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테네와 예루살렘

아테네와 예루살렘

[ 인문학산책 ] 1

박원빈 목사
2021년 01월 19일(화) 08:08
아테네와 예루살렘이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초기 기독교 저술가인 터툴리아누스의 말이다. 여기서 아테네란 서구 철학의 발상지인 그리스 철학을 의미하고 예루살렘은 유대교와 기독교 전반을 지칭하는 말이다. 다른 말로 바꾸면 신앙과 이성이 무슨 상관인가로도 바꾸어 물을 수 있는 질문이다. 이런 이분법은 신학과 철학, 초월과 내재, 하나님과 인간 등으로 계속 이어갈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양자가 칼로 물 베듯이 영역 구분이 분명하지 않다는 것이다. 터툴리아누스 자신도 초기 삼위일체론을 확립하기 위해 스스로 철학적 훈련을 받았고 이성적이며 논리적인 글쓰기로 교리를 확립해 갔다.

기독교 역사에서 신앙을 가진 '신학자'들은 특정한 종류의 이단 교리에 대해서는 매우 적대적이었다. 그렇다고 해도 그들이 합리적 판단에 기초한 이성을 용도 폐기한 것은 결코 아니다. 하나님 주신 이성이란 선물을 최대한 사용하여 진리의 성경을 지킨 일종의 '변증학'을 세워나갔기 때문이다. 이처럼 개념적인 구분은 가능하지만 인간은 아테네와 예루살렘 사이를 끊임없이 왕복하는 중간에 있는 존재이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은 내가 아테네(철학)에 더 가까운지 아니면 예루살렘(종교)에 더 가까운지 한 번 스스로 점검해 보시기 바란다.


첫 번째 인문학자 소크라테스: 끊임없이 질문하라!

철학자의 시각에서 본다면 서구 지성사에서 예루살렘과 아테네는 끊임없이 멀어졌다 가까워졌다를 반복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최근에 한 트롯 가수가 '테스 형, 세상이 왜 그래?'라고 물었지만 아무 대답이 없었던 바로 그 테스 형이 서구 지성사의 첫 인문학적 출발이라고 할 수 있다. 왜 테스 형을 서구 철학의 아버지라고 불렀던 것일까?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은 자신들이 알지도 알 수도 없는 문제들을 탐구했다. 우주의 구성, 우주를 구성하는 근본적인 물질 등에 대한 탐구이다. 대체로 철학을 조금 공부하다가 포기한 분들은 엠페도클레스 아낙사고라스 아낙시메네스 등 낯선 이름에 기가 질려 포기하고 만다. 이름도 어려움을 보태는데 한 몫했지만 이들이 논의하는 주제 또한 실생활과는 너무 동떨어진 논의였다는 것도 무시할 수 없다, 그러다가 소크라테스에 이르러 질문의 방향이 전환된다.

우주와 그 근본을 묻는 질문에서 이제 인간에 관한 물음으로 방향 전환이 이뤄지는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인간의 내면, 보다 정확하게 인간 영혼을 돌보는 것을 자신의 과제로 삼고 다양한 주제를 탐구했다. 특히 인간 영혼은 소멸하거나 죽지 않기에 평생 연구의 대상으로 삼았다. 전해져 내려오는 바에 따르면 소크라테스는 시장에서 만나는 모든 사람들을 향해 질문했다. 심지어 만약에 죽음 이후의 세계가 있다면 죽어서도 자신은 똑같은 질문을 던지겠다고 말했다. 그가 평생에 내 건 삶의 슬로건은 '캐묻지 않은 삶은 살 가치가 없다'는 것이다.

그리스의 신들을 모시는 델포이의 사제는 소크라테스가 아테네에서 가장 뛰어난 현자라는 신탁을 했다. 하지만 정작 그 자신은 아무것도 모른다고 말했다. 다른 사람과 유일한 차이라면 소크라테스는 자신의 무지를 알지만 다른 사람들은 이를 모른다는 것. 자신의 무지를 너무 잘 알고 있었던 소크라테스는 그 어떤 책도 남기지 않았다. 나중에 스승과의 대화를 플라톤이라는 뛰어난 제자가 기억해 두었다가 대화편으로 출간해서 오늘날까지 전해지는 것 뿐이다. 각 대화편의 주제와 함의하는 내용이 방대하지만 대체로 소크라테스와 만나 대화하는 토론자들은 다음과 같은 과정을 경험한다.

1. 소크라테스가 무엇(덕, 정의, 진리, 아름다움)에 대해 알고 있다고 하는 A를 만난다.

2. 소크라테스는 A가 알고 있는 것의 논리적 결함을 찾고 그 허점을 드러내어 A 스스로가 무지를 인정할 수밖에 없게 만든다.

3. 두 사람이 내린 결론은 지금까지 알고 있다고 생각한 것이 허구임을 발견하고 보다 나은 진리를 찾기로 다짐하며 헤어진다.

대부분의 대화편이 이렇게 끝이 난다. 소크라테스를 진정한 인문학자라고 할 수 있는 이유는 오늘날 우리에게도 유효한 질문을 끊임없이 제기했기 때문이다. 이 질문을 통해 우리는 더 구체적이고 확실한 지적 관념과 풍부한 상상력을 얻게 되었다. 반대로 진리에 대해 아무 반성(反省)없이 받아들이는 위험한 교조적 확신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악법도 법이다

아테네 사람들의 무지를 깨우치는 것을 사명으로 알았던 소크라테스의 행보는 당시 지도층을 불편하게 했다. 아테네 당국은 신을 모독하고 젊은이들을 타락시킨다는 죄목으로 소크라테스를 고소했다. 시 당국은 재판을 통해 대중적인 망신을 주면 소크라테스가 자신의 기행(奇行)을 멈추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소크라테스는 오히려 재판관과 배심원들을 준엄하게 꾸짖는다. 자신은 아테네 시민들의 무지를 일깨우는 등에(짐승의 등에 붙어 피를 빨어먹어 짐승을 자지 못하게 하는 벌레) 역할을 하기에 오히려 감사해야 한다고 호통을 친다. 당국자들의 심기를 건드린 소크라테스에겐 사형선고가 내려지고 그의 친구들이 간수에게 뇌물을 써서 탈출을 계획한다. 하지만 친구들의 간청에도 내가 만약 도주를 하면 법과 자신이 지금까지 가르친 것을 부정하는 셈이라고 말하며 탈출을 거부한다. 독배를 마시기 직전까지 그는 친구들과 올바른 삶과 영혼에 대해 진지하게 토론을 하였다. 서구 지성사에서 소크라테스를 첫 번째 인문학자로 보는 이유는 그의 삶과 가르침이 하나였기 때문이다.

박원빈 목사/약수교회

#박원빈 목사는
미국 프린스턴신학교에서 현대신학, 보스턴대학교에서 종교철학과 윤리전공으로 박사(Ph.D.) 학위를 받았다. 미국장로교(PCUSA) 퀸지영생장로교회 담임목사를 역임한 후 숭실대학교와 장로회신학대학교 등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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