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은 말하려 하고 지혜는 들으려 한다

지식은 말하려 하고 지혜는 들으려 한다

[ 논설위원칼럼 ]

김종생 목사
2023년 05월 08일(월) 15:03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갈 3:28)인 우리 교회는 다양성 속의 일치를 추구해 왔다. 신학과 전통에 따른 다양성은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존중하면서 예수 그리스도 중심으로 교회의 연대와 협력을 이루어 왔다. 다양한 이들이 일치를 추구 함에 있어 '소통이 잘 안되는 이유는 내 생각이 옳다거나 내 방식대로 결론 내거나 상대방의 말을 자르기 때문'이라며 '경청과 공감은 신뢰를 부르는 소통의 비밀'이라고 폴 투르니에는 강조한다.

경청(傾聽)의 한자 풀이가 재미있다. 청(聽)은 상대방에게 가까이 다가가 마치 왕이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처럼 듣고, 열 개의 눈으로 관찰하며 온전히 한마음으로 몰입해 들으라는 뜻이다. 경(傾)은 기울일 경으로 듣는 자세를 뜻하는데 상대에게 기울여 듣는 것이다. 다시 말해 몸을 기울이고 귀를 쫑긋 세워 온몸으로 들으라는 것이다. '의사소통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상대방이 말하지 않는 소리를 듣는 것'인데 심리학자들은 이를 '제3의 귀로 듣는 것'이라고 한다. 헨리 나우웬은 '예수님은 온몸이 귀였다!'고 표현한다. 주님은 사람들의 소리를 온몸으로 들으시고, 마음을 다해 다른 사람의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는 것이다. '듣는 것이 보는 것을 결정한다'는 말이 있다. 듣는 것이 결정의 가장 기본적인 태도이기 때문이다.

지혜의 상징인 솔로몬은 지혜를 구한 것이 아니라 '듣는 마음'을 구했다. "누가 주의 이 많은 백성을 재판할 수 있사오리이까 듣는 마음을 종에게 주사 주의 백성을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하게 하옵소서"(왕상 3:9) 여기 '듣는 마음'의 원문에는 '가까이 가서, 자세하게, 이해되기까지'라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 듣는 마음으로 백성에게 다가가 그들의 입장을 들으려 한 솔로몬에게 하나님은 넓은 마음을 주시되 지혜와 총명을 얹어 주셨다. "하나님이 솔로몬에게 지혜와 총명을 심히 많이 주시고 또 넓은 마음을 주시되 바닷가의 모래같이 하시니."(왕상 4:29) 솔로몬의 위대한 지혜는 경청에서 나오는 비결임을 알 수 있다. 자주 듣고, 많이 듣고, 잘 듣는 데서 지혜가 생기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지혜자의 태도는 들음이고, 들음을 통해 지혜자의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지식은 말하려 하지만 지혜는 들으려 한다' 탈무드에 나오는 격언이다. 지식은 글과 말을 통해 배울 수 있지만, 지혜는 글과 말을 통해 배울 수 없다. 지식과 달리 지혜는 몸으로 체득해야 생긴다. 지식이 없으면 무식하다고 하고, 지혜가 없으면 어리석다고 한다. 세상을 바꾸는 사람들을 살펴보면 지혜를 가진 사람들이다.

1981년 12월 27일 마지막 주일 청량리중앙교회 임택진 목사님 은퇴식이 있었다. 23년간 충성스럽게 목회하시고 은퇴하시면서 "명한 대로 하였다고 종에게 감사하겠느냐...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가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눅 17:9,10) 구절의 성경을 읽으시고 "무익한 종은 물러갑니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를 지금도 많은 이들이 1분도 안 되는 짧은 은퇴사를 인용하며 임 목사님을 존경하고 있다. 짧지만 긴 울림은 우리 가슴에 오랫동안 남는다.

마더 테레사 수녀에게 어느 날 기자가 물었다. "수녀님은 매일 기도를 오래 하신다고 들었는데 기도할 때 주로 어떤 말씀을 하세요?" 그러자 테레사 수녀는 말했다. "전 그저 듣기만 해요" 기자가 다시 물었다. "그럼 하나님은 무슨 말씀을 하나요?" 그러자 수녀는 이렇게 말했다. "그분도 듣기만 해요" 테레사 수녀의 이 말을 통해서 '들음'이 얼마나 신비스러운 능력인가를 알게 된다. '들음'은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중요한 매개 통로다. 성경에는 하늘의 소리를 들은 이들의 이야기로 넘쳐난다. 교회는 서로 다른 이들이 다양하게 모여 일치와 연합을 도모해야 하는 곳이다. 일치와 연합의 길은 서로 존중하면서 상대의 입장과 주장을 경청하는 것이다. 한국교회가 회복해야 할 것은 먼저 겸손하게 듣는 일이다.

김종생목사 / 소금의집 상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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