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년 된 연동소학교 태극기 복원

120년 된 연동소학교 태극기 복원

연동교회 연동역사관 소장 … 데니태극기 복원자, 1년여 간 작업

최은숙 기자 ches@pckworld.com
2020년 05월 08일(금) 07:18
복원 전.
복원 후.
사진 왼쪽부터 박물관에서 봉사하는 강영옥 권사, 역사위원회 위원장 김신기 장로, 김주용 목사.
110년 전 나라를 빼앗긴 암울한 상황에서도 조국의 독립을 갈망하며 고이고이 간직해 둔 빛바랜 태극기 한장. 찢어지고 꿰맨 흔적들로 '만신창이'된 태극기엔 나라를 빼앗긴 신앙의 선배들이 쏟은 눈물과 아픔이 고스란히 서려있었다.

고난의 시기마다 함께 한 태극기. 그래서 태극기에는 저마다의 사연이 있고 각별하지 않은 이야기가 없다.

연동교회(김주용 목사) 연동역사관이 소장하고 있는 '연동소학교 태극기'도 그렇다.

1898년 설립된 연동소학교에 교회기와 함께 걸려 있던 '연동소학교 태극기'는 1910년 국권피탈 후 강제로 내려졌다. 당시 교사였던 오현관 장로(당시 집사)가 집으로 가져가 일제강점기와 6.25전쟁 중에도 다락과 뒤주, 장롱 깊숙히 보관하며 74년을 간직해 오다가 1984년 연동교회에 기증했다.

94x78cm 크기의 광목 태극기는 태극 두 문양이 청색은 흑색이었고, 적색은 바래져 황색으로 변해 있었다. 흑색의 4괘와 함께 모두 천을 오려서 바느질로 꿰매 붙인 태극기는 두어번 빨고 뜯어진 곳을 재봉질 한 실밥도 그대로 드러난 상태였다. 교회는 태극기와 교회기를 주축으로 같은해 9월 30일 교회창립 90주년을 기념해 역사관을 개관하고 태극기와 교회기를 함께 전시했다.

그로부터 35년 만에 긴긴 세월의 흐름만큼 낡고 훼손된 태극기가 100여 년 전 연동소학교 시절 그 때 그 모습 그대로 복원돼 공개됐다.

김주용 목사는 "1910년 국권피탈 당시 암울했던 상황에서 독립운동과 교육활동에 적극적으로 몸담았던 우리 믿음의 선배들의 흔적"이라면서 "우리 후대에 물려줄 교회의 귀한 유물로써 합당하게 보전되어야 하기에 이번 복원사업을 진행하게 됐다"고 말했다. 역사위원회 김신기 장로도 "100년이 넘은 세월로 상태가 많이 약해져 있었기 때문에 박물관에 의뢰해 복원작업을 진행했다"면서 "전문가가 그대로 복원했고 복사본도 별도로 제작해 두었다"고 덧붙였다. 역사관 강영옥 권사는 "126년의 역사를 간직한 태극기를 보관하고 있는 교회는 우리교회가 유일할 것"이라면서 "향후 문화재로 지정될 수 있도록 신청할 것"이라고도 덧붙였다.

복원작업은 1년 정도 소요됐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태극기로 유명한 '데니태극기'를 복원한 3명 중 한 명인 정영란 선생(당시 국립문화재연구원)이 연동교회 교인으로 이 사업을 진행키로 했지만 갑작스러운 사고로 복원 사업에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그러나 데니태극기를 함께 작업한 노수정 선생(단국대 박물관 소속, 현 경복궁 한국관 근무)이 친구의 유지를 이어 태극기 복원을 진행하게 됐다. 당시 성분에 맞는 천과 두께를 맞추고 태극기를 해체한 후 천을 평평하게 손으로 다듬이질을 해 한 땀 한 땀 복구했다. 2019년 4월 1일부터 시작된 작업은 2020년 2월 8일에 마무리됐다.
역사관 전경

연동소학교 태극기가 제작·사용되던 시기는 1898년부터 1910년 사이로 추정된다. 전문가들은 '연동소학교 태극기'가 소학교라는 교육기관에서 제작·사용된 점과 1905년 을사늑약 이후 1910년 국권피탈에 이르는 격변의 조선에서 펼쳐진 민간에 의한 교육활동 증거자료라는 점, 그리고 1910년 전후로 국권이 침탈당하는 국가의 위기상황에서 보여준 선조들의 애국활동 증거물이라는 측면에서 매우 귀중한 자료로 평가하고 있다.


최은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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