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딴섬으로 가는 교회

외딴섬으로 가는 교회

[ 논설위원칼럼 ]

리종빈 목사
2020년 09월 21일(월) 22:11
얼마 전 여당 대표가 국회에서 연설할 때 '우분투'라는 표현을 쓰면서 현재의 어려운 국면을 함께 헤쳐나가자고 강조했다. 우분투(Ubuntu)는 '당신이 있기에 내가 있습니다'라는 뜻의 아프리카에서 가장 널리 쓰이는 말 중 하나인 반투어(Bantu language)의 인사말이다. 이 인사말에 담긴 깊은 의미는 타자에 대한 인정과 배려다. 우분투는 우리가 서로 얽혀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자신이 기준이 되어 상대가 자신에게 맞추어야 된다고 생각하는 한 이런 인사말은 나올 수 없다. 타인을 인정해 줄 때 자신도 타인으로부터 인정을 받을 수 있다. 곧 타인에 대한 비인정은 자신도 인정을 받지 못한다.

교회가 진원지가 된 코로나19 감염 사례가 전국적으로 잇따르면서 기독교에 대한 비난 여론이 거세다. 정부의 비대면 예배 요청에도 일부 교회가 대면 예배를 강행하면서 기독교 전반에 대한 혐오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사실 대부분의 교회들이 방역수칙을 잘 이행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아무리 일부 교회의 이탈의 모습이라고 항변해봐야 세상은 그 소리를 귀담아 듣지 않는다. 이미 교회의 영향력이 그만큼 미미해졌기 때문이다.

한국교회의 가장 큰 특징은 개교회주의이다. 이것이 가져다준 결과는 교회의 양적 성장이다. 기업의 경쟁만큼이나 앞다투어 외형적 확장에 힘써왔다. 더 큰 섬을 만들기에 혈안이 되어 교회 밖으로 내보내야 할 에너지를 교회 안으로 다 쏟아 부었다. 그러면서 결국 지역사회로부터 차단된 영역이 되어 버렸다. 이 생각을 바꾸지 않는 한 한국교회는 갈수록 사회와 이웃으로부터 고립화가 심화되어 외딴섬으로 존재하게 될 것이다.

초기 한국교회의 사회적 영향력은 컸다. 굳이 조직적으로 무엇을 하지 않았어도 성도 개개인이 성숙한 시민의식과 모범적 삶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교회는 마을 공동체의 구심점이었다. 그런데 최근의 교회들의 행보는 교회가 이웃으로부터 멀어져 자꾸 외딴섬으로 가려고 한다. 담을 허무시려고 오신 예수의 정신을 외딴섬에 가두어 놓고 세상과 더 높고 견고한 담을 쌓고 있다. 사랑의 근원이 하나님이라고 목청을 돋우면서도 정작 이웃의 염려를 헤아리지 못하는 신앙의 모순을 여과 없이 드러내고 있다. 신앙은 사적인 영역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공적인 영역까지 확장된다. 그동안 한국교회는 사회적 책임을 소홀히 하고, 개교회주의와 교회 성장을 추구하면서 외딴섬 하나씩을 만들었다.

한국교회에도 우분투가 필요하다. 이웃이 없으면 교회가 존재할 수 있을까? 교회는 외딴섬에 존재하지 않는다. 교회가 세상과 소통하지 못하고 공공의 이익을 위하여 연대하지 못하면 고립무원이 될 수밖에 없다. 지금의 한국교회가 비기독교인들을 실망시키는 가장 큰 이유는 종교의 사회성을 무시한 배타성이다. 이것은 자신이 기준이 되면 나타나는 현상인데 더 나아가면 독선이 된다. 결국 몰상식과 독선이 한국교회를 무너뜨리고 있다. 독선과 아집을 과감히 버려야 교회를 살릴 수 있다. 예배를 위해 목숨을 걸 만큼의 결단이라면 이웃의 생명을 위해 잠시 예배의 형태를 바꾸는 결단은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다. 둘 다 하나님을 위한 일이니까. 신앙의 기준은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다.

이제 교회는 외딴섬에서 나와야 한다. 외부출입이 없으니 청정지역이라고 자부하며 좋아할지 모르나 암흑의 세상을, 냄새나는 세상을 밝은 세상의 청정지역으로 만드는 것이 교회의 역할이고 사명이다. 교회가 소금과 빛의 역할을 하지 못하면 그 존재가치가 없어진다. 이 혼란한 상황에서 교회는 세상을 보는 연습을 다시 해야 한다. 외딴섬에서 나와야 비로소 세상이 제대로 보인다. 하나님의 관심이 어디에 있는지 알게 된다. 약자나 소수자가 얼마나 힘들게 살아가는지 보게 된다. 여전히 우리는 이웃사랑이라는 막중한 책임을 가지고 있다.

당신이 있기에 내가 있습니다. 우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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