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은 왜 우리를 위해 죽으셨을까? |2019. 12.24
[ 논쟁을통해본교회사이야기 ]    <9>속죄론 논쟁

타락한 인간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받고 하나님과 화해하게 된다.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는 어떻게 우리의 죄를 사하시고, 우리를 구원받은 새로운 피조물이 되게 하셨는가?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의 성격에 대한 신학적 해명과 논쟁이 중세 시대에 벌어지게 된다. 그 논쟁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중세 스콜라신학의 선구자라 불리는 안셀무스와 아벨라르이다. 배상설(賠償說, ransom theory) …

왜 하나의 교회가 둘로 나뉘었는가? |2019. 10.25
[ 논쟁을통해본교회사이야기 ]   <7> 필리오케 논쟁

동·서방교회가 분리되다 그리스도교라는 하나의 울타리 안에 있던 동·서방교회가 1054년 결국 완전히 결별하였다. 로마를 중심으로 한 서방측은 '가톨릭교회'라는 이름으로, 콘스탄티노플(지금의 이스탄불)을 중심으로 한 동방측은 '정교회'라는 이름으로 갈라섰다. 분열의 결정적인 계기는 1054년 콘스탄티노플의 총대주교 케룰라리우스가 교황을 자처하는 로마의 감독 레오 9세를 '이단자'로 규정한 일이…

성상파괴주의 vs 성상옹호주의 |2019. 09.27
[ 논쟁을통해본교회사이야기 ]   <6> 성상파괴 논쟁

성상파괴 논쟁 그리스도교 신앙과 예배에서 성화상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를 둘러싼 해묵은 갈등과 논쟁이 있어 왔다. 특히 726년 동방의 황제 레오 3세(재위 717~741)가 성상파괴 법령을 공표하면서부터, 843년 콘스탄티노플의 총대주교 메토디우스(재위 843~847)가 성상옹호를 합법이라 선포하고 성상파괴자들을 정죄하기까지 무려 117년 동안 소위 '성상파괴 논쟁…

배교자가 집례하는 성례도 효력 있나 |2019. 08.30
[ 논쟁을통해본교회사이야기 ]   <5> 도나투스 논쟁

배교자 vs 고백자 그리스도교가 로마제국의 공인을 받기 이전 그리스도교인은 종종 박해의 대상이었다. 로마제국의 통치이념에 어긋나거나, 황제의 통치행위에 방해가 되거나, 제국을 안정시키기 위한 희생양이 필요할 때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억압과 박해가 가해졌다. 로마 황제 디오클레티아누스(Diocletianus, 재위 284~305)는 통치 말기에 제국이 점차 쇠락하자 로마의 옛 신들에 대한 숭배정…

오직 은혜로? 오직 은혜로! |2019. 07.26
[ 논쟁을통해본교회사이야기 ]   <4> 자유의지와 은혜 논쟁

우리의 구원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일까, 아니면 우리의 자유의지로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들였기 때문일까? 이에 대한 대답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뉠 수 있는데, 인간의 자유의지가 구원에서 결정적 역할을 한다는 펠라기우스의 주장, 오직 하나님의 은혜만이 인간을 구원한다는 아우구스티누스의 주장, 하나님의 주권적 은혜와 인간 자유의지의 역할을 동시에 강조해야 한다는 요한 카시아누스의 주장이 그것들이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2019. 06.21
[ 논쟁을통해본교회사이야기 ]   <3>그리스도론 논쟁

빌립보 가이샤라에서 예수가 제자들에게 던졌던 질문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는 질문에 대한 대답은 우리 구원에 있어서 결정적인 중요성을 갖는다. 오늘날 우리가 이 질문에 어떻게 대답하느냐에 따라 우리 신앙의 색깔과 성격이 규정된다. 사실상 고대교회 논쟁의 중심에는 언제나 예수 그리스도가 있었다. 삼위일체 논쟁이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과 어떤 관계인지를 둘러싸고 벌어진 논쟁이었다면, 그리…

신학이 철학을 만날 때 |2019. 05.24
[ 논쟁을통해본교회사이야기 ]   <2> 신학과 철학의 관계 논쟁  

그리스도교는 정치적으로는 로마제국 아래에서, 종교적으로는 유대교라는 모판 위에서, 사상적으로는 그리스 철학의 영향 안에서 시작되었다. 그리스도교 신앙과 신학은 진공상태에서 생겨난 것이 아니라, 로마, 그리스철학이라는 맥락 한복판에서 형성된 것이다. 따라서 신학과 철학의 만남은 필연적인 것이었다. 신학과 철학, 계시와 이성, 복음과 문화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해야 하는가 하는 난제는 그리스도교 …

삼위일체 논쟁 |2019. 04.25
[ 논쟁을통해본교회사이야기 ]   

아레이오스 vs 알렉산드로스 318년 이집트 북쪽의 항구도시 알렉산드리아는 뜨거운 신학 논쟁에 휩싸였다. 논쟁의 양측 당사자는 알렉산드로스(알렉산더) 감독과 아레이오스(아리우스) 장로였다. 먼저 포문을 연 쪽은 아레이오스였다. 아레이오스는 "오직 하나님만이 홀로 영원하시며, 홀로 시작이 없으시며, 홀로 변함이 없는 분"이라고 주장하였다. 아들은 비록 모든 시간 이전에 그리고 모든 만물보다 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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