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비량이 가장 쉬웠어요!

자비량이 가장 쉬웠어요!

[ 목양칼럼 ]

고광진 목사
2020년 11월 20일(금) 09:25
가끔 자비량으로 살아가는 나를 보고 대단한 결심을 했다며 칭찬해주시는 분들이 있다. 자비량이 어떤 사람에게는 큰 결단일지 모르지만, 나에겐 전혀 그렇지 않았으므로 시큰둥하게 반응하고 만다. 나에게 자비량은 먹고는 살아야겠기에 선택한 삶이 아니라, 목회는 해야겠기에 선택한 삶이었다.

자비량이 아니면 목회를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타고난 기질과 성격, 쌓인 생각과 경험을 통해 만들어진 '나'라는 사람에겐 그랬다. "공부가 가장 쉬웠다"던 어떤 사람처럼, 나에게도 자비량이 가장 쉬웠다. 다른 길을 가려 했다면 훨씬 더 큰 결단이 필요했을 것이다. 사람은 생긴 대로 사는 모양이다. 내 생긴 모양은 그러했다. 아무도 궁금하지 않겠지만, 말 나온 김이 내 생긴 모양에 대해서 써 보겠다.첫째, 나는 자유롭고 싶다. 몸도 마음도 생각도 그리고 신앙도 자유롭고 싶다. 기존의 틀에 갇혀 옴짝달싹 못 하는 삶은 싫다. 특히 공장에서 찍어낸 듯 비슷비슷한 느낌의 신앙인들을 보면 그들 안에 있어야 할 내적 자유가 아쉽다. 난 얼마간의 자유를 보장받기 위해 자비량을 선택한 셈이다.

둘째, 나는 상당히 게으르다. 그래서 나는 전략적으로 꼭 해야 할 일만 남기고 나머지는 과감하게 생략하거나 축소할 수 있어야 한다. 오늘날 한국교회에 너무나 많은 프로그램과 활동이 문제라는 지적이 있다. 그런 나에게 자비량 목회는 꼭 해야 하는 것에만 집중하고 나머지는 과감하게 생략할 수 있는 담력을 준다. 그 덕분에 나는 다른 것에 시간과 에너지를 빼앗기지 않고 교회와 신앙의 본질에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과도한 열정이 늘 좋은 것만은 아니듯, 게으름이 늘 나쁜 것만은 아니다.

셋째, 나는 단지 목사라는 이유로 목사에게 주어지는 존경과 대접이 너무나 불편하다. 거기다가 개척교회 목사는 성도들에게 살림형편까지 신경 쓰이게 한다. 나로서는 가장 부담스러운 부분이다. 나는 내 몸 움직여 내 가정 하나쯤 건사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고 그래서 자비량을 선택한 것이다. 다행히도 내 생긴 모양과 자비량은 궁합(?)이 잘 맞다. 더 다행스러운 것은 지난 시간을 돌아볼 때 자유를 향한 나의 갈망은 저 아래에서 적절한 강도의 노동이 나를 붙잡고 있었기 때문에 과하지 않은 정도로 충족되었다. 특히 양계는 하루도 쉴 수 없는 잔잔한 노동의 연속이다. 그런 상황 속에서도 나 스스로 자유롭다는 느낌을 유지하고 있으니 이 정도면 훌륭하다. 그리고 양계는 게으른 나를 게으름의 늪에 빠져 허우적대지 않도록 도와주었다. 새벽부터 울어대는 닭들만큼은 아니지만, 꽤나 부지런해졌다. 몸이 움직여지니 뇌도 활력을 얻어 생각도 부지런해졌다.

마지막으로, 신세지는 것이 죽기보다 싫은 내가 신세지지 않고는 살 수 없는 세상을 만났다. 자연스럽게 신세지는 법도 배우게 되었다. 자비량, 선택은 쉬웠지만, 사실 그 길을 걷는 것까지 쉽지는 않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랑 생김새가 비슷한 누군가에게는 권해보고 싶은 삶이다. "자비량이 가장 쉬웠어요"하면서 말이다.

고광진 목사/정산푸른볕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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