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중기획 ] 끝나지 않은 전쟁, 휴전에서 평화로 ⑤포로수용소에 갇힌 신앙인
차유진 기자 echa@pckworld.com
2020년 05월 29일(금)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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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중대회를 갖는다며 순진한 농민들을 교회에 모은 후 모두 잡아 갔어요. 평양이 국군에 함락되려 할 땐 주민들을 무참히 학살했는데, 특히 예수를 믿는 사람은 무조건 죽였습니다."
6.25전쟁이 통상 남과 북의 싸움으로 묘사되면서, 학자와 종교인 등 북에서 적대계층으로 분류된 사람들이 공산당과 벌인 투쟁은 간과되는 일이 많았다.
신앙을 이유로 사형을 집행하던 공산주의자들의 만행은 반공포로들을 통해 생생이 전해졌다. 15년 전만 해도 수십 명의 반공포로들이 신우회원으로 활동하며 역사를 증언했지만, 이제는 대부분 노환으로 소통이 어렵거나 세상을 떠났다.
1951년. 유엔군의 북진에 맞선 중공군 개입으로 전선은 현재의 휴전선 일대에 고착돼 있었다. 당시 남한에는 13만 명의 북측 포로가 있었는데, 이들 중 북으로의 송환을 거부한 반공포로들은 거제, 부산, 대구, 마산, 광주, 논산, 영천 등지에 분리 수용돼 있었다. 당시 휴전 협상을 준비하던 유엔군은 반공포로까지 북으로 송환해 빨리 협상을 마무리하려 했는데, 1953년 6월 18일 0시 이승만 대통령이 단독으로 석방 명령을 내리하면서, 반공포로들은 탈출 기회를 얻게 된다. 이날 수용소를 벗어나는데 성공한 반공포로는 2만 7000여 명, 실패한 8000여 명도 나중에 판문점을 거쳐 석방됐다.
기자는 지난 14일 반공포로 출신 오신주 목사(염산교회 원로, 89세)를 만나 그날의 급박했던 상황을 들을 수 있었다.
"1953년 6월 18 밤 12시 사단본부로부터 '새벽 2시 수용소를 탈출하라'는 지시를 받았습니다. 죽기 아니면 살기였죠. 철조망에 담요를 덮고 수백 명이 올라가니 금새 무너지더군요. 총성이 빗발치는 가운데 모두들 몇 리를 뛰어 달아났습니다."
그 때 달아난 청년들은 어떻게 한반도 최남단의 포로수용소까지 오게 됐을까. 당시 19세던 오 목사의 인생 여정은 북한의 기독 청년들이 직면한 세상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는 1932년 일제 치하에 태어났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기까지의 14년은 일제말기로 수탈이 가장 심한 시기였다. 1945년 해방을 맞았지만, 다시 5년 동안 공산당의 박해를 겪는다. 전쟁을 앞두고 모든 장정들이 징집되자 그는 1949년 12월 할머니 집으로 피신, 구들장 아래 굴을 파고 7개월을 숨어 지낸다. 1950년 8월 발각돼 인민군 공병대에 보내진 그는 총도 없이 이리저리 끌려다니다 같은 해 12월, 11명의 신앙인들과 함께 미군에 투항한다. 귀순하면 자유를 얻을 것으로 생각했지만 다시 3년 동안 서울, 인천, 부산, 거제, 광주의 수용소를 거치며 포로로 지낸다.
당시 수용소에 있던 20세 안팎의 기독교인 청년들은 매순간이 간절했다. 잦은 폭동으로 언제 어떤 일을 당할지 몰랐고, 북으로 송환돼도 죽임을 당할 게 뻔했다.
"그런데, 가진 것이라곤 옷 한 벌밖에 없는 곳이었는데, 거기 하나님이 계셨습니다."
오 목사는 숨어 지내던 땅굴, 총알받이로 나선 전선, 죽음의 문턱인 수용소에서 청년들은 하나님을 만났다고 했다. 꿈과 반대 방향으로 흘러가는 현실에 몸을 맡겼던 요셉처럼 그들도 순응할 수밖에 없었지만, 그곳에 하나님이 계셨다. 수용소 곳곳에서 예배가 드려졌고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영접했다. 더 갖거나 덜 가진 사람도 없었지만, 서로가 말씀을 통해 얻는 감동을 다른 사람에게 전하기 위해 노력했다. 구사일생 살아남은 청년들은 목숨이 자신의 것이 아님을 고백했고 그 만큼 성실히 살았다. 전쟁포로라는 극단의 경험은 많은 것을 바꿔 놓았다.
오 목사는 당시 기독교인 청년들을 강한 신앙인으로 성장시킨 동력으로 한 가지를 더 꼽았다.
"제가 험난한 시대를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은 사실 어린 시절 받은 신앙교육 때문이었습니다. 공산군에게 잡혀가기 전 19년의 교회생활이 제게 전쟁을 이겨낼 힘을 주었던 것이죠. 상황은 점점 더 어려워졌지만, 저는 그 속에서 말씀을 암송하고 감사기도를 드렸으니까요."
6.25전쟁 70주년에 반추하는 반공포로들의 간증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청년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교훈하고 있다.
차유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