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7돌 한글날, 씁쓸한 위로

577돌 한글날, 씁쓸한 위로

[ 기자수첩 ]

최은숙 기자 ches@pckworld.com
2023년 10월 09일(월) 08:45
'1446년 조선의 성군 세종대왕이 유능한 신하들의 도움을 받아 쓰기 쉽고 이해하기 쉽고 깨닫기 쉬운, 말하자면 교육을 받지 못한 모든 사람들이 쉽게 터득할 수 있는 모든 사항들을 충족시켜주는 문자를 만들어냈다'(게일 목사의 글 '현대 선교에서 하나의 기적'중에서)

지난 9일 577돌 한글날, 종로 5가 거리를 지나다가 '577돌 한글날, 한국인보다 한글을 더 사랑했던 제임스 게일 목사'라는 글귀와 게일 목사의 사진이 담긴 대형 현수막이 눈에 띄었다.

게일 목사는 "한글은 누구나 배우기 '쉽고' 누구에게나 익히기 '간단한' 글이라"고 평가했다. 물론 이 까닭에 오히려 한글이 멸시당해 왔다고도 지적했다.

당시 한글은 조선의 지식층에서'언문'이라 하여 '천한 글'로 폄하됐다. 그러나 게일 목사가 "하나님이 비천한 것을 사랑하시고 그것을 통해 새로운 창조의 역사를 이루신다고 확신한다"고 말했던 것처럼 '천한 글'로 성경이 번역되고 복음은 빠르게 확산됐다. 한국 기독교가 전세계 유례없은 부흥을 이뤄냈던 것은 '한글'의 힘이었다.

한글의 독창성과 우수성은 이미 전 세계적에서 인정받고 있다. 훈민정음은 유네스코 세계기록 유산으로 지정됐고 '가장 쓰기 쉽고 가장 배우기 쉽고 가장 풍부하고 다양한 소리를 표현할 수 있는 문자'로 한글이 1위에 올랐다. 그러나 한글은 아직도 '홀대' 받고 있다. 여전히 말할 때 영어를 섞어 쓰면 더 멋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고 거리에는 한국어 간판을 찾기가 쉽지 않다. 급기야 이제는 세대별로 사용하는 언어도 다르고 듣도 보지도 못한 신조어와 줄임말까지 빈번해지면서 '한글인데 한글이 아닌 한글로' 소통이 단절된다.

'한국인보다 한글을 더 사랑했다'는 게일 목사는 '어쩔티비 저쩔티비'를 이해할까. 언어 천재 답게 '안물안궁'이라고 쿨하게 답할까. 577돌 한글날을 보내며 한 때는 천시되었고 또 한 때 사라질 뻔한 위기를 겪었던 '한글'을 위로한다. "나는 한글이 더 좋다"고.
최은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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