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움을 알다

부끄러움을 알다

[ 가정예배 ] 2020년 9월 23일 드리는 가정예배

김영근 목사
2020년 09월 23일(수) 00:10
김영근 목사
▶본문 : 에스겔 43장 1~12절

▶찬송 : 251장



2016년 개봉된 영화 '부산행' 이후 좀비를 다루는 작품들이 꾸준하게 소개되고 있다. 이런 작품에 나타난 한국형 좀비들은 서양좀비와 다른 특성을 지니고 있다. 빛과 소리에 대단히 민감하고 움직임이 대단히 빠르다. 이런 한국형 좀비들이 표현하고 있는 것이 있다. 세상 속에 존재하는 구조적 악과 권력에 의해 희생된 사람들의 모습이다. 권력의 횡포에 시달리고, 시대에 희생을 당한 채, 어디로 무엇을 향해서 달려가야 하는지 알지 못한 채 즉물적(卽物的) 존재가 된 인간의 모습이다. 그저 소리와 빛이 있는 곳을 따라 달리며, 누군가를 향한 공격성만을 가진 존재가 되고 말았다. 좀비는 참된 인간성을 상실한 채, 외적인 것에 반응하며, 부끄러움을 알지 못하는 존재이다. 영적으로 어둡고 혼란하며, 인생의 의미를 상실해 가고 있는 시대의 모습이 좀비라는 존재에 투영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에스겔 선지자는 하나님의 영광이 예루살렘을 떠나시는 환상을 보았다(겔 11:23). 하나님은 우상을 숭배하고, 깊어가는 죄악 가운데 있음에도 부끄러움을 알지 못하는 예루살렘에 머무실 수 없으셨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예루살렘을 떠나실 수 없다고 생각했으나, 하나님은 예루살렘에 임재하실 수 없으셨다. 하나님의 영광이 예루살렘과 그 성전을 떠나시고 말았다. 하나님의 영광이 떠난 자리는 공허와 어둠, 혼란과 폐허에 다름 아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떠나셨을 때, 더 잘 먹고, 더 잘 입고, 더 잘 마셔도 모든 것이 허무할 뿐이다. 그것이 오늘 우리 시대의 모습이다. 모든 것을 가졌으나 기쁨이 없고, 모든 것을 얻었으나 더 큰 문제 앞에 서 있다. 깨어진 독에 아무리 물을 부어도 차지 못하는 이치와 같다.

그러나 분명히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을 떠나신 것은 예루살렘을 버리시기 위함이 아니라 예루살렘을 다시 찾고자 하심이다. 예루살렘에 다시금 생명을 주시기 위함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새로워지기를 바라신다. "맑은 물을 너희에게 뿌려서 너희로 정결하게 하되 곧 너희 모든 더러운 것에서와 모든 우상 숭배에서 너희를 정결하게 할 것이며…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겔 36:25~27)"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은 예루살렘 성전으로 다시 돌아오시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전에 가득하다. 이 때 하나님께서 에스겔에게 이스라엘이 깨달아야 할 부끄러움을 확인하신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와 교회는 부끄러움을 잊어버렸다.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 즉 수오지심(羞惡之心)은 인간의 본성이기도 하다. 부끄러움을 잃어버려서는 안된다. 믿음의 선배 윤동주 시인은 '쉽게 쓰여진 시'라는 시에서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詩)가 이렇게 쉽게 쓰여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라고 고백했다. 성도(聖徒), 교회는 자랑스러운 이름이다. 만약 성도답지 못하고, 교회답지 못하면 부끄러운 일이다. 수오지심(羞惡之心)을 가진 가정이 되자.



오늘의기도

옳지 못함을 부끄러워하고, 착하지 못함을 미워하게 하소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자랑스러워하시는 삶 살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영근 목사/만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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