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주민의 삶을 변화시키는 건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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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감책방 ] 정기용의 '감응의 건축'

최아론 목사
2020년 10월 23일(금) 16:13
# 한 건축가와 낯선 도시 무주의 만남

전라북도 무주는 지명만 듣고 무엇인가를 떠올리기 쉽지 않은 곳이다. 충남, 충북, 경남, 경북과 접해있고, 구천동이나 덕유산, 리조트 등으로 알려져 있기는 하지만 유명 관광지는 아니다. 타국의 소도시까지도 섭렵했던 얼마전까지의 우리들이었지만, 이 나라의 구석구석을 알아보려는 노력이나 여행은 아직까지는 일천하다. 거기에 정기용이라는 사람의 이름을 얹어보면 어떨까? 정기용이라니, 무주보다 더 낯선 이름이다. 「감응의 건축」은 이 낯선 건축가와 무주라는 지역이 만들어낸 책이다.

「감응의 건축」은 무주 프로젝트라는 부제를 갖고 있다. 책은 이렇게 시작한다. "필자는 첩첩산중, 내륙의 작은 도시 무주에서 1996년부터 10여년 동안 크고 작은 공공건축물 설계 작업에 매달린 적이 있다. 면사무소부터 납골당까지, 무려 30여 개의 건축을 다루는 일은 행운이면서 동시에 고난의 행군이었다."

정기용은 한때 어울렸던 지식인들과 국내의 농촌이나 도시를 여행하면서 국토 곳곳의 건축물들을 보면서 날선 비평을 했었다. 그러던 그가 무주라는 땅에 들어가서 다양한 건축에 대한 구상과 실현을 하게 된 데에는 무주라는 땅이 자신을 이끄는 힘과 무주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이끄는 힘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정기용은 건축이란 팔기 위해서가 아니라 삶을 위해,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해 필요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것을 체험하게 해주는 일은 공공건축에서 가능하다고 믿는다. 그러나 대부분의 공공건축은 형식적인 건물을 반복 재생산해내고 있다.

그가 처음 무주에서 시작한 건축물은 공공건축이면서 형식적인 건물의 전형으로 여겨지는 면사무소, 지금의 주민 자치센터였다. 그런데 새로 지어질 건물의 주위에 사는 주민들은 한결같이 말했다. "면사무소는 뭐 하러 짓는가? 목욕탕이나 지어주지" 정기용은 건물을 지을 곳의 사람과 자연을 건축의 최우선 과제로 생각했다.

# 식물을 닮은 운동장·풍경을 초대한 정류장

스스로 가장 인상 깊고 감동적이며 가르침을 줬다는 건축물은 무주의 등나무 공설운동장이다.

과거 대부분의 공설 운동장은 일명 본부석을 향하는 구조로 만들어져 있었다. 그러나 등나무 운동장은 모든 좌석이 평등한 공간으로 만들어져 있다. 건축가는 자신이 한 일이라고는 등나무가 자라는 구조물을 만든 것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그렇지만 등나무 운동장은 세계의 그 어느 곳보다 식물을 닮은 운동장으로, 그리고 미래를 내다본 운동장으로 만들어졌다.

그가 만든 가장 작은 건축물인 버스 정류장들을 만들면서 그는 무주의 풍경의 일부를 만남의 장소 속에서 만들고 싶어 했다. "풍경을 초대하고 바람을 막아내고 시선을 움직이는 버스 정류장은 농촌 속에 서 있는 도시다."

일본의 건축가 나카무라 요시후미의 「집을 순례하다」는 근사하고 멋진 서양의 건축가들과 모두 알고 있는 도시들로 건축 순례 객들을 초대했다. 멋진 책이지만 그들 사이에, 그들과 우리 사이의 어떤 연결점도 없다.

그렇지만 건축이 개인을 넘어서 지역의 주민의 삶을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는지, 정기용은 보여준다. 거대한 고층빌딩과 화려한 아파트 단지가 아니어도, 같은 사람들이 살고 있는 목욕탕과 납골당과 운동장과 버스정류장으로.

2011년 암으로 타계한 그를 기억하며 「감응의 건축」과 함께 무주라는 낯선 장소로의 건축 순례 여행을 권해본다.

최아론 목사 / 옥수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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