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교육, 밀알형제가 함께 가면 길이 된다

공동체교육, 밀알형제가 함께 가면 길이 된다

[ 현장칼럼 ]

이경남 기자 knlee@pckworld.com
2019년 05월 27일(월) 00:00
밀알두레학교는 초중고 학생들이 한 건물 안에서 지낸다. 오랜 시간을 한 공간 안에 있다 보면 나이와 학년을 구분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사귀며 친구가 된다. 학교는 새 학기가 시작되면 1년간 함께 지내게 될 올해의 밀알형제를 발표한다. 초중고 학생들이 15명 내외로 하나의 모둠(두레)을 구성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한 달에 한 번씩 밀알형제 만남의 날을 갖는다. 그날은 밀알형제들이 함께 점심식사를 한다. 초등 1학년 어린 학생들과 고등학생들이 어우러져 있는 모습은 마치 한 가족과 같다. 어린 동생들 밥을 먹여주기도 하고, 연신 쓰다듬고 안아주며 무릎에 앉혀둔다. 누나 품에 안겨 있는 1학년 동생들은 영락없이 엄마와 아들이다.

많은 사람들이 입학문의를 위해 학교를 방문한다. 상담을 온 학부모들은 공통적으로 묻는 질문이 있다. 학급당 인원수가 적고, 전교생도 일반학교에 비해 턱 없이 작아서 아이들이 제대로 사회성을 기르지 못할 것 같다는 것이다. 작은 공동체에서 학생들이 선후배와 동급생간의 관계를 잘 이루어갈 수 있을지 걱정스러워 한다.

그럴 때마다 일반학교의 현실이 어떤지 잠시 생각해 보라고 말한다. 자기 반에서 친한 친구 한 두명 정도 자신하기 어려운 것이 우리 교육의 현주소다. 학원에서 학원으로 순회하는 학생들에게 친구는 경쟁사회 속에서 스쳐가는 잠시잠깐의 인연일 뿐이다. 더구나 지금과 같은 공교육 시스템 안에서 선배들과 친밀한 관계를 형성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그런 점에서 초등학생과 중고등학교 형들이 마치 친구처럼 대화하고 함께 교육활동을 한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폭 넓은 인간관계를 형성하고 배우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밀알형제들에게 1년 중 가장 큰 행사는 함께 떠나는 3박 4일간의 여행이다. 공식적으로 '우리 땅 즈려밟고'라고 부른다. 여행 두 달 전부터 학생들은 매주 밀알형제 모임을 갖는다. 각 두레별로 올해의 여행 장소가 공지되면 본격적인 준비를 시작한다. 2017년 전라도, 2018년 충청도, 올해는 경상도가 선정 되었다. 각 두레는 먼저 중고등과정 형과 누나들을 중심으로 교통편, 숙박, 구체적인 여행 일정 등을 계획한다. 정해진 예산 한도 내에서 움직여야 하는 일정이기에 학생들은 지출항목을 줄이기 위한 방법을 찾느라 애를 쓴다. 거제, 김해 등 멀리 여행지가 선정된 두레들은 비용을 줄이기 위해 다양한 아이디어를 내놓기도 했다. 교회를 빌려 숙박하는 두레, 동네 마을회관을 수소문해서 빌리기로 한 두레, 아예 텐트를 짊어지고 가는 두레들도 있다.

이렇게 매년 밀알형제들이 함께 떠나고, 함께 걸어가는 순례 길은 한 폭의 아름다운 추억이 된다. 이장님의 트럭을 타고 이동하며 맞는 구수한 바람은 시골의 정취에 그대로 녹아들게 한다. 밤새 함께 웃고 떠들며 한 이불을 덮고 누운 농가의 사랑방은 따스한 엄마 품이 된다. 덜컹거리는 시골버스도, 졸고 있는 선생님의 뒷 모습도 아이들에게는 즐거운 놀이이고 새로운 만남이 된다. 힘겹게 나무를 오르는 작은 곤충을 바라보는 아이들의 눈가엔 모든 것이 신기한 세계이다. 주어진 미션을 수행하기 위해 함께 뛰고 함께 만들어 보는 멋진 포즈는 형도 동생도 동심 속에서 하나가 되게 한다.

함께 걷는 길 위에서 학생들은 혈육보다 진한 형제자매가 되고 밀알남매가 된다. 밀알두레학교의 학생이 되는 순간 형과 동생, 누나와 언니가 생긴다. 저출산으로 인해 외동인 가정에서 자라난 아이들에게 형과 누나가 되고 동생들이 생긴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가슴 설레고 즐거운 일이다. 이렇게 형제자매가 되어 '우리 땅 즈려밟고'를 떠나는 밀알형제들 가운데 펼쳐질 아름다운 동행을 기대하며 오늘도 두 손을 모아 기도한다.

이호훈 목사/예수길벗교회 담임목사, 밀알두레학교 교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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