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한사람의 희망

그 한사람의 희망

[ 논설위원칼럼 ]

허원구 목사
2019년 12월 02일(월) 00:00
필자가 선교사로 칠레에 도착한 후 스페인어를 공부하면서 처음 한권의 책을 읽었다. 그것은 칠레의 역사에 관한 책이었다. 거기서 처음 만난 한사람이 있었다. 칠레의 독립영웅 오이긴스(Bernardo O'Higgins) 장군이다. 그가 지휘하던 독립군은 스페인군에 비해 오합지졸이었다. 랑카구아에서 포위를 당한 독립군은 모두 포기하고 널부러져 있었다. 그때 오이긴스 장군은 "용감한 자여 나를 따르라!(siguenme los valientes)"하면서 말을 타고 포화를 뚫고 전진했다. 그를 따라간 패잔병들이 안데스산을 넘어 아르헨티나로 갔고 다시 돌아와 독립을 쟁취했다. 우리의 상황이 마치 패전 직전의 칠레 독립군 같다는 생각은 지나친 생각일까? 모두 패배의식에 사로잡혀 있다. 한 부부당 출산하는 유아가 0.98명이라서 절망이고 경제가 무너지고 사회가 요동하며 정치 외교가 혼란 가운데 있고 교회마저도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고 아우성이다. 다음세대가 무너지고 있다고 비명을 지르고 있다. 그러나 희망은 있다. 바로 그 한사람이 희망이다. 그동안 우리는 너무 크기를 자랑해왔다. 숫자를 자랑해 왔다. 그래서 숫자가 준다고 호들갑이다. 숫자가 주는 것은 위기가 아니다. 바로 그 한사람이 없는 것이 위기다. 그 한사람에 집중하고 그 한사람을 키우지 못하는 것이 위기다. 죄수의 몸이 되어 로마로 압송되는 바울이 타고 있던 풍랑 만난 배속에는 276명이 있었다. 그러나 한사람 바울만이 그들의 희망이었다. 그는 배속의 모든 사람들에게 살 용기를 주고 방향을 주고 질서를 주었다. 모든 사람들이 바울의 말을 들었고 그들은 다 살았다. 우리 PCK호는 위기를 맞았다.

그동안 한국교회의 모범이고 표준이었던 우리 교단이 이제는 약해지고 있는 교회의 실상을 알리는 데이터로 가장 먼저 인용되는 교단이 되었다. '통합측 교회에 주일학교 없는 교회가 51%이며 중고등부가 없는 교회가 48%'라는 기사는 정말로 눈을 그슬리게 하는 기사다. 그러나 교회의 자랑은 숫자가 아니다. 우리의 눈과 관심을 그 한사람에게 돌려야 한다. 전국의 7개 신학대학교도 더 이상 규모를 비교하고 자랑하지 않아야 한다. 세계적인 신학대학교란 말은 이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다. 바울 같은 그 한사람에 집중하고 키워내는 구조로 모든 것이 개혁되어야 한다. 새롭게 펼쳐진 다양한 현장 속으로 들어가서 바울 같은 그 한사람이 되게하는 신학과 훈련을 해야 한다. 한국교회는 풍랑만난 바다 같은 상황에서 새로운 희망의 섬을 보여주고 새아침의 희망을 선포할 그 한사람들의 출현을 기다리고 있다. 가나안교인이 양산되는 것은 젊은이들이 교회 속에서 희망을 발견할 그 한사람을 만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한국교회는 그 한사람을 세워야 한다. 그래서 풍랑 속으로 보내야 한다. 내가 바로 그 한사람이 되어야 한다. 바울처럼 외쳐야 한다.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반드시 한 섬에 걸리리라!" 줄어드는 숫자를 보면서 탄식하거나 두려워하지 말고 희망을 가지고 다음세대를 세우자. 희망의 복음을 선포하고 내가 바로 그 한사람의 희망으로 살아갈 새로운 세대를 희망가운데 세워가자.

허원구 목사/부산장신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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