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 하나님의 고요와 영원을 경험하는 시간

쉼, 하나님의 고요와 영원을 경험하는 시간

[ 특집 ] 기독교인과 쉼 ① 쉼과 영성

유재경 교수
2019년 07월 05일(금) 00:00
쉼과 일은 뗄 수 없는 관계다. 일은 쉼을 불러내고 쉼은 일을 기다린다. 우리들의 생활 속에서 부딪히는 가장 큰 문제는 일이다. 한 때 한국사회를 뜨겁게 달구었던 이슈가 52시간 노동 시간제였다. 문제는 기술이 발전해도 자유 시간이 줄지 않는다는 데 있다. 그래서 슈마허(E.F Schmacher)는 "한 사회에서 실제로 이용할 수 있는 전체 여가 시간은 기계를 사용하여 단축하는 전체 노동 시간에 반비례 한다"고 했다. 현대인들은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이 제한되어 있는 줄 알면서도 자신의 욕망을 채우고 행복을 획득하기 위해 더 많은 시간을 찾고 있다.

사회학자나 철학자들은 '성과사회', '피로사회', '일 중독증', '소진'이란 단어를 많이 사용한다. 일 중독 증후군은 성별에 관계없이 모든 직업군에 나타나는 일반적 현상이다. 이들은 쉬는 시간에도 일을 생각할 뿐 아니라 쉬는 것보다 일을 더 좋아한다. 쉼이 삶에 독립적인 가치를 지니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고, 쉼은 일을 보완하는 역할도 못한다. 철학자 한병철은 '피로사회'에서 일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일에 대해 과잉긍정을 보이는 사람을 신경증 환자라고 했다. 그는 이런 사람들이 쉼 없이 빠른 속도로 성취를 향해 달리는 삶이 지배하는 성과사회를 또한 '피로사회'라고 했다. 문제는 일 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일에 대해 과잉긍정을 보이는 사람들은 스스로를 소진할 때까지 자신을 착취하여 결국 자신이 일의 가해자이면서 동시에 피해자가 된다는 데 있다.

어떻든 일 앞에서 쉼의 가치는 초라하기 그지없다. 실리주의적 태도에서든, 미국식 자본주의적 가치관에서든 쉼은 일에 의해 가치를 부여받고 있는 것 같다. 우리는 종종 잠을 많이 자고, 여가 시간을 많이 가지는 것에 대해 죄책감을 느낀다. 일을 많이 한 것 때문에 죄책감을 느낀 사람은 없어도, 쉬는 것 때문에 죄책감을 느끼는 사람은 많을 것이다. 특히 기독교인들은 '느긋함'과 '쉼'을 게으름으로 간주하여 죄책감을 느낀다. 하지만 우리는 쉬지 않고 일할 수 없다. 낮이 있으면 밤이 있듯이 우리 인생도 일과 쉼이라는 리듬 속에서 삶을 유지한다. 세속 철학자들도 쉼은 일(활동)을 위해 존재할 뿐 아니라, 쉼은 활동에 새로운 힘을 불어넣는다고 한다.

하지만 성경은 일이 삶의 목적이고, 쉼은 삶을 위한 수단이라고 가르치지 않는다. 일보다 쉼을 우리의 삶의 중심에 두고 있다. 일은 목적을 향해가는 노정일 뿐이고, 오히려 쉼이 우리 삶의 목적이고 완성이다. 이에 대해 성경은 말하지 않았던가? 태초에 하나님께서 첫째 날부터 여섯째 날까지 천지를 창조하시고, 일곱째 날에 하늘과 땅과 만물들이 완성되었다고.

창세기 2장에서는 '일의 완성'과 '쉼'이 평형을 이루고 있다. 이 말씀은 '쉼'이 없으면 완성도 없다는 말씀이다. 쉼과 일에 대한 성경적 사고는 명료하다. 즉, 쉼이 없다면 미완성이고, 완성은 쉼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일은 시간을 소비해서 무엇을 생산하거나 공간을 점유하지만, 쉼은 시간 속에서 이루어지는 영원의 체험이다. 창조의 6일은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라는 날짜(시간) 공식이 있지만, 일곱째 날에는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쉼으로 대표되는 일곱째 날은 시간의 흐름이 단절되지 않고 영속됨을 보여준다. 유대인들이 안식일과 영원을 하나로 보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아브라함 헤셀은 랍비 하임을 끌어들여 안식일의 쉼을 이렇게 표현했다. "안식일이야말로 영원의 원천이자 천국의 근원이며 내세에서 이루어지는 삶의 뿌리라고 한다. 이 세상에 있는 동안 안식일의 맛을 음미할 줄 모르는 사람, 영생의 진가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이 내세에서 영원의 맛을 즐길 수 없다." 진정한 쉼의 의미도 쉼도 경험하지 못한 사람은 하나님의 세계도 경험할 수 없다는 말이 아니겠는가.

쉼은 창세기 2장 2절의 "안식하시니라"로 번역한 샤바트에서 찾을 수 있다. 구약성경에서 샤바트는 '그치다', '중지하다'는 의미와 '쉬다'란 뜻으로 쓰였다. 안식일의 그침은 일 자체에 대한 그침만이 아니라 경쟁과 성취까지도 그치라는 말이다. 월터 브루그만은 안식일을 저항이라고 보았다. 하나님이 쉬셨기 때문에 쉬는 것은 곧 불안에 대한 저항이고, 강요에 대한 저항이며, 배타주의와 과중한 일에 대한 저항이라고 했다. 무엇보다 일곱째 날을 설명하는 샤바트는 안식일을 설명하는 '누흐' 또는 '헤니아흐'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따라서 창세기 2장의 쉼은 일의 '그침' 또는 '단순한 쉼'을 넘어 온전한 행복을 나타낸다. 하나님의 행복 가운데 인간이 참여하는 시간이 진정한 쉼인 것이다. 그래서 헤셀은 "엿새 동안 창조가 이루어진 뒤에 우주에 무엇이 없었겠는가? 메누하(안식)가 없었다. 안식일이 되자 메누하가 왔다"고 했다.

천천히 걸으면 걸을수록 주위에 있는 사물들을 더 자세히 볼 수 있다. 속도를 줄이고, 마침내 일을 그치면 자신의 존재를 볼 수 있다. 내 자신과 화해하고 내 정신이 내 안에서 편안할 때 비로소 나는 내 속에 거하시는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할 수 있다. 우리는 시간을 사용해서 공간을 차지한 것을 성공이라고 한다. 그러나 참된 성공은 자신의 시간 속에서 하나님을 경험하는 데 있다. 자신에게 주신 시간을 하나님의 영으로 가득 채운 자는 영원을 획득한 자이다. 안식일이 시간을 모습한 영이라면 쉼은 하나님의 자유와 평화 가운데 머무는 시간이다.

쉼은 믿음이다. 우리는 쉼 가운데 자신의 내면을 찾고 하나님의 세계를 깊이 묵상한다. 우리가 하나님의 쉼 속에 머물면 머물수록 그 분에 대한 신뢰는 깊어진다. 쉼은 믿음을 길러내고 믿음은 더 깊은 쉼으로 인도한다. 타락한 인간은 성취하고 공간을 차지하며 부를 쌓아야 평안을 느낀다. 1주일에 6일이 아니고 7일을 일하면 더 많이 성취할 수 있고, 더 많은 부를 누릴 수 있다. 1년 365일 쉬지 않고 일한다면 더 많이 성취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성경에 의하면 6일은 일하고 7일째는 안식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6년을 일하고 7년째는 쉬었다. 그 해에는 심지도 못하고 소출을 거두지도 못하게 했다. 7년째는 거둘 곡식이 없는데 무엇을 먹고 살았을까? 50년째는 희년의 해이다. 그들의 신앙은 시험받고 삶에 불안은 더욱 컸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쉼 속에서 언약을 지킬 수 있었고, 쉼을 통해 하나님의 주권과 통치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쉼이 곧 이스라엘을 믿음의 백성으로 만들었다.

헨리 나우웬 영성의 새로운 지평은 로드레이(Rodleigh) 가족과의 만남에서 비롯되었다. 이 스커스단 가족의 이야기를 들은 후 그의 글은 물론 삶까지 달라졌다. 그는 스커스에 대한 글을 쓰고 싶었지만, 글을 쓰려 할 때마다 강한 망설임과 두려움이 밀려왔다. 그가 그네타기 곡예에 마음이 사로잡힌 것은 날으는 사람과 잡은 사람 사이의 특수한 관계 때문이다. 날으는 사람은 군중들 위로 높이 그네를 타다가 겁도 없이 그네를 놓고는 단순히 손을 내밀어, 잡는 사람이 강한 손으로 공중에서 자기 손을 잡아주기만을 기다린다. 로드레이는 나우웬에게 말했다. "날으는 사람은 절대 잡는 사람을 잡으려 해서는 안 됩니다. 완전히 믿고 기다려야 합니다." 우리의 영적인 삶은 어디에 있는가? 우리의 손을 붙드시는 그 분을 믿고 나가는 데 있다. 우리는 쉼 안에서 하나님의 안식을 경험할 때 온전히 그분을 믿을 수 있다. 우리가 하나님 안에서 온전히 쉴 때 우리 영혼은 하나님의 고요와 평안을 경험한다.

"일 중독증에 걸린 사람들은 급료를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스스로에게 무언가를 증명하기 위해서 일을 한다. 그리고 그들은 일을 좀 더 열심히 하고 좀 더 잘하고 완벽하게 하려고 노력을 기울이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그들의 삶에 결코 풍성한 의미를 주지 못한다."(폴 스티븐스(Paul Stevens))

유재경 교수/영남신학대학교·기독교 영성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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