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 깊숙한 곳에서 흘러나오는 생명의 숨결

영혼 깊숙한 곳에서 흘러나오는 생명의 숨결

[ 기독교미술산책 ] 윤석원 작가의 '생명의 씨앗'

유미형 작가
2020년 11월 04일(수) 10:00
생명의 씨앗 42x 45x 32cm Copper, 1986
윤석원은 현대조각의 다양한 실험적 흐름 속에서 세속적 시대사조나 유행을 따르지 않고 올곧게 기독교 세계관을 구축해온 작가이다. 정형화된 아카데미즘이나 헨리 무어의 단순화된 추상조형이 아닌 영혼 깊숙한 곳에서부터 흘러나오는 생명의 숨결을 드러낸다. 한결같은 신앙인다운 예술세계는 자유로우나 절제되고, 무게감이 있으나 경쾌하고 때로는 시적 상상력이 적절하게 조화를 이루며 폭넓은 입체조형세계로 접근한다. 본질에 충실하고 겸허한 기질은 작품마다 신앙적 품위를 지닌 스토리 전개 방식으로 관조자를 설레게 한다. 이런 그에게 영향을 준 두 스승이 있으니, 현대 추상조각의 선구자로 불리는 김종영(1915~1982)과 우리나라 초창기 종교미술의 방향을 제시한 광화문 충무공 이순신 장군상의 조각가 김세중(1928~1986)이다. 두 거장의 작가적 치열한 삶과 감성이 그의 작품 기층에 깔려있겠지만, 추상이냐 구상이냐의 관념적 구분 보다는 그 너머의 영성미학이 독보적이다. 작품에는 브론즈(Bronze)가 갖는 남성적 무게감과 여성적인 우아함이 동시에 강조된 부드러운 추상적 표면 처리 수법으로 조각을 다루는 능숙한 솜씨를 보여준다. 게다가 너무 크지도 작지도 않은 아담한 브론즈 표면에 빛이 비춰지면 예상치 못한 회화적 느낌이 드러나는데 거기까지 치밀하게 계산된 밀도가 경탄스럽다. 점토로 시작하는 브론즈 작업은 먼저 흙에 대한 애착심과 주조(Casting) 과정 중에는 창조의 신비를 깨우친다. 하나님께서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코에 생기를 불어 넣어 사람이 생령이 된 것처럼 흙이라는 불완전한 물성이 그의 손안에서 브론즈라는 구조적으로 단단하고 빛나는 조각품으로 거듭난 것이다. 어쩌면 브론즈 조각품은 토기장이와 대장장이 같은 성실과 인내로 쉼 없는 반복과 연마가 빚어낸 손맛의 결정체가 아닐까 하고 짐작해본다.

브론즈는 벌어진 콩 껍질의 덩어리감에 영근 콩알을 감추고 있는데, 그 열매라는 매개체로 영원성을 강조한 조형미가 경탄스럽다. 제목에서 보여주듯 익숙한 성경 구절이 떠오르는데 "내가 너희에게 진리를 말한다.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있지만,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 법이다."(요 12:24) 많은 열매 맺기 위해서는 한 알의 밀알처럼 죽어야 한다는 의미로 예수의 죽음과 부활은 우리도 동일한 생명을 부여 받을 수 있다는 복음의 진리가 담겨있다.

현대는 패스트 후드 같은 조급증 시대적 흐름 속에서 윤석원의 조각품은 씨 뿌린 농부의 수고와 땀방울, 햇빛과 비를 기다리는 자연과의 조화, 창조주와의 교감을 상징하며 서두름이 없다. 감사의 계절에 윤석원의 '생명의 씨앗' 작품을 감상하며 우리 내면에는 여느 감사한 열매가 영글고 있는지 한번쯤 되짚어 보면 좋을 것이다.



**윤석원 작가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조소과 및 동대학원 졸업

조각 개인전(동덕미술관) 미국 Sanfrancisco State Univ. 연구교수 역임

국립현대미술관 초대작가전, 2002월드컵 기념미술제 초대전(문화관광부)

서울조각회 회장역임, 낙우조각회 회장역임, 대한민국 미술대전 운영위원, 심사위원 역임

목조근정훈장(대통령,2012), 대한민국기독교미술상 수상

현 서원대학교 미술대학 명예교수



유미형 작가/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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