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은혜를 거절할 수 있는가?

하나님의 은혜를 거절할 수 있는가?

[ 논쟁을통해본교회사이야기 ] <20>아르미니우스 논쟁

박경수 교수
2020년 11월 27일(금) 14:48
아르미니우스와 반대파 간의 논쟁을 묘사한 그림.
1618~1619년 네덜란드의 도르드레흐트에서 소위 칼뱅주의 5대 강령이 채택됐다. 전적 타락(Total depravity), 무조건적 선택(Unconditioned election), 제한 속죄(Limited atonement), 거역할 수 없는 은혜(Irresistible grace), 신자에 대한 궁극적 이끄심(Perseverance of the saints)이 그것으로, '도르트신조'라 불리는 이 강령은 흔히 각 항목의 첫 글자만 택해 'TULIP'이라고 불린다. 이렇게 해서 네덜란드의 국화이기도 한 튤립은 개혁주의의 5대 핵심교리를 상징하는 용어로 자리를 잡았다. 도르드레흐트에서 이러한 신조가 결정된 배경에는 야코부스 아르미니우스(1560~1609)와 프란치스쿠스 호마루스(1563~1641) 사이의 논쟁이 있다. 교회사에서는 이를 '아르미니우스 논쟁'이라 부른다.


#아르미니우스 vs 호마루스

논쟁을 촉발시킨 사람은 아르미니우스였다. 네덜란드의 아우데바테르에서 태어난 아르미니우스는 레이던 대학교에서 수학한 후 제네바로 건너가 칼뱅의 후계자 테오도르 베자의 지도를 받았다. 1587년 네덜란드로 귀국해 그 다음해부터 암스테르담에 있는 개혁파 교회에서 사역하게 되면서부터 예정론에 관해 스승 베자와 다른 생각을 갖게 됐다. 그는 개혁교회 정통주의자들이 추상적 사변에 치우쳐 인간의 의지와 선택을 깡그리 무시하는 예정론에 빠져 들었다고 지적하면서, 이들이 인간을 나무토막이나 돌처럼 취급하고 있고 심지어 하나님을 죄의 원인 제공자로 만들어 버렸다고 비판했다.

1603년 레이던 대학교의 신학교수로 임명되면서 아르미니우스는 같은 대학 교수였던 호마루스와 심한 갈등을 겪게 됐다. 호마루스는 아르미니우스가 개혁교회 정통교리인 예정론을 부인하면서 하나님의 주도권을 폄하하고 인간의 자유의지를 과장함으로써 철지난 펠라기우스주의를 불러들였다며 공개적으로 비난했다. 예정론을 둘러싼 두 사람 사이의 논쟁은 점차 양 진영의 갈등으로 확전됐으며, 이 갈등은 1609년 아르미니우스가 죽기까지 지속됐다. 아우구스티누스와 펠라기우스 사이에, 그리고 루터와 에라스무스 사이에 벌어졌던 논쟁이 또 다른 모습으로 개혁교회 안에서 터져 나온 것이다.


#항변서 vs 반(反)항변서

아르미니우스 사망 다음 해인 1610년 그의 지지자 46명이 다섯 항목으로 자신들의 주장을 정리해 '항변서'를 작성했다. 이런 까닭에 이들을 '항변자들' 혹은 '아르미니우스주의자들'이라 부르게 됐다. 이들이 주장한 다섯 가지 요점은 다음과 같다. 첫째, 하나님은 어떤 사람이 믿을 것인지 믿지 않을 것인지를 미리 아시고 그 예지(豫知)에 근거해 선택하거나 버리신다. 둘째,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사람을 위해 죽으셨지만, 믿는 자에게만 그 효력이 미친다. 셋째, 인간이 타락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가 필수적이다. 넷째, 하나님의 은혜는 거부될 수 있다. 다섯째, 성도가 끝까지 믿음을 지키며 마지막까지 이끌림을 받을 것인지는 불확실하다. 이런 주장은 정통 칼뱅주의자들에게는 도저히 수용할 수 없는 이단적 논리였다. 따라서 호마루스를 추종하는 정통 칼뱅주의자들은 1611년 일곱 항목으로 된 '반(反)항변서'를 채택해 아르미니우스주의자들을 비판했다. 이들이 제시한 일곱 항목은 이후 도르드레흐트에서 'TULIP'으로 공식화된다.


#도르드레흐트 교회회의

네덜란드 개혁교회는 항변파와 반항변파의 논쟁을 종식시키기 위해 도르드레흐트에서 회의를 개최했다. 도르드레흐트 회의는 1618년 11월 13일부터 1619년 5월 29일까지 7개월 넘는 기간에 걸쳐 180여 차례 모였으며, 네덜란드뿐만 아니라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프랑스, 스위스에서 100여 명의 대표들이 참석했다. 그야말로 국제적인 개혁교회 회의였다. 항변자들은 자신들이 '오직 성경'의 기초에 굳건히 서 있으며, '은혜에 의한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로움'이라는 종교개혁 신앙에 충실하다고 주장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선행적 은총의 결정적 중요성을 확신하면서, 그와 동시에 인간 의지의 수동적 역할을 인정하는 것뿐이라며 스스로를 변호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통주의자들이 다수인 회의에서 항변자들은 모두 이단자로 정죄를 당하였고, 수많은 사람들이 투옥되거나 추방당했다.

도르드레흐트회의는 항변파들의 다섯 가지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하는 도르트신조를 발표했다. 하나님의 예지를 조건으로 내건 선택에 반대하여 하나님의 무조건적 선택(U)을, 보편속죄에 반대해 제한속죄(L)를, 인간의 단순한 타락에 더하여 전적 타락(T)을, 은혜를 거역할 수 있다는 주장에 반대하여 거역할 수 없는 은혜(I)를, 신자라 할지라도 믿음에서 멀어질 수 있다는 주장에 반대하여 신자의 궁극적 이끌림(P)을 주장했다. 이렇게 하여 소위 칼뱅주의 5대 강령 'TULIP'이 채택됐다.


#아르미니우스 논쟁 이후

도르드레흐트 회의를 통해 정죄를 당하고 패퇴했다고 해서 아르미니우스주의가 사라진 것은 결코 아니다. 지금도 네덜란드에는 40개 이상의 교회에 5000명이 넘는 아르미니우스주의자들이 있고, 존 웨슬리의 감리교회와 초기 침례교회는 아르미니우스의 신학을 받아들였다. 오늘날에도 여러 교단 안에 심지어 개혁교회 내부에도 아르미니우스의 자유의지론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신이 모든 삶의 중심이었던 세계관에서 점차 인간의 자율성이 강조되는 세계관으로 사람들이 기울게 되면서, 아르미니우스의 주장이 보다 설득력을 얻어가고 있는 듯하다.

도르트신조가 채택된 배경에는 17세기 정통주의 시대정신이 있었다. 당시 로마가톨릭은 물론이고 프로테스탄트교회 내에도 자신의 가르침만을 정통이라 주장하며 조금의 차이도 용인하지 않으려는 태도가 편만했다. 그렇게 되면서 프로테스탄트교회 또한 처음의 유연성을 잃고 제도화되면서 화석화된 교리에 집착하게 된 것이다. 예를 들어 칼뱅에게 예정론은 결코 신학의 중심주제가 아니었고 구원의 과정에서 다루게 되는 하나의 논점일 뿐이었다. 그러나 17세기 정통주의자들은 예정론을 마치 신학의 핵심주제요 하나님의 본질에 속한 교리인 것처럼 만들었다. 그리하여 예정이 아담의 타락 전에 이뤄졌는지 타락 후에 이뤄졌는지, 미리 아심(예지)이 먼저인지 미리 정하심(예정)이 먼저인지와 같은 현학적인 논쟁에 매몰돼 그리스도인의 삶을 풍성하게하기보다 메마르게 하고, 교회를 든든히 세우기보다 분란에 빠뜨리는 우를 범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는 과거의 역사를 반면교사로 삼아 미래를 열어가야 할 것이다.

박경수 교수 / 장신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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