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 향한 예언자적 목소리 높여

미래 향한 예언자적 목소리 높여

[ 창간75주년 ] 본보 디지털 아카이브로 본 75년의 사건 사고(하)

한국기독공보
2021년 01월 13일(수) 12:43
한국기독공보 1995년 7월 8일자.
1980년대- 민주주의의 열망 표출

"…박종철 학생의 고문치사 사실을 접할 때 우리는 그동안 끊임없이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인권 탄압과 우려를 금치 못했던 고문에 대한 온갖 소문이 단순한 추측이 아니라 명백한 사실이었음을 확인하면서 크나큰 충격과 통분을 금할 수 없다… 제5공화국은 출발 당시부터 광주에서의 무고한 백성들이 피를 흘림으로 시작되었으며… 정통성 결여와 통치능력이 부재한 현 정권은 오로지 군경의 물리력에만 의존하여 국민적 신뢰와 기반을 전혀 확보하지 못하게 되었고 작금에 이르러 이를 내각제 개헌으로 호도하여 장기집권까지를 꾀하고 있는바 이는 명백히 민의에 대한 역행이요… 우리는 현 정권을 더 이상 신뢰할 수 없으며 국민을 위한 민주정부라 인정하기도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는 것이 솔직한 심경이며…"(1987년 6월 6일자 시국성명서)

1987년 1월 14일 서울대생 박종철 열사가 치안본부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조사를 받던 중 고문과 폭행으로 사망했다. 경찰은 '탁 치니 억 하고 쓰러졌다'는 망언을 내놓으며 단순 쇼크사로 사건을 마무리 하려고 했지만 '우리한테 남은 마지막 무기는 진실뿐'이라며 분노한 학생과 시민들은 거리로 나왔다.

본보는 총회가 정권의 부도덕성을 정면으로 비판하며 철저한 진상 규명을 요청하는 내용을 1면에 게재하며 '진실'의 목소리에 힘을 보탰다.

1987년 1월 21일자 1면의 총회 시국선언문에는 "우리는 현 정권을 더 이상 신뢰할 수 없으며 민주정부라 인정하기도 어렵다. 하나님과 민족 앞에 죄악을 회개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고문 및 용공조작저지 공동대책위도 "관계당국의 발표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많은 의혹이 남아있다. 다시는 이 같은 불행한 사태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도 이 사건의 진상은 철저히 규명되어야 한다"는 주장과 박종철 군 추모기간을 정하고 국민 모두가 검은 리본을 패용할 것을 호소하고 있다.

87년 1월 박종철 고문치사에 이어 같은 6월 이한열 열사의 최루탄 사망으로 6.10민주항쟁의 도화선이 됐다. 6.10항쟁은 종교와 성별을 가리지 않고 전국 18개 도시로 시위가 확대됐으며 당시 30대 '넥타이부대'의 가세로 6.29선언을 이끌어 민주화의 물꼬를 튼 역사적인 사건이다.

본보는 민주화를 위한 감시자로서의 역할을 다짐하며 교단의 입장을 보도했다. 성명서에는 "6·29를 전환점으로 온국민이 내일에 대한 희망을 공유하게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고 전제하고 "민주화에의 열망을 잃지 않고 선한 싸움을 계속해온 민주시민에 경의를 표한다"고 밝혔다. 아울러 "6·29 전환점은 민주화의 여정에서 바른 길로 들어선 계기일뿐 성취는 아니다"라면서 △일희일비하지말고 신중한 민주적 감시자로서의 역할을 다하며 △6.29 발표를 정권퇴진 요구의 처방으로 생각말고 민주장정에 순응, 양심수를 국민의 품으로 돌려주며 △정치인들은 빈 마음으로 대화를 진행하여 기회를 만들어준 국민에 보답하라는 등의 내용을 담았다.

1980년대는 5.18광주민주화운동부터 서슬퍼런 신군부의 총칼 앞에 목숨을 걸고 민주화를 열망했던 학생과 시민들의 희생이 바쳐진 가슴 아픈 시대다. 그러나 1980년 초 신군부 주도 하에 '언론기관 통폐합 원칙'이 발표되면서 언론이 제기능을 하지 못했고, 사건이 조작·은폐되면서 수많은 진실이 묻혀질 수밖에 없었다. 이 때 본보는 예언자적인 목소리를 높이며 보도를 이어가려고 노력한다. 이를테면 '광주 시민과 민족의 내일을 위해 기도하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1980년 6월 7일)고 촉구하고 총회장이 직접 광주를 방문한 사실과 재경호남교역자들이 모여 광주를 위해 기도하는 '기도회'를 보도했다.

한편 1981년 5월 23일 제13회 연례국가 조찬기도회에 전두환 씨를 비롯한 1000여 명의 교계인사가 참석한 가운데 열린 사실이 보도된 것도 눈길을 끈다. 전 씨는 "오늘날 상황이야 말로 우리 교회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 절실히 기대된다"면서 "서구민주국가의 발전이 기독교문화를 배경으로 했듯 우리의 새 역사 건설을 위해서도 교회의 역할은 실로 중대하다"고 강조했다. 역사는 기록됐고, 이를 평가하고 비판하며 교훈을 찾아가는 것은 이제 후손들의 몫으로 남았다.

이후에는 본보에 시국에 대한 교단 입장이 적극 보도되며 예언자적 목소리와 사회책임에 대한 역할을 지속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1982년 12월 25일자 '인간성 회복 위한 선교에 우선'이라는 제목의 시국성명서에는 "민족의 파수꾼으로서 책임을 다할 것"과 "언론통폐합 이후 언론의 왜곡 과장 편향보도 등 횡포로 선교의 영역을 크게 위축받고 있음"에 유감을 표명하고, "하나님이 주신 신앙양심에 따라 진리수호에 헌신할 것"을 다짐하는 내용이 담겼다. 이후에도 사회 정황을 비상시국으로 규정하고 시국 전반에 대한 본교단의 입장을 대내외에 천명하는 시국성명서를 적극적으로 보도한다.

자성의 목소리도 높인다. 1986년 5월 3일자에는 "오늘의 정황을 비상시국으로 규정하고 하나님은 불의 앞에서 침묵하는 것을 원치 않으신다"고 선언하며 "정치인들은 나라와 민족의 내일을 내다보며 시국을 타개하고자 하는 노력을 보여 주지는 않고 권력의 계속 장악, 또는 쟁탈을 목적으로 한두 갈래로 나뉘어 전투적인 대치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고 비난했다. 아울러 "일부 종교인들마저도 권력에 편승하여 지도자적 허영을 만족시키고자 하나님보다 인간을 더 기쁘게 하는 말세적인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는 자성의 목소리를 낸다.

1986년 12월 20일자에는 "정의는 왜곡되고 하나님이 부여한 인간의 기본적인 자유와 권리는 침해당하고 모순된 제도와 구조 때문에 민중은 신음하고 있다"면서 "교회가 진실을 외치는 것을 두려워했고 반면 불의한 권력에 아첨하거나 편승하기도 하여 교회에 대한 사회의 기대를 외면했다"는 반성을 드러내며 예언자로서 억압받는 자세에게 제사장으로서의 자세를 가다듬기 위한 다짐을 보이기도 했다.

최은숙 기자



1990년대- 경제위기 극복 한마음

1990년대는 월드와이드웹(WWW)이 개발돼 인터넷 등의 정보 기술이 본격적으로 대중에게 소개된 시기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본보는 인터넷과 관련한 여러 기획을 연재하며 교계 온라인 문화 확산에 기여했다.

본보는 1995년 제80회 총회에서 허락한 '총회 전산망 구성 청원'을 게재하면서, '총회·노회·교회를 잇는 온라인, 세계화·정보화시대 대비 반드시 필요한 제도'의 제목으로 "항상 살고 있는 그 시대를 향해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해야 하는 교회로서 이에 대해 준비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1995~1998년 '인터넷을 활용하자' '지금 PC통신에선' 등의 장기연재를 통해 세계교회협의회 장신대 등의 기관 홈페이지를 소개하고 인터넷을 통한 성경 주석 연구, 온라인 잡지 등을 알렸으며, 온라인 상에서의 크리스찬 목소리를 지면에 게재했다.

1996년 '멀티시대, 새로운 목회 욕구에 부응' 제하의 기사는 "세계화, 정보화 시대에 목회 일선에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교역자들은 답답하기만 하다. '컴맹 탈출'에 이어 '인터넷 까막눈'을 벗어나기 시작한 교인들은 속속 늘어나고..."라고 말한다. 이러한 움직임 속에 본보는 1997년 3월 교계 신문 최초로 인터넷 홈페이지 서비스 개시했다.

과거 인터넷이 첫 도입됐던 시기의 교계 반응은 현재에도 이어지고 있다.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 문화를 교계가 수용할 수 있도록 본보는 여전히 노력하고 있다.

1997년 12월 대한민국이 국가부도 위기에 처해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요청했다. 당시 교회 내 실직 교인들이 많았고, 교회들은 대출이자연체로 경매 위기에 처했으며, 기도회가 끊이지 않았다.

본보는 성도들의 소비습관을 점검하고 근검절약, 경건생활을 강조하는 내용의 기사들을 게재했다. 교회의 재정 절약방안을 소개하며, 'IMF특별기획 우리 동네 쉼터' 기획을 통해 무료 급식소를 소개하기도 했다.

또한 본보는 1998년 제83회 총회서 채택한 경제 위기 극복을 위한 교회의 신앙각서 전문을 게재했다. 당시 신앙각서는 "오늘의 경제파탄과 국가적 위기의 근원이 바로 이 나라의 정신적 타락과 윤리적 부패에 있다고 반성하면서, 타락한 정신과 윤리를 바르게 회복시켜 경제를 다시 살리고, 국민적인 아픔과 고통을 치유하는 것이 교회가 이 시대에 해야 할 선교적 사명임을 절실히 통감한다"라며, "가난하고 고통받는 이웃을 사랑하고 보살펴야 할 책임이 있는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은 온갖 자원과 역량을 바쳐 희생자들을 돕고, 절망 속에 낙심한 자들에게 위로와 희망을 주는 봉사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라고 촉구했다.

1990년대엔 휴거설, 지존파, 성수대교·삼풍백화점 붕괴, 노태우·전두환 전대통령의 구속 등의 사회 이슈들이 있었다. 그때마다 본보는 기독교적 관점에서 예언자적 사명을 감당하기 위한 목소리를 내왔다.

다미선교회 등 시한부 종말론자들은 1992년 10월 28일을 세계 종말의 날이라고 휴거설을 주장했다. 이에 대해 본보는 1991년 2월 '특집기획 시한부 종말론 그 실체를 해부한다' 제하의 기획 기사로 "직통계시 주장, 성경을 멋대로 해석, 세기말적 위기의식이 급속도로 번지고 있다"라며, "한국교회는 순교자적 열정을 되살려 오늘과 같은 현실이 미래를 향한 바른 신앙과 신학을 정립하는 계기가 되도록 겸허한 모습으로 돌아와야 한다"고 경고했다.

1993년 지존파 살인사건이 일어나자 본보는 사설을 통해 "한국교회는 생명의 존엄성을 되찾고 인간의 도덕성을 회복하기 위해 앞장서야 한다"라며 기독교적 가치관을 이 사회에 세우는데 본을 보이고, 범죄자나 범죄 가능성 있는 자들을 위해서 제도적이고 적극적인 선교와 이 사회에 대해서 그리스도의 사랑 실천 등을 주장했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로 32명 사망한 사건과 관련해 본보는 '성숙한 신앙공동체의 모습 보이자', '책임 실종시대의 기독교인' 등의 제하의 사설로 "우리가 짚어야 할 부분은 경제적 손실에 앞서 정신적 손실이다. 고통당하는 민족과 이웃의 아픔을 해결하지 못하는 교회라면 그 존재 자체가 부끄럽다"라며,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모든 것을 '내 탓'으로 돌렸던 가장 숭고한 희생의 버팀목이었고, 바로 거기서 인류구원의 역사가 시작되었던 것"이라며 회개를 촉구했다.

1995년 말 노태우 전두환 전대통령이 구속될 당시, 본보는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 관련 철저한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교회협의 성명과 총회장 담화문을 게재했다. 당시 총회장 담화문은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 전국 5580여 교회, 210만 성도들은 노태우 전 대통령의 상상을 초월하는 비자금 조성 파문과 관련한 일련의 보도를 전하면서 참담한 심정을 금할 수 없다"라며, "관련자는 누구든지 그에 상응하는 도덕적, 법적 심판을 받아 다시는 이런 일이 재발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모든 분야에 걸쳐 하나님의 정의가 실현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최샘찬 기자



기독교인들의 태안 기름유출 복구 노력을 다룬 기사.
2000년대- 한반도 평화 향해 전진

2000년 밀레니엄을 맞은 해 우리나라의 가장 큰 뉴스는 당시 대한민국 김대중 대통령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평양에서 2000년 6월 13일부터 6월 15일까지 2박 3일 동안 진행한 남북정상회담에 관련한 뉴스였다.

본보도 2000년 6월17일자 1면에 '남북정상…"평화·화해의 물꼬 텄다"'는 제목의 헤드라인과 함께 두 정상이 평양 순안공항을 환하게 웃으며 걷고 있는 사진을 게재했다. 이 기사에서는 NCCK와 한기총 등 교계도 남북 화해를 기대하는 모습을 담았으며, 아시아기독교협의회(CCA)에서도 남북정상회담을 적극 지지한다는 메시지를 보내온 것에 대한 기사를 실었다. 이외에도 본보는 2007년 노무현 정부의 남북정상회담, 2018년 문재인 정부의 남북정상회담시에도 남북 화해와 통일을 염원하는 기사를 충실하게 보도하고, 사설과 특집기사, 기획 등을 통해 평화를 위한 교회의 역할에 대해 모색했다.

2007년 12월 7일 충남 태안군 만리포 북서방 5마일 해상에서 풍랑을 만난 삼성중공업 소속 해상크레인이 14만 6000t급 홍콩 선적 유조선 '허베이 스피리트호'와 충돌, 원유 1만 2547㎘가 바다로 유출되어 사상 최악 해양오염 사태가 발생했다. 엄청난 원유가 유출되어 순식간에 까만 원유로 생태계가 파괴된 시점 한국교회의 봉사 열정이 충남 태안으로 몰렸다.

전국에서 120만여 명의 자원봉사자가 태안으로 와 기름 제거에 나섰는데 이중 교회와 기독교 단체에서 온 자원봉사자들이 80만여 명에 이르렀다. 아카이브를 통해 당시 본보를 보면 흰 옷에 기름때를 잔뜩 묻힌 자원봉사자들이 구슬땀을 흘리며 희망을 전하는 생생한 장면들이 다수 게재됐다. 또한, 총회를 비롯한 연합기관, 각 교회와 산하 단체 등에서 봉사에 참여한 소식들을 다양하게 보도한 기사들을 확인할 수 있다. 이외에도 분열과 반목을 거듭하던 한국교회가 디아코니아로 하나가 되는 현상에 대한 분석 및 기획기사를 보도했다.

2014년 4월 16일은 우리 국민에게 잊을 수 없는 슬픔의 날이다. 인천에서 제주로 향하던 여객선 세월호가 진도 인근 해상에서 침몰하면서 전체 탑승자 476명 중 304명이 사망·실종됐다. 대한민국이 모두 함께 울었고, 그 슬픔의 여파는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교계는 세월호 사고가 발생한 후 기도회를 열어 생존자들의 무사 귀환을 위해 기도했고, 본보는 온 국민이 함께 애도하는 모습을 지면에 보도했다. 사고 발생 직후는 물론 수차례 직접 진도 팽목항에 내려가 현장을 취재했으며, 이후에도 유가족, 그리고 실종자 가족들의 아픔, 그리고 이들을 위한 자원봉사자들의 모습, 슬픔을 함께 하기 위해 사회 각계 각층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애도하는 모습들을 지면을 통해 보도했다. 본보는 사건 당시뿐 아니라 몇 년의 시간을 두고 희생자들을 "잊지 않겠다"고 약속한 그 다짐들을 기억하며, 최근에도 유가족들로 구성된 '4.16 목공소' 등을 취재해 이들이 아픔을 극복하고 있는 모습도 조명했다. 표현모 기자
민족의 아픔 앞에서 공적 책임 호소    본보 디지털 아카이브로 본 75년의 사건 사고(상)    |  2021.01.13 1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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