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슬란의 황금색, 신의 영광과 위엄 드러내

아슬란의 황금색, 신의 영광과 위엄 드러내

[ 루이스다시읽기 ] <11> 판타지 문학과 색깔(2)

이인성 교수
2019년 11월 18일(월) 11:00
영화 나니아연대기 포스터.


루이스는 <나니아 연대기>에서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색깔(color)을 사용하고 있다. '판타지 문학과 색깔(1)'에서 분석한 것처럼, <사자와 마녀와 옷장> 전반부의 주도적인 색깔은 흰색(white)이고 나니아 세계의 지배자도 하얀 마녀(the White Witch)이다. 하지만 작품의 후반부에 아슬란이 등장하면서, 주도적인 색깔이 흰색에서 초록색(green)으로 바뀐다. 여기에 파란색(blue)과 황금색(gold)이 더해지면서 무채색과 유채색의 대비는 한층 더 선명해진다. 하얀 마녀가 지배하는 나니아 세계와 아슬란이 통치하는 나니아 세계가 색의 차이로 명확하게 구분되고 있다.

초록색은 일반적으로 봄, 생명, 희망을 상징한다. 초록색은 살아있는 식물의 색깔이며 재생시키는 정화수의 색깔이기도 하다. 루이스는 나니아 세계의 근본적인 변화를 색깔을 통해 더욱 강조하고 있다: "이제 눈은 본격적으로 녹기 시작했으며, 사방에서 초록색의 잔디가 군데군데 솟아나기 시작했다." 나니아 세계의 통치권의 변화를 시각적으로 색의 변화를 통해 단순하지만 구체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시간이 가면 갈수록 초록색은 점점 더 커지고, 눈(흰색)은 점점 더 작아졌다." 초록색을 통해, 겨울이 가고 봄이 오는 것뿐만 아니라 새로운 생명과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하얀 마녀의 힘은 점점 줄어들고, 역으로 아슬란의 영향력은 점점 더 늘어나는 변곡점이 바로 이 지점이다. 여기에서 색깔은 단순히 부수적인 장식이 아니고 플롯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하지만, 초록색은 부정적 의미, 즉 악 또는 악한 캐릭터의 상징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은 의자>에서 '초록색 옷을 입은 숙녀'(The Lady of the Green Kirtle)가 그 한 예이다: "그녀는 키가 크고 거구였으며 반짝였다. 또한 독약 같은 초록색(as green as poison)의 얇은 옷을 걸치고 있었다." 이때의 초록색은 <사자와 마녀와 옷장>에서의 흰색과 비슷한 역할을 하고 있다. 마이클 앱티드(Michael Apted) 감독은 자신이 만든 영화인 <새벽 출정호의 항해>에서 초록색의 상징적 의미를 강조하고 있다. 그는 초록색 안개를 이 영화의 가장 인상 깊은 이미지 중의 하나로 플롯의 중심에 위치시키고 있다. 이 영화는 서구 문화 속에 깊숙이 내재되어있는 초록색 코드를 전면에 내세움으로써 초록색의 낯설고 두려우면서도 사악한 의미를 효과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파란색도 <사자와 마녀와 옷장>의 후반부에 주요한 색으로 등장한다. 파란색은 일반적으로 하늘과 바다의 색깔로, 보통 영적인 세계를 나타내며 성직자가 입는 성의(robe)의 색깔이기도 하다. 파란색은 초록색과 함께, 생명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색으로 종종 사용된다. 루이스는 바다의 파도를 "파란 초록색"(bluish-green)으로 표현하고 있다. 또한 <캐스피언 왕자>에서 바다는 "눈이 부시게 파란 색"(dazzling blue)이다. <사자와 마녀와 옷장>에서 파란색은 초록색과 거의 동일한 목적으로 사용되며, 초록색과 더불어 흰색과 대비되는 중요한 유채색의 역할을 하고 있다.

<나니아 연대기>에서 빼놓을 수 없는 또 하나의 색이 바로 황금색이다. 황금색은 태양의 색으로, 초월과 신적 현현의 빛을 상징한다. 황금색 후광은 신의 영광과 위엄을 드러내고 천상의 세계를 나타내기도 한다. <나니아 연대기>에서 황금색은 주로 아슬란과 연관되어 있다. 흰색이 마녀의 색깔이라면, 황금색은 아슬란의 색깔인 것이다: "아슬란은 황금색 머리를 숙였다." "아슬란의 얼굴을 바라보았을 때, 그들은 황금색 갈기에 사로잡혔다." "아슬란과 하얀 마녀의 얼굴은 매우 특이했다. 황금색 얼굴과 창백하게 하얀 얼굴이 아주 가까이 있었다." 루이스는 아슬란을 황금색 사자로 그리고 있다. 황금색의 상징적 의미를 부각시킨 것이다. <마지막 전쟁>에서도 진짜 아슬란은 황금색으로 묘사되고 있다: "그가 마음으로 갈망하던, 커다란 진짜 황금색 사자인 아슬란이 바로 그곳에 서 있었다." 루이스가 <나니아 연대기>에서 아슬란을 시종일관 황금색 사자로 묘사한 것은, 그가 바로 나니아 세계의 왕이고 통치자임을 색의 상징을 통해 보여주고자 했기 때문이다.

부연하면, <은 의자>에서 유스타스는 사자를 노란색(yellow)으로 표현하고 있다: "사자의 갈기는 노란색이다." 또한 <마지막 전쟁>에서는 가짜 아슬란을 노란색으로 묘사하고 있다: "사자는 노란색이었고 털이 많았다." 노란색은 종종 타락, 외도, 배신 등의 부정적 의미로 사용되곤 한다. 특별히 사자 중의 사자이고 왕 중의 왕인 아슬란을 사칭한 가짜 사자를 황금색이 아닌 노란색으로 묘사하고 있는 것은 그 의미가 분명해 보인다.

시간과 공간의 틀 안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우리의 일상에서, 세상을 인식하고 이해하는 가장 강력한 수단 중의 하나가 바로 '보는' 것이다. 색깔은 보는 것의 정점에 있다. 색깔은 자연의 빛깔의 화려함을 결합시키고, 더 나아가 창조되지 않은 빛깔도 드러낸다. 그 의미는 색의 언어를 통해 표현되고 소통된다. 아름답고 화려한 색깔들이 사방에 가득해서 우리의 삶을 한층 더 풍요롭게 해주는 가을의 끝자락에서, 색깔 하나하나는 그것을 '보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와 가치로 다가올까? 색깔의 형식 속에 내용을 차곡차곡 채워나가는 결실의 가을이 되기를 소망한다.

이인성 교수 / 숭실대 베어드교양대학 학장·영어영문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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