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0년 출간된 언더우드의 '영한자전'

1890년 출간된 언더우드의 '영한자전'

[ 이야기박물관 ]

신상현 목사
2022년 12월 05일(월) 13:43
1890년 출간된 언더우드의 '영한자전'. 11x17x2cm. 장로회신학대학교 소장.
1885년 우리나라에 들어온 선교사 원두우(H.G. Underwood, 1859~1916)의 한국에 대한 기여는 재론의 여지가 없다. 개항기 신문물과 동일시됐던 복음은 사회적 혼란과 함께 빠르게 확산됐는데 여기에는 선교사들의 한글 문서사역의 역할이 컸다. 1890년 발간된 두 권 한 세트의 사전인 한영자전(韓英字典)과 영한자전(英韓字典)도 그랬다. 유교에 젖은 사람들이 한글을 언문이라며 멸시할 때에 기독교 복음은 한글로 쓰인 성경과 전도문서를 통해 경이적으로 확산됐다. 한문을 모르던 대다수 사람들은 한글문서를 통해 지식에의 갈증을 해소했고,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 한글이 함께 전파되는 기현상이 나타났다. 1901년 8월 1일자 그리스도신문은 선천 여자사경회에 참석한 123명 중에 60여 명은 도(기독교)를 믿은 후에 국문을 배웠다고 전한다.

외국선교사들에게 현지인의 말을 배우고, 현지인의 글로 성경을 번역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사역이었다. 선교사로 지원할 때부터 자신의 언어에 대한 재능이 해외 선교사역에 적합하다는 것을 알았던 원두우는 제물포로 입국하기 전 도쿄에서 머무는 두 달 동안 이수정을 비롯한 개화파 인물들로부터 한국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1885년 4월 5일에 한국에 도착했을 때 그의 공식적 직함은 제중원 교사였지만, 초기 2년 동안은 많은 시간을 한국어 공부에 사용했다. 그가 처음으로 만난 한국어 교사는 천주교인 송순용인데, 이미 7~8 명의 천주교 신부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쳤고, '한불자뎐(韓佛字典)'을 편집한 경험이 있는 사람이었다. 송순용은 준비된 한국어 교사였고, 원두우는 기적같이 송순용을 만나면서 한국어 습득과 사전 편찬에 속도를 냈다.

원두우가 1889년 11월에 쓴 서문에 의하면 이 책의 편찬 동기는 영어로 된 한국어사전이 없다는 데에서 시작됐다. 그는 한국에 온 지 수개월 후부터 5년 동안 단어를 모아 영어로 대역하는 작업을 시작했는데 가장 어려웠던 부분은 한글 철자는 순전히 발음에 의존하는데, 모두가 각기 자기의 철자 법칙이 맞다고 우기는 상황이었다. 다행히 대부분 사람들이 수긍하는 '전운옥편'에 주어진 철자를 사용하게 된다. 그러나 옥편에서 찾지 못하는 단어들도 있어 어떠한 단어에서 파생된 것인지 철자를 확인하는 노력을 했고, 그 결과 많은 한국어 단어들이 한자에서 파생됐고 철자도 서로 대응되는 것을 발견했다. 그리고 모든 단어들을 '한불자뎐'에 실린 단어들과 꼼꼼히 비교해 정통적인 철자 규칙이 발견되지 않을 시에는 그들의 철자와 일치시켰다.

이러한 어려움 속에 게일(J.S. Gale)과 헐버트(H.B. Hulbert)의 도움을 받아 1890년 원두우의 '한영자전(韓英字典)'과 '영한자전(英韓字典)'이 요코하마에서 발간된다. 처음에는 첫째권(Vol.I) '한영자전(韓英字典) A korean-English'과 둘째권(Vol.II) '영한자전(英韓字典) An English-korean'으로 각각 독립돼 있었다. 포켓판의 이름은 'A Concise Dictionary of the Korean Language (Pocket-edition in two volumes)'인데, 후에는 둘이 합본으로 발간된다. 이는 외국인 선교사라는 한계를 넘어 철저히 한국인을 이해하고 동화돼 선교하기 위한 원두우의 역작이었다.

신상현 목사 / 학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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