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 속에서 오실 예수님의 인내 배웁니다"

"노동 속에서 오실 예수님의 인내 배웁니다"

[ 성탄특집 ] 코로나19 시대, 택배 기사의 하루 동행취재

최샘찬 기자 chan@pckworld.com
2020년 12월 22일(화) 08:00
오늘 하루 배달해야 하는 박스들이 1톤 탑차에 가득 실렸다. 한산석 집사는 "어떻게 매일 같이 이 많은 박스들이 또 들어오는지 신기하다"라고 말했다.
"택배 기사들이 처한 현실이 개선되도록 우리 사회가 힘을 모을 수 있게 기도해주세요. 택배 기사들에게도 호흡을 가다듬고 기도할 시간이 허락되도록 기도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코로나19로 택배 물량이 증가하고 택배 기사 과로사가 사회적 관심을 받는 가운데, 성탄절을 앞두고 택배 기사 한산석 집사(52·성문밖교회)가 한국교회와 성도들에게 기도를 요청했다. 2002년부터 택배를 배달해온 한 집사는 올해 택배 배달 19년차다. 담당 지역에서 하루 250~300개의 택배를 배송해온 그가 지금까지 배달한 택배 개수만 어림잡아 계산해도 140만개에 이른다.

택배 업계에서 잔뼈가 굵고 동료 기사들에게 '택신'(택배의 신)이라고도 불리지만, 최근"코로나 영향으로 역사상 가장 많은 택배들을 나르고 있다며 상황의 심각성을 알려줬다. 그는 "코로나 발생 후 택배 물량이 30% 증가해 여름 휴가철 비수기도 사라졌고, 3월부터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며, "택배 기사들이 감당할 수 있는 물량의 한계와, 노동시간의 한계를 넘어 많은 희생자가 생겼다. 저녁 9시면 집에 있던 때가 그립다"고 말했다.

그의 하루는 오전 5시 30분에 시작된다. 오전 7시까지 터미널로 출근해 그날 배송할 물건들을 분류하고 나면, 오전 11~12시부터 본격적으로 배달을 시작한다. 250~300개의 택배를 집집마다 배달하고 거래처 집하까지 마치면 평균 퇴근 시간은 저녁 9시. 주 6일 근무시 80시간 이상 근무다. 택배 일을 하면서 그의 몸무게는 82kg에서 67kg으로 줄었다. 식사시간이 불규칙하기도 하지만, 밥을 먹으면 몸이 처지기 때문에 먹지 않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장시간 근무에 노동 강도도 만만치 않다. 시간과 경쟁하듯 매번 달린다. 1분이라도 더 빨리, 한 개라도 더 배달해야 하는데 도구는 1톤 탑차와 손수레 뿐이다. 문앞, 소화전, 경비실, '부재시 경비실' 등 가지각색 요청에 맞춰, 고구마, 노트북, 청소기, 절인 김치 등 크기와 무게가 제멋대로인 박스들을 이고 끌고 메고 안고 온 몸으로 옮긴다.

1층에 서 있던 엘리베이터를 놓치면 옆동으로 뛰어간다. 박스로 가득 찬 작은 엘리베이터 안에서 그는 작은 글씨로 적힌 주소를 보며 층별로 박스를 분류하기 위해 허리를 연신 굽혔다 편다. 마음이 급한 이유는 해가 지면 건물 구분이 쉽지 않고, 퇴근한 주민들로 엘리베이터가 붐비기 때문이다. 또한 저녁 7시까지 택배를 발송하려는 거래처에 방문해 집하해야 한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릴 시간이 없어 택배를 두팔 가득 안고 계단을 뛰어내려가지만, 바쁜 와중에도 그는 주님을 만난다. 배달하는 고객들의 현관문 앞 교회 명패만 봐도 반가워하고, 엘리베이터 안에서 교회 성도가 보내준 성경 구절을 읽고 묵상한다. 이와 같이 기도하는 마음으로 그는 고객들이 기다리는 상품과 사랑하는 사람이 보낸 선물들을 전달한다.

과거 배달하는 곳이었던 성문밖교회를 9년 전부터 출석한 그는 "신앙생활 후 변화한 점은 가장 먼저 감사하는 마음이 생겼다"고 고백했다. 한 집사는 배송 중 만나는 고객들의 따뜻한 인사, 응원 문자에 기운을 얻는다. 특히 어떤 고객은 부재중에 예쁜 포장지에 간식거리와 응원의 메시지를 붙인 선물을 두기도 하는데, 이런 날이면 택배 기사들이 모인 단톡방에 올리고 자랑하기도 한다.

배달 중 받은 고객들의 선물들.
그는 "고객님들이 식사는 하셨냐고 물어도 보시고, 추운 날씨에 수고하셨다고 감사하다는 문자를 종종 받는데, 이러한 관심과 응원이 택배 기사들에게 큰 힘이 된다"면서 "하나님이 주신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하는 노동인데 죽음으로 내몰리지 않도록 노동 시간을 줄이고 기사들의 처우가 개선될 수 있도록 성도님들이 관심 갖고 기도해달라"는 당부를 잊지 않았다.

동료 기사들의 잦은 부상과 택배 기사 과로사 사건에 마음이 아프다는 그는 "중학교 전 교과 과목을 익히는데 주어진 시간은 3년이지만, 택배 기사가 300개의 물량을 배달하는 데 주어진 시간은 단 7시간"이라며, "자본의 시간은 누구든지 성문 밖으로 밀려나지 않기 위해 자기가 가진, 하나님이 주신 능력을 넘어서라고 강요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주님은 인내하시면서 주님이 오실 그날까지 시간을 더 주셨는데, 자본에게 유리하게 만들어진 법과 제도의 시간으로, 주님이 오실 그날을 더디다고 원망하지 않고, 경건하고 흠없는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다"라고 바람을 소개했다.


최샘찬 기자

"택배요~" 대부분 문 앞에 두고 가지만, 고객 요청에 따라 벨을 누르고 기다리는 경우도 있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택배들을 분류하고 있다.
카드 뉴스
많이 보는 기사
오늘의 가정예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