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테의 '신곡' 읽기

단테의 '신곡' 읽기

[ 인문학산책 ] 7

박원빈 목사
2021년 03월 09일(화) 13:39
단테와 베아트리체 사랑의 순례.
단테의 '신곡(神曲)'은 지옥과 천국 체험을 담은 작품이다. 서사시의 기법으로 부활절 직전, 그러니까 고난주간부터 약 15일 사이에 이루어진 사순절에 읽기에 적합한 고전이 아닌가 싶다. 또한 시기적으로 중세가 끝나고 르네상스와 더불어 근대의 태동을 알리는 작품이기도 하다. 작품에서 단테는 교리적 차원에서 사후 세계를 다루는 것이 아니다. 지옥, 연옥, 천국의 단계를 거치면서 저자는 다양한 영혼들을 접하게 된다. 길 잃은 영혼들과의 만남은 단테가 차안에서도 늘 접하는 다양한 인간 군상들이었으며 이를 통해 다가오는 '천국'을 준비하는 중세판 '천로역정'이라고 할 수 있다.

원제 La Divina Commedia(1555)는 단테가 붙인 제목은 아니고 후대에 붙여진 제목이다. 단테 자신은 이 작품을 Commedia라고만 불렀다. 제목에 '신적인'이란 형용사는 후에 최초의 단테 주석서를 쓴 보카치오가 붙였다고 전해진다. 천국과 지옥을 다루는 주제이니 'divine'이란 형용사는 이해가 되나 왜 코메디아라고 했을까? 이태리어 코메디아는 노래라는 뜻(曲)이기도 하지만 연극을 뜻하는 '극(劇)'이란 의미도 있다. 희랍어 코모디아에서 파생된 이 단어는 희극(희劇)을 뜻하고 트라고디아는 비극(tradegy)을 뜻하는 단어이다. 단테는 희극을 썼지만 시작은 지옥이다. 그 이유를 한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밝힌다. "나는 신곡(코메디아)을 지옥의 비참함에서 시작하지만 천국의 행복을 보여주기 원합니다."

단테는 작품에서 천 년 전 로마의 시인 베르길리우스를 내세워 길을 잃은 영혼의 안내자로 삼는다. 여기에는 몇 가지 설이 있는데 베르길리우스가 단테의 고향과 가까운 만토바 출신이라는 점이다. 고향이 단테에게 중요한 이유는 로마의 건국과 관련이 있다. 로마의 건국의 주역인 로물루스와 레무스를 키운 이는 사람이 아니라 늑대였다. 반면에 그리스의 건국 신화는 신의 계보를 따른다. 영웅 아킬레우스의 모친은 테티스라는 여신이고 아버지는 펠레우스라는 왕족이다. 신화이지만 여신과 왕족의 후예인 그리스인에 비해 고아로 늑대의 손에 자라난 로마인들의 정신적 문화적 열등감은 매우 컸다.

로마 황제인 아우구스투스(Augustus)는 모든 것을 다 갖추었음에도 문화적으로 빈곤한 로마를 되살리려면 새로운 로마신화가 필요함을 자각했고 베르길리우스라는 서사시인에게 새로운 로마 건국 신화를 주문한다. 베르길리우스는 트로이 전쟁을 로마인의 구미에 맞게 재창조한다. 트로이 성이 함락할 때 모두 다 죽었지만 영웅 한 사람이 살아남아 이탈리아로 건너가 조국의 재건을 도모하고 그 영웅이 세운 나라가 로마이다. 영웅의 이름은 베르길리우스의 작품인 '아이네이스'였다.

또 하나의 설은 그리스 호메로스의 서사시에 등장하는 영웅들보다 인간의 깊은 좌절을 노래한 베르길리우스의 서사시를 단테가 더 좋아했을 것이라는 설이다. 이처럼 단테의 '신곡'은 그리스-로마 문화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지만 동시에 그 모든 이야기를 끌어가는 모티브는 기독교의 성경이라는 점에서 중세를 대표하는 문학 작품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단테 알리기에리(1265-1321)는 이탈리아 피렌체 사람이다. 두란테(Durante)란 세례명으로 '참고 견디는자'라는 뜻이며 두란테의 축소형이 단테이다. 우리나라에는 '신곡'만이 주로 알려져 있지만 '새로운 인생', '향연' 등의 작품 등 몇 권의 책이 더 전해진다. 단테와 반드시 함께 기억되는 또 하나의 이름은 베아트리체이다. 단테보다 1년 뒤에 태어난 아름다운 여인인데 단테가 9살에 만나 '영혼이 전율하는 것 같은 체험을 했다'고 쓴 것을 보면 상당히 조숙한 소년이었던 것 같다. 베아트리체아와의 사랑은 맺어지지 못하고 그녀는 24살의 나이로 요절한다. 그 후 천국에 있을 사랑하는 여인을 생각하며 평생 다시 만날 날을 꿈꾸며 지낸 것도 '신곡'에 숨어있는 또 하나의 모티브이다.

단테는 1300년 오늘날 장관직에 해당하는 '프리오레(priore)'에 선출되지만 피렌체의 복잡한 정치 정쟁에 휘말려 직권남용죄와 황제에 대한 음모죄로 벌금과 추방형에 처해진다. 하지만 단테는 이 판결에 불만을 품고 재판에도 출석하지 않는데 그 죄로 1302년 사형 선고를 받는다. 어쩔 수 없이 단테는 피렌체를 탈출하는데 성공하고 이후 이탈리아 전역을 다니며 망명 생활을 하다가 말년에 한 영주의 도움으로 라벤나라는 곳에 정착한다. 고향을 위해 일하겠다고 프리오레에 선출되고 그곳에서 사랑하는 여인 베아트리체까지 만났지만 죽을 때까지 고향 피렌체로 돌아갈 수 없었던 단테의 심정을 상상해보라. 망명의 고단한 떠돌이 생활마저도 '신곡'의 모티브가 되었으리라 짐작할 수 있다.

우리말로 읽을 수 있는 '신곡'의 번역을 추천하면 크게 3 종류이다. 민음사에서 나온 박상진 교수의 '신곡 세트'(민음사 간)와 최민순 신부가 번역한 '단테의 신곡'(가톨릭출판사), 그리고 김운찬 교수의 '신곡'(열린책들)이다. 각각 장단점이 있는데 박상진 교수와 김운찬 교수의 책은 원전에 충실하게 번역했다는 점이 장점이고 최민순 신부의 번역은 의역이 많지만 가독성이 높다는 것이 큰 장점이다. 시간이 허락한다면 번역본 중 같은 부분을 펼쳐 놓고 소리내어 읽어보고 잘 읽히는 책을 고르는 것도 좋은 선별법 중의 하나이다. 앞으로 인용되는 단테 '신곡'은 특별히 한 번역본을 선택하지 않고 필자의 취향에 따라 자유롭게 의역하여 선별하였다. 지면 관계상 다음 회에 지옥편 첫 부분을 함께 살펴보기로 하자.

박원빈 목사/약수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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