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에서 미래 준비한 요셉의 지혜 필요

이집트에서 미래 준비한 요셉의 지혜 필요

[ 연중기획 ] 연중기획- '그래도 가야할 길, 평화' 3.남북 관계

박종수 박사
2023년 04월 11일(화) 12:04
미국, 러시아, 중국, 일본 등 세계 열강과의 관계 및 복잡한 셈법 속에서 한반도는 평화의 길을 모색해야 하는 운명에 처해있다.
'하얼빈'의 '영웅'은 '10.26거사'를 한치의 오차없이 완수했다. 이토 히로부미의 목숨과 그의 위장평화는 영웅이 쏜 세 발의 총성과 함께 허공 속으로 사라졌다. 곧이어 영웅의 만세삼창이 울려 퍼졌다. "카레야 우라!". 영웅이 이토를 처단한 15개 이유 중에 가장 큰 죄로 지목한 것은 바로 동양평화를 파괴하는 죄였다. 이토는 "조선의 독립을 보장하고 동양의 평화를 실현하려면 조선인들이 기뻐서 스스로 순종해야 한다"고 강변했다. 영웅은 일제 검사의 심문 때도 "나의 목적은 동양평화다"라고 맞섰다. 관동도독부 고등법원장에게도 동양평화를 위한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했다. 영웅은 동양평화론을 완성할 때까지 사형을 늦춰 줄 것을 요청했으나 묵살당했다.

#왜 안중근 의사는 동양평화를 외쳤는가?

1910년 3월 26일! 영웅은 어머니 조마리아가 손수 지어보낸 명주 수의를 입고 사형장으로 향했다. "비겁하게 삶을 구하지 말고 떳떳하게 죽는 것이 어미에 대한 효도다." 어머니의 피눈물나는 절규가 귓전을 때렸다. 영웅이 순국한 전날은 순종의 생일이고 그 다음날은 부활절이었다. 생과 사와 부활은 하나였다. 이미 1909년 3월 연해주 크라스키노에서 12명의 동지들이 단지동맹을 결행할 때, 예견된 운명이었다. 영웅은 사형대 위에서 '동양평화 만세!'를 세 번 부르기를 원했다. 그러나 일제 형무소 소장은 그 '평화의 외침'마저 끝내 거절했다.

#지금 한반도는 2차 대전 이후 가장 위험한 상황

1세기가 지났다. 서세동점, 동세서점, 그리고 북세남점의 쓰나미가 몰려온다. 최근 리처드 하스 미국 외교협회(CFR) 회장은 한반도의 안보환경이 2차 대전 이후 가장 위험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첫째, 서세동점이다. NATO가 동진한다. 아니 미국이 나토동진을 부추긴다. 우리 정부도 우왕좌왕한다. 윤 대통령이 취임하자마자 NATO정상회의에 참석하고 NATO 사무총장이 방한해 우크라이나 지원을 압박했다. 나토 동진과 미국의 인도·태평양전략이 교접하는 그 지점이 한반도다.

둘째, 동세서점이다. 일본은 지난해말 자국의 방위력과 미일간 방위협력을 강화하기 위해 이른바 안보 3문서인 '국가안전보장전략', '국가방위전략', '방위력정비계획'을 개정했다. 이러한 일본의 '공세적 억지전략'은 30여 년간 추진한 보통국가화의 완성을 의미한다. 한미 양국은 지난 3월에 역대 최장기 대규모 합동군사연습 '자유의 방패'(FS)와 야외기동훈련 '전사의 방패'(WS)를 실시했다. 이젠 한미동맹을 넘어 한일동맹과 한미일동맹을 지향하는 분위기이다.

셋째, 북세남점이다. 중국의 일대일로와 러시아의 신동방정책이 만나서 동남아시아 안보벨트를 구축한다. 여기에 북한이 무임승차한다. 러시아는 2007년에 북극해 대륙붕에 자국 국기를 꽂고, 2012년에 베트남 깜라인만 기지를 조차했으며, 2022년 8월에는 블라디보스토크항을 군항으로 재지정해 태평양함대사령부를 남쪽으로 이동시켰다. 이로써 북극-북태평양-동해-남태평양 군사벨트가 구축됐다. 지난 3월 중순 모스크바 중러 정상회담에서는 외교·안보·무역·경제·과학 등 여러 분야에 걸쳐 서방에 대한 공동대응을 발표했다. 최근에 러시아 해군이 동해상에 초음속 대함미사일 2발을 발사한 것도 이러한 맥락으로 해석된다.

북한은 우크라이나전쟁 개전 전부터 러시아와 찰떡공조했다. 두 나라는 '자동군사개입' 동맹조약을 2000년 2월 갱신해 '즉각 접촉'으로 수준을 낮췄지만 여전히 동맹성격을 유지하고 있다. 2000년 7월 푸틴은 최초의 방북을 통해 군사적 연대를 과시했다. 이어 2014년말 양국은 상선 보호를 목적으로 러시아 군함의 나진항 입항에 합의하고 2019년 4월말 블라디보스토크 북러회담에서 동맹관계를 재확인했다. 지난해초부터 다양한 형태의 미사일을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폭죽놀이 하듯 쏘아댔다. 한미 연합훈련이 북침을 위한 전쟁 각본의 마지막 단계라면서 '무력의 특수한 수단(핵무기 의미)'으로 대응하겠다는 결기를 보인다.

북한은 우크라이나전쟁을 계기로 대북제재와 코로나19 엔데믹의 '출구전략' 및 경제·핵미사일 병행의 '입구전략'을 동시에 추구하는 전쟁특수를 누려왔다. 핵미사일 개발의 필요성과 정당성을 확보하고 또한 서방의 대북 제재를 회피하는 호기로 삼았다. 전후 복구를 명분삼아 대규모 노동력을 파견하고 러시아에 무기를 판매해 외화를 벌어들여 이를 군비증강에 재투자하는 선순환 구조를 모색하고 있다. 특히 러시아 용병단체인 '와그너그룹'에 무기제공 및 병력지원을 통해 신형무기를 시험하고 군인들의 실전경험을 쌓게 한다. 또한 돈바스 공화국의 중공업 설비 부품과 코크스를 저렴하게 수입하고 북한산 마그네사이트를 수출한다. 냉전 당시에도 없었던 '좌중우러'라는 사회주의의 두 맹방을 옆에 끼고, 중국-'쌀', 러시아-'총'의 양다리 외교로 전쟁의 반사이익을 극대화하고 있다.

#글로벌 중추국이 되려면?

현 정부는 글로벌 중추국가로서 자유, 평화, 번영의 인도·태평양전략을 천명했다. 이는 우리 정부가 줄곧 견지한 '전략적 자율성'과 '균형외교'에서 벗어나 친미 혹은 한미동맹 일변도 정책으로 선회함을 의미한다. 한미일과 북중러가 블록으로 대결하고 남북한이 강대강으로 대치하는 배경이다. 한국은 자칫 '일본 연출, 미국 주연' 안보 드라마의 조연으로 전락함으로써 반(反)북중러 최전선에 내몰릴 상황이다. 신냉전이 열전으로 번지는 것은 이제 시간문제다.

대한민국은 일제 무장병들이 궁궐에 난입해 국모를 살해하던 그 시절 그 나라가 아니다. 전세계 유례없이 최단기간에 산업화·민주화·세계화의 신화를 이룩한 국방력 6위와 경제력 10위의 선진국이다. 물론 해륙국, 분단국, 통상국의 멍에는 지고 살아야 한다. 안보는 평화의 필요조건이지만 충분조건이 될 수 없다. 안정적이고 지속가능한 평화를 위해 군사적 억제와 외교적 지혜가 두 축을 이루어야 한다. 중추국가론은 우리가 중심이 돼 주도한다는 의미다. 이는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쟁취하는 것이다. 100년전 처럼 일제의 위장평화론에 춤출 수 없다. 과거에 머물러선 안되지만 과거를 잊어서도 안된다. "일본은 한국에 과거의 잘못을 사죄해야 한다"는 에드워드 슐츠 하버드대 역사학 교수의 주장은 울림이 있다. 한일간 화해와 협력, 더나아가 동양평화를 위한 전제조건이다.

우크라이나전쟁의 먹구름이 한반도 상공 위에 드리운다. 어느 때보다도 정교한 외교력이 요구되는 절체절명의 상황이다. 첫째, 지정학적 중간국 외교다. 한국도 우크라이나처럼 미중과 미러 사이에 끼인 지정학적 중간국이다. '제로섬' 보다는 '넌제로섬' 시각이 바람직하다. 둘째, 명실상부한 자강외교다. 미러 협상에서 우크라이나의 자리는 없다. 스스로 힘을 키우지 않으면 주변 강대국들에게 휘둘릴 수밖에 없다. 자주 국방력을 강화하고 남북한 군비통제를 동시에 추진해야 한다. 셋째, 국익 우선의 실용외교다. 젤렌스키 정권은 미러간 전략적 이해관계가 직접 충돌하는 상황에서 스스로 대외정치적 입지를 좁혔다. 동맹관계인 미국, 전략적 동반관계인 중국과 러시아는 21세기 한국의 생존과 국가적 번영을 좌우하는 글로벌 강대국이다.

아무리 좋은 전쟁도 나쁜 평화보다 못하다. 지금이야말로 이집트 제국을 이용해 이스라엘 왕국을 건설한 요셉의 지혜가 요구된다. 그것이 바로 동양평화를 통해 자주독립을 갈망한 도마 안중근의 꿈이었다. 진정한 자주독립은 평화통일임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



박종수 박사 / 전 대통령직속 북방경제협력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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