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와 유대인 그리고 예수님

보리와 유대인 그리고 예수님

[ 성지의식물 ] 이강근 목사10

이강근 목사
2021년 03월 30일(화) 00:17
추수를 기다리는 성지의 보리이삭.
엿기름을 만들기 위해 싹을 낸 겉보리.
이스라엘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온 때에 언급되는 두 식물 중 아마에 이어 두번째가 바로 보리다. 애굽에서 탈출한 때를 유월절이라 한다. 그런데 가나안 땅에 입성 때도 유월절이라는 것은 당시에 언급된 식물만으로도 알 수 있다. 애굽을 떠날 때 내린 10가지 재앙 중 우박으로 아마와 보리가 해를 입었고 밀을 아직 자라지 아니한 고로 상하지 않았다고 한다(출 9:31~32). 그리고 40년 간의 광야생활 후 가나안 땅 입성을 앞두고 모세는 그 땅에 들어가 얻을 소산물 중 보리를 언급했다(신8:8). 그리고 요단강을 건넌 때가 바로 보리(모맥) 거두는 시기였다(수 3:15).

보리는 유월절과 관련있는 가장 대표적인 식물이다. 가나안 땅에서는 유월절에 보리를 추수하고, 50일이 지난 칠칠절에 밀을 추수한다. 밀은 물이 풍부한 땅에서 재배되지만 보리는 거친 메마른 땅에서도 재배된다. 그래서 우기 초 여전히 메마름이 있을 때 보리씨를 먼저 뿌린다. 이 농사력은 이미 3천년전 솔로몬 때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당시 한 농부가 기록해 놓은 게젤의 달력을 보면, 총 6행의 글 중 제3행에 아마를 거두는 달, 그리고 제4행에 다음 한달을 보리를 거두는 달로 기록하고 있다. 이미 체계적인 보리 농사가 정착된 것이다.

농사는 음력의 계절이니 보리가 영글어가는 시기가 점점 늦어진다. 보리추수기에 유월절을 맞이하기 위해 유대인들은 몇 년 마다 윤달을 넣어 유월절에 보리 추수기를 맞추었다. 추수할 때가 찬 익은 보리를 '아비브'라고 불렀다. 아비브는 봄이란 뜻이다. 그리고 유월절이 있는 달을 아예 아빕월이라 불렀다. 물론 바벨론 포로 이후 유월절이 있는 달을 니산월이라 불렀지만 니산월과 아빕월을 함께 사용한다.

보리가 가장 많이 언급되는 성경은 룻기서다. 룻과 나오미가 모압을 떠나 베들레헴에 도착한 때가 바로 보리추수기였다. 그러니 룻과 보아스가 만난 때가 유월절 즈음임을 알 수 있다. 이후 룻과 보아스의 스토리가 전개 되며 계속되어 등장하는 곡식이 '보리'다.

"나오미가 모압 지방에서 그의 며느리 모압 여인 룻과 함께 돌아왔는데 그들이 보리 추수 시작할 때에 베들레헴에 이르렀더라"(룻 1:22).

보리 추수철에 유월절이 있다면 그 기간에 첫 곡식을 드리는 날을 초실절이라고 한다. 이는 가나안 땅에 입성하기 전 이미 하나님이 모세를 통해 명령하신 절기다.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라 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주는 땅에 들어가서 너희의 곡물을 거둘 때에 너희의 곡물의 첫 이삭 한 단을 제사장에게로 가져갈 것이요 제사장은 너희를 위하여 그 단을 여호와 앞에 기쁘게 받으심이 되도록 흔들되 안식일 이튿날에 흔들 것이며(레 23:10~11)."

초실절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 거둔 첫 곡식을 흔들어 드리는 절기로 가나안 땅에서 시작되었다. 초실절은 유월절 기간에 맞이하는 안식일 이튿날이다. 가나안 땅의 소산물을 드리는 절기이기에 바벨론 포로기 때나 이후 2천년간 방랑하던 유대인들에게는 농사의 기회가 없어 초실절다운 초실절을 지킬 수 없었다. 21세기에 다시 고토에 돌아와 국가 이스라엘을 세운 유대인들에게 이 땅에서 키운 첫 열매를 드리는 초실절이어서 의미는 더욱 크다. 지금도 유월절에 맞이한 안식일 다음날을 초실절로 지킨다.

이스라엘에 사는 한인들에게 유월절이 반가운 것은 이 때만 시장에 나오는 겉보리 때문이다. 갓 추수한 겉보리를 구입해 싹을 튀어 엿기름 만들어 식혜는 물론 조청이나 고추장 등을 만들 때 사용한다. 그 옛날 겉보리는 볶아 먼길 떠날 때 식량으로 사용했지만 요즘은 볶아 보리차나 동물용 사료로 사용한다.

오병이어 기적은 어느 때에 일어났을까? 오병이어의 기적은 사복음서에 모두 나오는 주님의 기적이지만 공관복음(마태, 마가, 누가)에는 그 때가 언제인지 기록되지 않았다. 다만 보리 떡 다섯개라는 것에 보리가 언급된 유월절 즈음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바로 요한복음만이 오병이어 기적이 일어난 때를 유월절이 가까운 때라고 기록하고 있다. "마침 유대인의 명절인 유월절이 가까운지라(요 6:4)." 신약에 유월절 즈음에 보리가 언급된 대표적인 사건이 바로 예수님의 오병이어 기적이다.

보리는 밀의 반값이다. 5월경 밀추수를 앞둔 3월은 먹을 것이 다 떨어져가는 시기로 우리나 유대 땅이나 보릿고개의 시기다. 서민들은 당연히 값싼 보리 빵을 먹는다. 주님께서 너희에게 먹을 것이 있느냐 물으셨을 때 마침 어린 소년이 갖고 있던 빵이 보리 빵(떡) 다섯개였다. 보리 빵 다섯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5천명이나 먹이시고도 12광주리가 남은 그 재료가 바로 유월절에 막 추수한 보리 빵이었다.

예수님께서 유월절 만찬을 드시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고, 안식 후 첫날에 부활하신 날이 바로 구약의 초실절이다. 이를 놓치지 않고 예수님의 부활을 구약의 초실절로 연결한 사람이 바로 바울이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고전 15:20)."

예루살렘에서는 지금도 여전히 보리빵을 먹는다. 정제된 흰 밀가루 빵보다 건강에 좋다는 보리빵을 쉽게 구할 수 있다. 특히 부활절 즈음에 손에 든 보리 빵을 바라보며 주님의 부활을 생각하고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의 초실절을 떠올릴 수 있으니 축복이다.

이강근 목사 / 이스라엘유대학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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