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도의 공동체 생활

성도의 공동체 생활

[ 가정예배 ] 2020년 9월 25일 드리는 가정예배

김세연 목사
2020년 09월 25일(금) 00:10
김세연 목사
▶본문 : 룻기 1장 16절

▶찬송 : 220장



시어머니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룻은 계속 베들레헴으로 따라가겠노라 고집한다. 룻은 시어머니를 섬기기 위해서 가는 것도 아니며, 시어머니에게서 유익을 얻고자 가는 것도 아니었다. 오직 하나님을 잘 섬기기 위해서 따라가는 것이었다. 룻이 복된 길을 끝까지 갈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다른 목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룻은 오직 잘 믿으려는 하나의 목적만 가졌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16절)" 이 말씀은 룻의 신앙고백이며, 결단이다. 오늘 우리가 예수를 믿음에 있어 너무 많은 다른 목적들을 가지고 있지나 않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이 고백에 있어 중요한 것은 룻이 단순히 하나님 섬기는 것 뿐 아니라, 하나님 백성의 공동체 안에 들어가기를 결단했다는 것이다. 신앙생활의 시작은 단순히 머릿속으로 인정하고 생각하던 것의 변화에서 그치지 않는다. 신앙생활은 새로운 관계를 형성하게 되고, 그 관계 속에서 함께 자라나게 된다. 나 혼자서도 얼마든지 잘 믿을 수 있다고 생각해서 베들레헴을 떠났던 나오미와는 달리, 혼자서는 잘 믿을 수 없기 때문에 '어머니의 백성들이 함께 사는 곳', 베들레헴으로 들어가기 원한다는 고백이었다.

신앙생활에서 낙오하는 자들의 공통된 특징은 신앙을 개인의 내적 인식과 결단, 변화로만 이해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공동체의 중요성을 간과하게 된다. 공동체를 이해하려고 하지도 않고 공동체와 함께 하려고 노력하지도 않는다. 조금 어려움이 오면 달팽이처럼 자기 안으로 숨어 들고, 작은 일에 자존심 상해하며, 손해 보는 일은 조금도 용납지 않고, 인정받기를 원하며, 쉽게 비판하고 정죄한다. 그들은 자신만 잘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신앙을 지극히 개인적인 것으로 이해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신앙은 지극히 공동체적이다. 건강한 공동체 안에서 신앙은 잘 자라나게 된다. 사막에 심겨진 한 그루의 나무는 오래 버티지 못하고 곧 죽어 버릴 것이다. 살아 있어도 혼자 모진 모래 바람을 다 견뎌야 한다.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시 133:1)" 이 말씀은 행동하는 신학자로 알려진 디트리히 본회퍼가 즐겨 암송한 말씀 중 한 구절이다. 그는 교회를 '사귐으로써 존재하는 그리스도'로 이해했다. 그리스도는 성도의 사귐 속에서 실재로 체험되는 분이시다. 그리스도인은 그 형제를 그리스도로 알고 사귐으로 그리스도를 섬기게 되는 것이다. 구원 받은 성도는 숙명적으로 공동체와 하나 되어야 하고 공동체의 부분이 되어야 한다. 공동체의 한 부분이 되기 위해서 자기가 거절되고, 죽는 과정이 필요하다. 신앙생활에서 발견되어진 '나'는 '죽어져야 할 나', '깨어져야 할 나'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발견된 '나'는 '독자적인 나'로서의 옛 사람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 붙어 하나 된 새사람이다. 성도는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안에서 자신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어짐을 체험해야만 교회를 통하여 새로운 하나가 될 수 있다.



오늘의기도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십자가에 죽음으로 새사람이 되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되는 기쁨, 섬기는 기쁨을 누리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세연 목사/성산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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