히 길을 가다가 만나는 사람, 기차 여행을 하면서 우연히 옆자리에서 만나는 사람도 복의 통로자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복의 통로자의 실체를 여실히 드러낸 사람이 바로 아브라함이다. 창세기 18장을 보면 아브라함은 우연히 생면부지의 나그네 세 사람을 만난다. 이때 아브라함은 이 세 나그네를 극진히 대접하며 선대한다. 아브라함의 이런 반응은 무엇보다 복의 통로자인 자신을 축복하고 선대한 사람들이 복을 받는 것을 보고 자신도 복의 통로자를 만나 복받기를 원했던 것이다. 실제 그는 그토록 원했던 아들 이삭을 얻었다.

한걸음 더 나가보면 성경에서 그렇게 강조하는 '이웃 사랑'에는 복의 통로자의 논리에 의한 하나님의 인간 사랑의 놀라운 섭리를 발견하게 된다. 히브리스 13장 1~2절은 "형제 사랑하기를 계속하고 손님 대접하기를 잊지 말라 이로써 부지중에 천사들을 대접한 이들이 있었느니라"라고 말한다. 여기서 형제는 당연히 자매도 포함되며 넓게 이웃 사랑을 계속할 것을 언급하고 있다. 그리고 이런 이웃 사랑의 근거로 아브라함의 나그네 대접을 통한 복의 통로자 원리를 소급하고 있다. 이웃을 사랑하라는 하나님의 뜻은 너무나 중요하기에 이 명령에 복까지 붙여 놓은 것이다. 자! 이제, 이런 복의 통로자의 논리는 기독교효와 어떤 연관이 있는지를 살펴보기로 한다.

박철호 목사 / 오직예수교회·기독교효학회 회장
카드 뉴스
많이 보는 기사
오늘의 가정예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