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을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소통을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 목양칼럼 ]

김기용 목사
2023년 09월 12일(화) 07:56
우리가 사는 이 시대가 이스라엘 백성들이 혼란과 무질서의 삶 속에서 착취당하고 고통 받았던 '사사시대'와 닮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성경에서 '사사시대'가 어떠하였는지를 한 마디로 기록하고 있는데, '사람마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이다. 다른 사람들의 생각과 의견에는 아랑곳 하지 않고 '자기소견'에만 따라 행동하는 시대였기에 건강한 공동체를 만들어 갈 수 없었던 시대였다. 사람들은 사회적 존재이므로 가정에서부터 크게는 국가에 이르기까지 크고 작은 공동체를 떠나서는 생활 할 수 없다. 어떤 공동체든지 구성원들 사이에는 '통념'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사회적 통념'은 그 사회의 구성원들에게 널리 퍼져있는 생각이나 가치관을 의미하는데, 이러한 통념은 그 공동체를 지탱하는 근간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통념'보다 '자기소견'에만 집중하여 행동한다면 그 사회는 필연적으로 혼란과 무질서를 피하지 못하게 된다. 서로 의견을 조율하고 공감대를 형성함으로 사회통념상 용인되는 행동을 할 때에 공동체는 건강하고 발전하는 것이다.

그런데 요즘 서로의 의견을 경청하고 조율해 공감대를 형성하도록 수고하는 일에 우리 모두가 인색해져 버린 것 같다. 사사시대처럼 '자기소견'만이 절대적으로 자기 행동의 '동기'가 되어버린 것이 아닌가 하는 안타까운 생각을 하게 된다.

사사시대와 같이 무질서하고 억압당하는 삶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소통의 시대가 되어야 한다. 공동체에서도 소통이 안 되면 심각한 위기가 찾아온다. 소통한다는 것이 무엇인가? 사람들은 상대방이 자기 이야기를 잘 듣고 수용해주어야 소통이 된다고 생각하는데, 그것은 소통에 대한 오해이다. 소통은 서로가 주고받는 것이다. 주기만 하거나 받기만 하는 것은 소통이 아니라 강요이며 억압이 된다. 상대방이 내 의견을 수용해주는 것 이상으로 내가 상대방의 의견을 듣고 두 배로 수용할 때에 비로소 소통의 물꼬가 트이는 것이다.

필자는 총회 규칙부 실행위원, 재심 재판국, 헌법개정위 등 법리 부서를 거치면서 항상 떠나지 않던 생각이 몇 가지 있는데, 그중에 하나가 인적자원의 적재적소 배치였다. 총회에서 각 부서에 총대들을 공천할 때에 여러 가지를 고려하는데, 년 조가 있고, 권역 안배가 있고, 권역 안에서는 노회별 순서가 있고 또한 연이어 갈 수 없는 부서도 있다. 이러한 여러 가지 공천지침을 따른다면 필요한 지식과 능력을 가진 총대라 할지라도 적재적소에 공천하기는 사실상 어려운 구조인 것이다. 이러한 공천은 전문성을 필요로 하는 부서에서 소통을 원활하게 하지 못하는 한 원인이 되고 있다.

공동체에서 가장 필요한 통념을 기본적이고 강제적으로 약속해 놓은 것이 법이다. 그리고 효과적인 법치를 위해 법리적 이해가 상당히 중요하다. 법리는 조문의 해석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법 취지, 법 철학, 법 논리, 정황의 참조 등 복합적인 이해가 필요한 일인데, 정치적으로 공천된 인물이 자신의 목적을 성취하기 위한 목소리만 높인다면 소통이 잘 될 리 만무하다. 총회의 발전을 위해 이런 제반 사안에 대해 진지하게 의견을 나눌 수 있는 장이 마련됐으면 한다. 이렇게 말하는 것조차 이 글을 읽는 독자들에게 내가 가진 소견을 들어달라고 주장하는 자가당착으로 비춰질까 두렵기도 하다. 그러나 누군가 조금이라도 자기소견과 달라 힘에 겨울지라도 소통의 물꼬를 터서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는 총회, 행복한 교회를 만드는 일에 함께 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김기용 목사 / 당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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