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코로나 시대, 일의 세계를 다시 생각한다

포스트코로나 시대, 일의 세계를 다시 생각한다

[ 특별기고 ]

송용원 교수
2020년 10월 05일(월) 07:49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다."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버나드 쇼의 묘비명이다. 94세까지 장수한 세월을 돌아보니 우물쭈물했다고 자조한다. 어디 개인만 그런가?

역사 속 공동체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세계화의 폭주를 제어하지 못하고 기후변화에 대응하지 못하며 머뭇거리다 글로벌 신종 바이러스가 결국 오고야 말았다. 그에 따라 세상의 모든 일터는 허둥지둥하며 비틀거리는 중이다. 언제 우리가 다시 만나는 세상이 될 수 있을까를 묻는 것은 지금 사치에 가깝다. 당장 어떻게 하면 죽지 않고 살아날 수 있을까에 집중해야 하는 형편이다. 특히 어떻게 하면 실직하지 않고 (전염병에 걸리지 않으면서) 일을 계속할 수 있을까? 지금 우리는 성공 방정식을 위한 질문이 아니라 생존 방정식을 위한 질문을 일터에 던져야 한다.

사람이 자기의 가장 많은 시간을 쓰는 것은 일이다. 그리고 노동은 일을 하는 사람의 인성을 형성한다. 하지만 인간의 삶을 지탱하는 공통 무대인 일터는 재난이 닥치면 급속히 무너지는 허약한 피조물에 불과하다. 성경은 전쟁, 기근, 역병을 대표적으로 언급한다. 금번에 찾아온 코로나19는 그나마 일에 매인 인간을 지켜주던 마지막 보루라고 할 수 있는 일과 가정의 구분, 주일과 평일의 구분을 완벽하게 무너뜨렸다. 일은 인간 형성과 세계 형성에 지대한 원인을 제공하며 인간과 세계를 심오하게 바꾸어 놓는다고 하는데, 그 일에 달라붙은 코로나19가 그 궤도마저 바꾸고 있는 형국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오늘날 일의 세계에 대한 신학적 고민은 교회에게 하나의 숙명과 같다. 더군다나 포스트코로나시대에 예전과는 많이 달라질 것이 분명한 일의 세계가 내미는 도전 앞에 기독교의 사정이 녹록지 않다.

2차 대전 발발 직후 세이어즈는 전쟁 이전의 노동의 본성을 돌아보며 전쟁 이후의 노동 방향에 대한 전망을 담은, 짧지만 고전의 반열에 들만한 깊이를 담아낸 강연을 했다. 그녀는 인간이 왜 일하는지, 특히 어떤 마음으로 일해야 하는지 풀어내면서, 돈을 벌기 위해 일을 하는 기존 문화를 청산하고, 일 자체를 위해 일을 하는 새로운 문화를 창출하지 않으면 2차 대전의 고난과 희생은 아무런 의미도 소득도 없는 것이 되고 만다고 일갈했다. 세계대전 이후 문명 세계의 운명은 전쟁 기간에 사람들 마음에 노동관의 혁명적 변화가 얼마나 각인되는지에 달려있다고 보았다. 재난은 언제나 낯설고 고통스러운 일이었던 마음의 습관을 바꾸도록 강제한다.

그녀는 노동의 가치와 본성을 왜곡하는 과거의 세속 경제로 회귀하는 결과는 또 다른 전쟁의 도래가 귀결될 것이라 경고했다. 낭비의 경제, 화려한 경제, 일보다는 돈이 더 중요한 경제, 좋은 일을 하기보다 수지 맞는 일을 부추기는 문화는 반드시 몰락의 순간이 찾아올 것이라는 말이다. 세이어즈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지난 70년 동안 인류 문명은 2차 대전의 뼈저린 교훈을 망각하고 소비주의와 이기주의, 물질주의와 양극화는 더욱 고도화되던 중 코로나19와 마주하게 되었다. 코로나19로 모든 그리스도인도 일터와 가정, 주일과 평일의 구분이 무의미해지고 말았다. 그나마 직장을 유지할 수 있는 그리스도인은 사정이 나아 보인다. 코로나19로 노동의 기회를 위협받는 그리스도인에게는 일터에서 경험하던 하나님과의 관계 체험 자체가 상실될 상황이다. 죽음의 신이 어른거리는 위험한 노동 현장에 내몰리는 이 땅에서 한국교회는 경제 정의를 위해, 노동자의 안전과 복지, 인간답게 일을 할 권리를 위해, 악한 관례와 타성에 저항하고 정책과 사회 문화를 바꾸는 광야의 외치는 자의 목소리가 될 수 있을까?

기독교 신앙은 사람이 일하지 않으면 좋은 것이라는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의 생각이나 사람이 일을 통해 이득을 본다는 애덤 스미스의 생각이나 사람이 일을 통해서만 인간이 된다는 카를 마르크스의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다. 기독교는 인간을 인간 되게 하는 것은 일 이전에 하나님에 기원을 둔다. 인간의 진정한 정체성의 열쇠는 (인간의 노동과 하나님의 일의 연결되거나 일의 수행 능력 여부를 떠나) 오직 하나님과 나누는 교제에서 생성된다고 보는 것이다. 하나님과 인간의 동역자 관계가 인간을 인간 되게 한다.

코로나19 이후 혼돈에 빠진 일의 세계를 궁극적으로 모두가 일 자체의 고유한 선을 더불어 누리는 공동체의 장으로 이끌어 가려면, 하나님, 인간, 노동, 환경 모두를 아우를 수 있는 변혁적 종말론에 바탕을 둔 새 창조의 일 신학이 요청된다. 모든 사람이 자기가 하는 일에 내재하는 선한 가치 그 자체에서 기쁨을 누리는 사회, 일을 함께하는 동료를 상호 존중하는 공동체, 일을 통해 환경을 선용하고 보전하는 지구촌을 지향하며, 기존의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확장 마인드를 넘어서는, 성경적 공동선 마인드로의 전환을 꾸준하게 시행해야 한다. 더 나아가 교회와 그리스도인은 "일을 하는 동기를 복음을 통해 180도 바꾸어, 상황이 좋든 나쁘든 늘 함께하는 신선하고 강인한 힘으로 심령을 가득 채워 주는" 신앙과 일의 통합을 온라인과 오프라인 예배와 사역의 핵심 콘텐츠로 삼아야 한다. 세계보건기구(WHO)가 100년에 한 번 올까 말까 한 보건 위기라는 코로나19 팬데믹은 어쩌면 그 존재 의미와 가치와 방향을 죄다 상실해가던 오늘날 일의 세계에 역사적 대전환을 알리고자 도적과 같이 찾아온 결정적인 '번쩍하는 문장'인지 모른다.

송용원 목사 / 장로회신학대학교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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