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정신으로 돌아가서 먼저 나라를 통일하자" |2022. 03.10
[ 아카이브 ]   33인 중 해방이후 생존한 이명용 장로에 대한 기사

33인 중 해방이후 생존한 이명용 장로에 대한 기사 "… 박희도(朴熙道) 오화영(吳華英) 정춘수(鄭春洙)들을 중심으로 한 감리교 측과 이승훈(李昇薰) 양헌백(梁헌伯) 이명용(李明龍) 등을 중심한 장로교측이 핵심이 되어 독립운동을 추진했다. 특히 평안도는 신교가 왕성하여 다른 어느 지방보다 민지가 계발되고 세계정세에 밝았기 때문에 독립운동도 가장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그러나 이 운동은 처음에는…

한국기독공보 아카이브로 보는 그때 그시간 :3월 |2022. 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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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기독공보 아카이브로 보는 그때 그시간 :3월 1950년대의 3월 지면에는 졸업(신학교, 기독교학교)에 대한 기사가 매년 이어진다. 특히 6.25한국전쟁 이후에 신학교 수가 급증하면서 졸업생도 늘어난다. 50년대 중반에 600개가 넘는 신학교에서 졸업자가 1000명(1956년 3월3일자 신문 1면)이 넘었으며, 대한예수교장로회 신학교(장신대)의 졸업자 명단이 기사로 게재되기도 했다. 또한 …

한국기독공보 아카이브로 보는 그때 그시간:2월 |2022. 0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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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기독공보 아카이브로 보는 그때 그시간 -2월 2월의 핫이슈는 장로교 분열 이후 1960년에 열리는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측의 제44회 총회이다. 이에 앞서서 승동측이 일반 사회 법정에 교회문제를 고발하는 사건이 벌어져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총회를 치르게 된다. 또 각 연한기관의 총회가 2월에 집중해서 진행되면서 교회 연합사업의 활기를 느낌과 동시에 인선 문제 등으로 내홍을 겪는 한국교회 …

교회 관리집사 '사찰'을 아시나요? |2022. 02.08
[ 아카이브 ]    한국기독공보에 보도된 '사찰' 교회 구석구석 청소 안전 살피는 중요한 역할...이구동성 "'믿음'으로 감당"

교회를 담임하고 있는 목사보다도 더 많은 시간을 교회를 위해 헌신하는 직분이 있다. 현재는 교회 대부분이 '관리집사(인)'라고 호칭을 하지만 이전에는 '사찰(司察)'이라는 명칭이 더 익숙했다. 규모가 있는 교회의 경우 사찰을 두고 교회의 시설 관리는 물론이고, 구석구석을 돌아보며 청소, 새벽종 치는 일도 감당했다. 현재는 교회 필요함에 따라 각 분야의 전문인력을 채용해서 관리하지만 그렇지 못…

한국기독공보 아카이브로 보는 그때 그시간 :1월 |2022. 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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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기독공보 아카이브로 보는 그때 그시간 :1월 1월, 지면은 신년에 발표된 신년사에 대한 뉴스로 시작한다. 주목할 기사는 1959년 교단 분열이후 이를 봉합(교회통일)을 위해 노력하는 기사가 1960년 1월에 발행된 신문에 주를 이루고 있다. 또한 한국기독공보는 신년에 다양한 특집기획을 하면서 기본 2면 발행을 4면 발행으로 지면을 확대하기도 했으며, 1962년 1월 29일자는 2개면을 '…

개화기 신문의 출발, 기독교인이 뿌리 |2022. 01.11
[ 아카이브 ]   프로테스탄트와 신문

"귀보(기독공보)는 기독교계의 주간지로 더구나 요새 말이 많이 떠도는 순한글체의 신문으로 독특한 지반을 개척해왔음을 높이 평가하지 않으면 아니되겠읍니다."(1957년 1월 14일 3면) 한국기독공보 지령 400호에 최준(崔埈 新聞評論家-이후 기사에서 중앙대학교 전 교수로 확인됨)이 쓴 '四(사)백호에 부침'의 내용이다. 그는 이 글에서 '프로테스탄트(한국교회)'에 일간 신문이 하나도 없음을 …

'크리스마스 선물에 가장 좋은 양주'(?) |2021. 12.07
[ 아카이브 ]   왜곡된 성탄절 문화 지적...성탄절 맞는 기독교인 자세, ‘회개 경건 화평’

"… 그러나 오날 이 땅의 聖誕(성탄)은 그 누구를 爲한 그 무엇 때문의 것인지? 冷靜(냉정)하게 聖書的(성서적) 立場(입장)에서 主의 날카로운 審判(심판)을 免(면)치 못할 것을 나는 잘 알고 있다. 이러고 보면 오날의 우리 韓國敎界(한국교계)가 갖고 있는 聖誕(선탄)에 對(대)한 態度(태도)와 方法(방법)을 根本的(근본적)으로 改新(개신)하지 않으면 않이될 段階(단계)에 이르렀다고 나는…

한국기독공보 아카이브로 보는 그때 그시간 -12월 |2021. 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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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기독공보 아카이브로 보는 그때 그시간 -12월 성탄절을 앞두고 증면까지 하면서 성탄절 특집를 했으며, 총회장을 비롯한 각계의 성탄 메시지를 게재하고 있다. 또 추수감사절부터 이어지는 구호 활동 관련 기사도 눈에 띈다. 한중 전쟁 당시 미군 공군 비행사를 구한 김재필 씨(1953년 1월~6월 '死線彷徨美兵救出實話'(사선방황미병구출실화) 연재)의 근황이 1953년 12월 14일자에 실리기도 …

한국기독공보 아카이브로 보는 그때 그시간 :11월 |2021.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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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기독공보 아카이브로 보는 그때 그시간 :11월 1956년 항가리 반공봉기에 대한 국내 관심이 고조되면서 교회는 모금과 함께 헌혈운동까지 전개한 내용이 보도됐으며, 기독교방송 개국과 함께 매년 11월에 전파를 통한 복음 전파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하는 보도가 이어졌다. 1959년 교단 분열의 후유증이 담긴 기사가 이후 신문에 주를 이른다. 특히 WCC에 대해 사실관계를 확인하는 내용이 기획되…

선교·전도비로 사용된 추수감사 헌금 |2021. 11.09
[ 아카이브 ]   추수감사절 헌금의 십일조를 선교.전도비용으로 사용

"본 교단은 독노회를 창립하면서 선교사를 해외에 파송하였는데, 이 일이 가능하였던 것은 각 교회로부터 보내오는 추수감사절 헌금의 십일조를 수합한 재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후 총회는 계속해서 전도부로 하여금 각 지교희로부터 추수감사절 헌금의 십일조를 수합하게 하여 타민족에게 선교하는 일을 위해 사용하였다." 한국기독공보 1992년 11월 14일 자 사설의 일부이다. 이 사설에 따르면 대한…

농경사회 넘어 환경 변화...'감사' 의미가 우선 |2021. 10.12
[ 아카이브 ]    추수감사주일을 언제 지킬 것인가?

기독교계는 전통적으로 11월 셋째주일을 추수감사절로 정하고 지키고 있다. 감사절의 유래에 대해서는 다양한 방법으로 소개하고 있으나 한국기독공보 1981년도 추수감사주일을 앞두고 11월 14일자 사설에서 "그옛날 청교도들이 매이플라워호를 타고 신앙의 자유를 얻기 위해 대서양을 건너 낯설은 풀리버드지역에 상륙하여 천신만고 끝에 얻은 추수로 감사의 제단을 쌓은 것이 추수감사절의 유래가 되었다"고 …

한국기독공보 아카이브로 보는 그때 그시간 : 10월 |2021.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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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기독공보 아카이브로 보는 그때 그시간 : 10월 6.25전쟁의 정전이후 전몰장병에 대한 연합 추모예배 이어졌다. 특히 1953년 10월에 시작된 육해공 군목 연합으로 진행되기 시작한 추모예배는 몇 년간 이어졌으며, 각 기관들도 추모예배를 잇따라 개최하는 기사를 읽을 수 있다. 또한 세계적인 부흥사 피얼쓴 박사 일행이 이끄는 수양회가 1954년 교파를 초월해 목회자를 대상으로 열렸으며, 이…

한국기독공보 아카이브로 보는 그때 그시간 : 9월 |2021. 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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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기독공보 아카이브로 보는 그때 그시간 : 9월 가을의 문턱에 들어서는 9월은 매년 열리는 장로교 총회 개막 기사가 중심으로 이룬다. 특히 교단 분열 이후 1960년부터는 분열로 인한 후유증과 예장 고승측(승동측과 고신측의 통합된 교단)의 갈등 기사가 주목을 받고 있으며, 결국 양 교단이 1963년 9월 총회에서 각각 총회를 개최하는 내용이 보도됐다. 베트남에 파병과 관련해서 1965년에 …

배민수 목사 提唱(제창) '성미운동' |2021. 09.07
[ 아카이브 ]   1952년에 첫 소개...이전 성미, "자기교회 교역자 생활을 보태기 위해서" 배 목사, "순전히 가난한 형제를 구제하기 위하여 하는 운동"

"最近 배민수 博士로부터 提唱된 誠米運動도 決코 그것이 적은 運動은 아니다. 한끼에 한수깔식 百萬 信徒가 떼어 모은다면 大두로 一千두 하루 二食 計算으로 한다면 四百石이 된다."(한국기독공보 53년 1월 5일자 1면 '불기둥') 한국교회의 선교 초기부터 나눔 운동이 있었다. 선교사들에 의해 이루어진 구호활동 등과 같은 큰 규모도 있었지만, 이웃을 돌아보는 교인들의 이웃사랑을 담은 작은 규모…

빌리 그레함 1973년 여의도 집회, 300만 운집 |2021. 08.10
[ 아카이브 ]   아카이브로 보는 한국교회 현장 '한국교회 연합, 대 사회적인 이미지 확보' 기대 담아 보도

한국교회 역사에서 '여의도광장'은 의미가 있다. 여의도광장이 1971년 처음 조성될 당시 이름은 '5.16광장'이다. 국가의 큰 행사들이 이 광장에서 개최됐다. 특히 이 곳에서 국군의 날에 열린 국군의날 행사는 막강한 국방을 국민들 뿐만 아니라 전세계에 알리는 자리가 됐다. 한국교회 또한 1970, 80년대에 이 곳에서 대형 집회를 열면서 급성장하고 있는 교회의 모습을 국내를 넘어 전세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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