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 신라인들은 '경교'를 접했을까?

통일 신라인들은 '경교'를 접했을까?

[ 교계 ] 이만열 교수, 경교 한반도 전래설 "문헌적 근거 없다"

김혜미 기자 khm@pckworld.com
2014년 03월 19일(수) 16:25
   
▲ 지난 1956년 경주에서 출토된 돌십자가 사진. 이만열 교수는 "경교의 통일 신라 전래설은 추측이 가능할 뿐 문헌적 근거는 없는 상태"라며 전문적인 고증 작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옛 중국에서 네스토리우스교를 이르던 말. 당나라 태종 9년(635)에 페르시아 인에 의하여 중국에 전래되었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 나온 '경교(景敎)'의 정의다.

그동안 경교는 국내 일부 학자들에 의해 통일신라 시대 중국을 통해 한반도에 들어온 것으로 추측돼왔다. 1956년 경주 불국사 경내에서 출토된 돌십자가와 마리아상(숭실대 한국기독교박물관 소장)이 주된 근거였다.

숭실대 한국기독교박물관은 이 유물을 '경교돌십자가(24.5×24.0×9.0cm)'라 이름 붙이고 "십자가 형태의 화강암제 석물(石物)로 통일신라 시대 경교(景敎)의 한국 전래 가능성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유물"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마리아상(7.2×3.8×2.8cm)'에 대해서도 "통일신라 시대 경주에서 출토된 불보살상(佛菩薩像) 모양의 마리아상으로 경교와 불교문화의 교류와 경교의 한반도 유입을 보여주는 중요한 유물"이라고 설명한다.

그런데 '경교의 통일신라 유입설'에 대해 최근 반론을 제기하는 주장이 나와 눈길을 끈다. 지난 3월 17일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부설 한국기독교역사문화아카데미 주최로 열린 강좌에서 이만열 교수(숙명여대 명예ㆍ전 국사편찬위원장)는 "많은 신라인들이 중국과 교류하면서 경교를 접했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지만 사실상 경교가 한국에 전래됐다는 문헌적 근거는 없다. 중국까지 들어온 경교를 신라인들이 받아들였을지는 의문"이라며 객관적인 검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역사신학자인 이덕주 교수(감신대)도 이러한 주장에 뜻을 같이 한다. 경교가 통일신라에도 전래됐을 가능성은 있지만 정확한 판단을 위해서는 교회사학자 뿐 아니라 고고학자, 불교미술사가를 포함한 전문가 집단의 면밀한 고증 작업이 요청된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경교의 통일신라 유입설은 일반 역사학자들이나 불교미술사가들은 동의하기 힘든 가설로 단정짓기에는 무리가 있다"며 "돌십자가상을 자세히 보면 아랫쪽이 둥그렇게 사발처럼 되어 있다. 경교도가 예배용으로 제작한 것이 아닐 수도 있는 대목"이라고 근거를 들어 설명했다.

이덕주 교수에 따르면 마리아상도 경교와의 연관성이 적다. "송나라 시절 유행했던 송자관음(送子觀音) 역시 어린 아이를 안고 있는 어머니의 모습을 띠고 있기 때문"이라는 주장이다.

그렇다고 해서 경교의 한반도 유입설이 전혀 근거없는 주장인 것만은 아니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 학예연구사인 김권정 박사는 "1∼2개 유물만으로 판단하기는 어렵다"면서도 "하지만 우리의 상상 이상으로 네스토리우스교파 기독교가 상당히 넓게 분포했던 것만은 사실이다. 소아시아에서 중국에 이르는 요충지마다 경교가 전파돼있었고 통일신라인들 역시 당나라, 서역 상인들과의 교류가 활발했기 때문에 경교의 한반도 유입설은 충분히 설득력이 있는 주장"이라고 말했다.

아직까지 이 분야에 있어 역사신학자들의 연구는 전무하다시피한 상태다. 하지만 이 가설은 한반도 기독교의 뿌리를 찾는 일과도 연관이 있기 때문에 진위 여부에 관심이 모아질 수밖에 없다. 과연, 통일신라인들은 경교를 접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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