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의 독립운동가로 기독교학교 교사들 선정

3월의 독립운동가로 기독교학교 교사들 선정

국가보훈처, 영명학교 린튼 교장과 이두열 선생, 멜본딘여학교 고석주 선생 등

이수진 기자 sjlee@pckworld.com
2022년 03월 02일(수) 14:42
사진 좌로부터 영명학교 교장이었던 린튼 선교사와 이두열 선생, 멜본딘여학교 고석주 선생.
3.1운동 103주년을 맞는 올해, 3월의 독립운동가로 윌리엄 린튼 선교사와 군산 지역 만세운동을 주도한 기독교인 이두열, 고석주 선생 등이 선정됐다.

국가보훈처는 3.1절을 맞아 광복회, 독립기념관과 공동으로 군산 3·5만세 운동의 주역인 린튼 선교사를 포함해 이두열, 고석주, 김수남을 '3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해 발표했다.

조지아 공대를 수석으로 졸업한 린튼은 1912년 22살의 나이에 선교사로 식민지 조선에 도착, 군산 선교지부에 속한 영명학교에서 교육선교를 시작했다. 1년 만에 한국어를 능수능란하게 익힌 그는 우리말로 성경을 가르치고, 영어를 가르쳤다. 1917년, 전임 베너블 선교사가 한국을 떠나면서 린튼은 영명학교 교장으로 임명됐다. 린튼 선교사는 영명학교 교장이던 당시 1919년 군산 3.5만세운동의 준비를 묵인하며 은밀히 지원했다. 안식년을 맞아 고국으로 돌아가서는 애틀란타에서 열린 남장로교 평신도대회에 참석해 일제의 잔학한 식민통치와 한국인들의 저항을 생생하게 증언하는 등 당시 한국의 상황을 해외에 알린 바 있다.

다시 한국으로 돌아온 린튼 선교사는 전주 신흥학교 교장으로 재직하던 중 일제의 신사참배 강요를 거부해 신흥학교는 결국 폐교되었고, 1940년 일제에 의해 강제 추방됐다. 광복 이후 한국으로 돌아온 린튼 선교사는 1960년 암으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한남대 설립 등 한국에서 교육사업에 헌신했다.

당시 군산 지역은 한강 이남 지역 최초로 3.1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난 지역이었다. 1919년 2월 28일, 서울에서 독립선언서 200장이 기독교학교인 영명학교에 전달됐고, 교사들과 학생들이 독립선언서 3500장과 태극기를 준비하던 중 일제가 들이닥쳐 교사 이두열 등이 주모자로 끌려갔다. 구암교회 부속 멜본딘여학교의 교사로 3월 6일 군산 장날을 이용해 함께 만세운동을 펼치기로 준비했던 고석주도 이때 붙잡혀갔다.

이두열 선생은 1919년 4월 30일 보안법과 출판법 위반이란 죄목으로 징역 3년을 선고받고 복역하였고, 고석주 선생도 같은 재판에서 같은 죄목으로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고 복역했다. 출옥 이후에도 고석주 선생은 민족운동에 투신, 충남 서천에 교회를 개척해 계몽운동과 농촌운동에 힘쓴 것으로 알려진다.

정부는 이들의 공훈을 기려 1990년 이두열 선생과 고석주 선생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2010년에 윌리엄 린튼 선교사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각각 추서했다.
이수진 기자 표현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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