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죄와 벌':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나니

소설 '죄와 벌':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나니

[ 인문학산책 ] 6

빅원빈 목사
2021년 03월 01일(월) 15:43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 '죄와 벌'에는 가난한 대학생 라스콜리니코프와 그의 죄를 깨닫게 해 주고 다시 빛으로 인도하는 매춘부 소냐가 중심인물이다. 제정 러시아가 무너지고 새로운 사회주의 체제로 변화하는 격변의 시기에 라스콜리니코프는 불의한 전당포 노파를 죽이는 것을 스스로 정당화한다. 자신은 정의를 실현하는 '심판자'이며 위대한 '초인'이라는 착각에 빠진 것이다. 하지만 모든 일에는 늘 예기치 않은 일들이 생기는 법. 가난한 사람의 피를 빨아먹는 노파를 죽이는 것을 애써 정당화 하지만 예고도 없이 찾아온 노파의 여동생마저 살해하고 나서는 얘기가 달라진다. 목격자도 물증도 없었지만 두 차례나 살인을 저지른 후 라스콜리니코프는 고통과 죄책감으로 몸부림친다. 이를 눈치챈 예리한 판사 포르피리는 라스콜리니코프를 심리적으로 압박하여 결국 자백을 받아내고 청년은 시베리아로 이송된다.

죄를 지으면 당연히 벌을 받아야 하는 것이 법의 논리라면 라스콜리니코프는 소냐의 사랑을 통해 법을 뛰어넘는 한 줄기 구원의 빛을 발견하게 된다. 라스콜리니코프가 8년 형을 받고 시베리아고 갈 때 소냐는 망설임 없이 사랑하는 청년을 따라간다. 혹독한 추위에도 아랑곳없이 소냐는 매일 청년을 위로하고 그의 모든 역정을 묵묵히 참고 견디어 낸다. 감옥 생활에 지친 라스콜리니코프가 병으로 누웠을 때 소냐는 헌신적인 사랑으로 그를 살려낸다. 라스콜리니코프는 마침내 소냐를 통해 참 사랑이 무엇인지 발견한다.

소설의 주인공들은 대체로 소설가 자신의 생각과 이상을 투영한다. '죄와 벌'이라는 모티브가 매우 기독교적인 주제이기는 하지만 도스토예프스키의 연구자들은 사실 그가 평생 돈에 쪼들려 고생하고 돈 문제로 싸우다가 죽었다고 말한다.

당대 유명한 러시아 문호 투르게네프, 톨스토이는 지주 계급으로 물려받은 유산과 높은 인쇄 등으로 생계를 위해 글을 쓰지 않아도 되는 작가였다. 그들과 달리 도스토예프스키는 중산층 부모에게 받은 유산을 일찌감치 날리고 자신도 도박에 빠져 채무자로 감옥에 가지 않으려면 '목숨을 걸고' 글을 써야 할 정도로 절박했다. 작가가 처한 실존의 고통 때문이었을까? '죄와 벌'에는 유독 돈으로 타락한 인물들이 벌이는 낯 뜨거운 추태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러시아 이름 중 무슨 무슨 스키로 끝나면 그래도 귀에 그리 설지는 않지만 좀 더 긴 이름의 스비드리가일로프는 돈을 위해서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 인물이다. 라스콜리니코프가 공정과 정의로운 사회를 꿈꾸는 이상주의자라면 스비드리가일로프는 철저한 현실주의자이다. 그가 결혼하는 이유는 도박 빚 때문이었다. 마르파라는 돈 많은 미망인이 그를 위해 모든 빚을 청산해주고 그 대가로 일종의 노예계약을 맺는다. 평생 마르파를 위해서만 살기로 서약하는 것이다. 마르파는 스비드리가일로프가 도망가지 못하게 3만 루블이나 되는 차용증서를 써 준다. 스비드리가일로프가 조금의 배신의 기미라도 보이면 차용증서를 내밀며 위협한다.

야곱이 아내 라헬을 얻기 위해 7년을 하루 같이 삼촌 라반을 섬겼던 것처럼 스비드리가일로프도 7년 만에 마르파의 마음을 얻는다. 하지만 스비드리가일로프는 아내로부터 차용증서를 돌려받자마자 폐기해버리고 아내 마르파를 아무도 모르게 살해한다. 자신을 돈으로 산 아내를 죽임으로 자유를 얻은 사람이 다음에 할 일은 돈으로 여인을 사는 것이었다. 실제로 어린 처녀에게 1500루블어치의 선물을 안기자 그 처녀는 스비드리가일로프 앞에서 이렇게 행동했다.

"그 애는 갑자기 내 목에 달려들어 나를 두 팔로 꼭 껴안고는 키스하면서 순종적이고 충실하고 선한 아내가 되겠다고, 나를 행복하게 해 주겠다고, 생애의 매 순간, 전 생애를 바쳐서 모든 것, 모든 것을 희생하겠다고 맹세하더군요."

돈을 위해 위장 결혼도 서슴지 않았던 그가 돈의 위력 앞에 속절없이 무너지는 여성들을 보자 돈이면 무엇이든지 다 할 수 있겠거니 더욱 확신하게 된다. 마침내 스비드리가일로프는 참으로 사랑하는 여인을 만나게 된다. 그 여인은 다름 아닌 주인공 라스콜리니코프의 여동생 두냐이다. 이미 돈의 위력을 실감한 스비드리가일로프는 1만 루블을 두냐에게 안긴다. 그리고 두냐가 자기와 결혼을 허락하면 더 많은 돈을 안겨주리라고 약속한다. 하지만 두냐는 선불로 제안한 1만 루블은 물론, 여기에 플러스 알파의 금액까지 모두 거절하자 스비드리가일로프는 큰 충격에 빠진다.

'칼을 가지는 자는 다 칼로 망하느니라'(마 26:52)라는 진리의 말씀처럼 돈이 전부이고 돈으로 무엇이든지 다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 사람이 사랑을 얻지 못했을 때 충격이 너무 컸던 것일까? 사랑을 돈으로는 살 수 없음을 깨달은 스비드리가일로프는 권총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의도적으로 라스콜리니코프와 스비드리가일로프를 대조적으로 묘사한다. 둘 다 사람을 죽였다. 두 사람 다 죄인이다. 하지만 한 사람은 시베리아에서 다시 태어나는 '중생'을 경험하지만 또 한 사람은 자살로 마지막 기회마저 놓쳐버린다.

돈이면 무엇이든지 다 되는 세상 속에서 살면서 도스토예프스키는 역설적으로 돈으로 살 수 없는 돈보다 귀한 사랑을 그리고 있다. 우리가 살아가는 자본주의 세상에서 돈의 위력은 새삼 말할 필요가 없다. 작가는 '죄와 벌'의 말미에서 소냐의 입을 통해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을 라스콜리니코프에게 말해준다. 소냐가 읽어주는 요한복음의 구절이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도스토예프스키는 영생을 믿었다. 돈의 위력을 누구보다도 실감하고 그 위력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었던 사회였지만 돈으로 영원한 생명도, 사랑도 살 수 없음을 선언하고 있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마 6:24).

박원빈 목사 / 약수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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