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 소유가 아닌 섬김으로

자연, 소유가 아닌 섬김으로

[ 공감책방 ] '오소리네 집 꽃밭'과 '자연의 비밀 네크워크'를 통해 본 자연의 의미

황인성 목사
2020년 08월 07일(금) 14:31
# 인간이 함부로 손댈 수 없는 정교한 '자연'

권정생 선생님의 글과 정승각 선생님의 그림이 어우러진 '오소리네 집 꽃밭'은 짧고 단순한 이야기이지만 마음 한쪽 어딘가에 묵직한 울림을 주는 그림책이다. 잿골에 사는 오소리 아줌마의 이야기는 왜 우리에게 이러한 감동을 주는 것일까?

어느 날 잿골 오소리 아줌마는 강한 회오리바람 때문에 집에서 40리나 떨어진 읍내장터까지 날아가게 된다. 그곳에서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예쁜 꽃밭이 있는 학교를 지나가게 된다. 봉숭아, 채송화, 접시꽃, 나리꽃 등을 보면서 오소리 아줌마는 집에 돌아가서 자신도 꼭 여기와 같은 예쁜 꽃밭을 만들기로 결심한다. 집에 들어서자마자 남편에게 꽃밭을 만들기 위한 땅을 일궈달라고 재촉한다. 오소리 아줌마의 성화에 못 이겨 괭이를 들고 밖으로 나온 오소리 아저씨가 괭이질을 할 때마다, '거긴 패랭이 꽃이 있으니까 땅을 쪼지 말아요', '거긴 잔대꽃이 있으니까 땅을 쪼지 말아요', '거긴 용담 꽃이 있으니까...' 막상 꽃밭을 가꾸려고 땅을 파려고 보니 이미 오소리네 집 주변은 자연이 만들어 놓은 매우 훌륭한 자연의 정원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 집 둘레엔 일부러 꽃밭 같은 것을 만들지 않아도 이렇게 예쁜 꽃들이 지천으로 피었구려'

인위적으로 잘 만들어져서 보기 좋았던 학교의 화단을 보며 오소리 아줌마도 그것을 모방해 보려고 했지만 사실 오소리네 집 주변에는 계절마다 색깔을 바꿔가며 자라는 더 다양하고 아름다운 꽃들과 식물들이 있었다. 그런데 왜 오소리 아줌마는 가까이에 있는 자연 정원을 인식하지 못하고 사람들이 만들어 놓고 통제해 놓은 작은 꽃밭을 부러워했던 것일까? 그것은 아마도 자연을 있는 그대로 보고 감상하고 감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가 소유하고 조절함으로써 오는 일종의 만족감 혹은 자기 성취감에 대한 동경이었을 것이다.

독일에서 오랫동안 숲해설가로 활동해오고 있는 '나무 수업'의 저자 페터 볼레벤이 '자연의 비밀 네트워크'에서도 하고 싶었던 말이기도 하다. 마치 어린아이가 시계를 분해했다가 다시는 원래의 모습대로 복원할 수 없는 것처럼 자연의 시계는 인간이 함부로 손댈 수 없는 정교한 장치라는 것이다.

"다양하고 은밀한 자연세계의 밀접한 연결성 보여주는 책,
인간은 이 자연의 질서 속에서 어떤 위치에 있고
어떤 역할 하는가에 대해 질문 던져"



볼레벤은 그 한 예로 늑대 이야기를 들려준다.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반까지 미국의 옐로우스톤 공원 인근 지역 농부들은 가축에 피해가 된다는 이유로 늑대를 사살하기 시작했고 결국 늑대들은 종적을 감추게 되었다. 최상위 포식자가 사라지자 다양한 동물들, 그중에서 사슴의 개체 수가 급증했고 먹이가 부족해진 사슴들은 강 주변의 활엽수의 어린 눈까지도 다 잘라 먹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강에 사는 비버들의 식량이 줄어들게 되었다. 비버들 또한, 활엽수의 어린 눈이 중요한 식량 자원이었다. 그리고 활엽수의 어린 눈과 열매를 얻기 위해 나무들을 갉아서 넘어뜨리는데, 결국 이렇게 쓰러진 나무들이 홍수를 막아주며 지반침식을 완화 시키는 역할을 해오고 있었다. 그러나 비버의 개체 수 감소로 인하여 결국 강의 식생이 파괴되었고 생태계의 불균형이 초래되었다. 결국, 공원에 다시 늑대를 방목함으로써 사슴이 강가까지 내려오지 않게 되었고 활엽수들이 강에 다시 뿌리를 내리며 예전의 모습을 되찾게 되었다고 한다.

이 책은 이처럼 자연 속에서 일어나는 다양하고 은밀한 자연 세계의 밀접한 연결성을 보여주고 있다. 저자는 결국 스스로 조절하고 있는 자연의 정교한 시스템을 발견하고 그 작동원리를 친절하게 설명해 줌으로써 그렇다면 인간은 이 자연의 질서 속에서 어떤 위치에 있고 또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가에 대해 조심히 질문을 던지고 있다. 저자는 인간인 우리가 농경 생활을 시작하면서 오히려 자연의 훼방꾼 역할을 하게 되었고 무분별한 수렵 그리고 기후변화의 상당한 원인을 제공하면서 이 정교한 시계를 망가뜨리고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성경은 하나님이 이 세상을 지으셨을 때 인간뿐만 아니라 다른 피조 세계도 함께 지으셨다는 점을 보여준다. 그리고 인간에게 주어진 '정복'의 의미가 사실은 착취하고 자신의 목적을 위해 마음껏 사용하는 것이 아닌 '경작하고 가꾸는 것'에 원어적 의미가 더 가깝다. 즉 그리스도인은 이 오묘한 자연의 섭리가 원래의 모습대로 잘 흘러갈 수 있도록 지혜롭게 섬기며 신중하게 자연을 대하는 태도가 필요한 것이다. 자연을 소유하려 하거나 남용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의 자연을 통해 하나님의 원래의 창조섭리와 목적을 발견하는 것 또한 우리의 소소한 즐거움과 행복이지 않을까?

황인성 목사 / 책보고가게
카드 뉴스
많이 보는 기사
오늘의 가정예배
지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