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찾아가는 여정

나를 찾아가는 여정

[ 땅끝편지 ] 체코 이종실 선교사 완

이종실 선교사
2021년 03월 23일(화) 17:11
코로나로 인적이 끊긴 프라하 구시가 광장과 체코 종교 개혁자 얀 후스 동상.
선교의 동기는 사랑이다. 그래서 '당신은 사랑 때문에 이 낯선 곳에서 선교를 하고 있는가?' 질문한다면, 거의 30여 년을 선교사로 살아가는 나는 여전히 '그렇다'고 대답할 자신이 없다. 체코에 온지 15년 정도 됐을 때 체코교회가 당연히 내가 있어야 할, 내 집같은 곳으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이곳 생활의 익숙함 때문이 아니라 척박한 목회 현장과 씨름하는 체코 목회자들 때문이었다. 주민들을 위해 아무리 좋은 프로그램을 준비해도 프로테스탄트 교회 주최인 걸 알면 등을 돌린다. 그들에게 프로테스탄트는 사회와 동떨어진 이상한 단체로 각인돼 있었다. 그리고 이 마음의 장벽을 넘어서기 위해 체코 목회자들은 자신의 삶과 열정을 쏟아 부었다. 물론 본의 아니게 체코 목회자와 갈등을 겪는 경우도 있었다. 필자에 대한 누군가의 험담을 다른 목회자를 통해 듣기도 했다. 필자의 사역을 방해하기 위해 노회와 교회에서 정치하는 목회자도 있었다. 표결로 결의된 내용을 일부 당회원들이 지속적으로 반대해 교회가 갈등에 휩싸였던 적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체코교회는 나의 집, 내가 있어야 할 곳, 나의 교회'라는 설명 할 수 없는 평안함과 당연함이 내 마음 깊게 자리를 잡았다.

다른 한편으로 현실은 냉정하다. 선교지와 일체감을 가지려고 노력할 뿐 나는 체코인이 될 수 없는 이 사회의 영원한 이방인이다. 게다가 멀리 떨어져 있는 모국교회의 변화까지 이제는 낯설게 느껴지기도 한다. 때론 모국 교단의 정책 결정에 큰 좌절감을 느끼기도 했다. 케빈 코스트너의 영화 '늑대와 춤을' 보며, '주인공의 일생이 멀지 않은 나의 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던 적도 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스스로 극복할 수 없는 인간의 죄와 약함도 선교사의 정체성과 인격 형성에 부정적으로 작용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이쪽도 저쪽도 아닌 모든 이들에게 낯선 존재로 변해가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이러한 현상들은 선교사의 길에서 피할 수 없이 마주해야 할 숙명이자 동시에 극복해야 할 과제들이다.

결국 나는 익숙한 문화와 민족을 넘어서 '하나님 공동체' 즉 '교회'를 찾은 것이다. 그리고 그곳에서 '자기 싸움'을 승화시키는 '선교사의 길'을 스스로 찾아가는 노력을 한다. 그러나 같은 하나님을 믿고, 같은 복음을 가지고, 같은 신앙고백을 하지만 교회들의 모습은 너무나 다르다. 문화는 물론, 신학도 일치하지 않는다. 체코와 한국교회는 신앙 방식과 전통이 확연히 다르다. 교회 생활이 다르다. 선교사들도 복음 증언이라는 사명은 같지만, 증언 방식은 같은 현장에서도 서로 다르다. '다름'이 옳고 그름의 차이는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옳고 그름의 분별이 불필요하다는 뜻은 아니다. 그 판단의 기준 역시 '교회'이다. 교회는 '하나님의 공동체'이자 동시에 '그리스도의 몸'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복음 증언의 과정에서 교회와 선교사는 자신 또는 소속 기관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리스도에게 복종하는지를 스스로 질문해야 한다.

척박한 목회현장과 씨름하며 교회를 세워가는 그들이 있는 곳이 내가 있어야 할 곳이 된 것이다. 체코는 기독교 인구가 가톨릭과 합해야 10%에 불과하고 개신교 인구는 1%이다. 그나마 그 인구가 전국이 아니라, 체코 동쪽 모라비아 지역에 집중적으로 분포돼 있다. 체코 서쪽 보헤미아는 기독교 인구가 거의 전무한 실제 선교지이다. 그렇게 된 연유에도 나치 히틀러의 체코슬로바키아 점령을 묵인한 서유럽 국가들의 1938년 뮌헨협정과 1948년 2월 공산혁명으로 점철된 현대사의 질곡이 깔려있다. 이곳에서 체코의 형제 자매들과 함께 마지막까지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세우며 나를 찾아가는 남은 여정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이종실 목사 / 총회 파송 체코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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