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 멘토 마르케쵸 목사 |2018. 10.23
[ 땅끝편지 ]   멕시코 박성근 선교사(7)

멕시코 선교의 첫 기간이 끝날 무렵인 2006년 가을, 빌리 그래함 목사의 대형 선교단체가 멕시코 복음화를 목표로 대형 프로젝트를 진행한 적이 있었다. 준비를 위해 여러 멕시코 교회들이 사전 모임을 가졌다. 당시 틀락스칼라주에서 가장 컸던 마르케쵸 목사의 교회에서 이 모임이 열렸고, 함께 성경공부를 하던 멕시코 목사들의 권유로 그 곳에 갔다가 마르케쵸 목사를 만나게 됐다. 그런데 '한국 사…

푸에블라에 다시 교회를 개척하다 |2018. 10.16
[ 땅끝편지 ]   멕시코 박성근 선교사(6)

안식년으로 푸에블라를 떠나면서 멕시코인 교회의 교인들을 데메트리오 목사에게 보냈다. 그는 필자의 목회자 성경공부반에 성실하게 참석했고, 그가 시무하는 교회는 교인이 70명 정도 였는데 재정이 열악해, 예배에 사용되는 모든 물건들이 심히 낡아 있었다. 필자는 우리교회에서 사용하던 투영기기(OHP), 드럼, 수십개의 의자며 테이블까지 교회의 모든 것을 헌물했다. 그 후 푸에블라를 방문해 데메트…

후아레스 신학교에서의 경험 |2018. 10.09
[ 땅끝편지 ]   멕시코 박성근 선교사(5)

모국을 떠난 지 8년 4개월 만에 가진 안식년은 우리 부부의 결혼 생활과 사역에 큰 영향을 미쳤다. 특히 필자는 하와이 코나에서 3개월 간 제자훈련학교(DTS)를 수료하면서 스스로를 많이 돌아보게 됐다. 결혼 생활 동안 아내의 반대를 무릅쓰고 내 결정대로 일을 추진했던 경우가 많았는데, 결국 아내의 판단이 옳았었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그 때 나는 하나님께 기도했다. '이제부터는 의견이 다…

멕시코 땅에 말씀을 주소서 |2018. 10.02
[ 땅끝편지 ]   멕시코 박성근 선교사(4)

우리 가족이 푸에블라에 도착했을 때 자녀들의 학교를 찾던 중 기독교 중고등학교가 있는 곳을 방문했는데, 옆에 대형 교회가 있었다. 멕시코 교회를 경험하기 위해 네 달 정도 그곳에 출석했다. 그 교회는 신오순절주의 교회였는데 2000년 당시 교인 수가 5000명에 달했다. 강대상 정면의 천장 가운데에 멕시코 국기, 그리고 좌우로 이스라엘, 독일, 미국 국기가 있었다. 복음이 시작된 나라, 종…

아! 포니엔테교회 |2018. 09.27
[ 땅끝편지 ]    멕시코 박성근 선교사(3)

아내와 나는 2000년 2월 마지막 주에 보스케스 데 산 세바스티안이라는 푸에블라 동쪽 끝 자락에 있는 동네에 개신교교회가 없는 것을 보고 이곳이 하나님께서 인도하신 곳이구나 생각하면서 교회를 시작하게 되었다. 시작하기 몇 주 전부터 우리가 사용하기로 한 집을 중심으로 근처의 집들의 문을 두드리며 그들에게 복음을 전했다. 낯선 나라에서 길거리에서 모르는 사람들을 붙들고 복음을 전한다는 일은 …

빈집 안에 세워진 교회 |2018. 09.11
[ 땅끝편지 ]   멕시코 박성근 선교사(2)

온누리교회에서 필자를 선교사로 파송할 때에는 멕시코에 위치하고 있는 남부 토착민이 70%나 되는 오아하까주에서 사역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현지의 상황 변동으로 파송요청이 철회되면서 갈 곳이 없어지게 됐다. 10일 동안 기도하는 가운데 예수님이 멕시코로 가라고 말씀하시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멕시코는 넓은 땅인데 그 중에 어디를 갈 것인가? 1998년 한국에서 선교사 훈련을 받는 가운데 도시…

멕시코 푸에블라를 향해 |2018. 09.04
[ 땅끝편지 ]   멕시코 박성근 선교사(1)

필자는 믿음이 좋은 아내를 만나서, 한 주만에 프로포즈를 하고 3개월만에 결혼을 했다. 당시 나는 직장생활을 하고 있었는데 아내가 나중에 내가 신학교에 갈 마음이 있는지를 묻길래 '그렇다'고 답했다.그런데 그때 아내는 자신이 선교에 헌신할 마음을 가졌다는 얘기는 하지 않았다. 그로부터 10년 동안 나는 신학교에 가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않고 직장생활을 하다가 세상에서의 성공이 덧없게 느껴지던…

이 땅의 선교적 교회 |2018. 08.31
[ 땅끝편지 ]   베트남 강영미 선교사(완)

필자는 1998년 첫 총회 훈련 당시 선교를 '축제'라고 정의했었다. 그 후 안식년의 어느 모임에선 선교를 '삶'이라고 진술했고, 지금 이 글을 쓰면서 선교가 무엇인지에 대해 자문한다면 선교는 '예배' 라고 규정하고 싶다. 선교는 예배를 통한 선포인 동시에 선교적 행동을 통한 설득, 즉 세상이 예배드리도록 설득하는 모든 행동을 선교라고 생각한다. '기독교는 하나님의 행동'이라고 한 로이드 …

생명을 살리는 선교 |2018. 08.21
[ 땅끝편지 ]   베트남 강영미 선교사(9)

호치민 참조은광성교회는 지난 3월에 창립 6주년을 맞았다. 우리는 투이 양을 수술한 후, 5년 동안 약 50여 환자의 수술을 지원했다. 심장 수술 지원은 영적인 영향력도 매우 컸다. 아마 환자가 살던 마을에서는 죽은 나사로가 살아 돌아오는 놀라움과 기쁨을 누렸을 것이다. 아이들이 살아나면 부모들도 살아난다. 가정에 기쁨이 회복된다. 대부분 가난의 굴레를 벗어나기 힘든 가정들이기 때문에 누군…

미낌바 220번지의 기적 |2018. 08.15
[ 땅끝편지 ]   베트남 강영미 선교사(8)

2012년 2월 3일 우리는 다시 베트남에 입성했다. 현지에서는 우리가 다시 온다는 것이 이야기꺼리였다. 이제 우리가 어떤 사역을 할 것인가에 대해 사람들은 궁금해 했다. 문 선교사는 이전에 했던 병원 협력선교와 신학교 사역의 가능성을 살폈고, 나는 한인교회 사역을 통한 비젼을 제시했다. 도착 후 나는 호치민에 있는 한인교회에서 사역할 수 있는 지를 타진했고, 그 사이 문 선교사는 훌륭하게 …

끝나지 않은 여행 |2018. 07.31
[ 땅끝편지 ]   베트남 강영미선교사(7)

둘째를 낳을 때는 해산의 아픔이 더 강한 통증으로 다가오는 것처럼, 5년 안식년을 마치고 다시 베트남으로 가야하는 상황에선 큰 두려움이 다가왔다. 솔직히 '돌아가지 말고 한국에서 사역하면 좋겠다'는 생각도 없지 않았다. 당시 교회 전도사 사역도 너무 즐거웠다. 그런데 그 주저함의 가장 큰 이유는 아이들과의 이별이었다. 아들은 대학교 4학년이었고, 딸은 신입생이었다. 나는 아이들을 더 돌봐야…

아직도 가야할 길 |2018. 07.24
[ 땅끝편지 ]   베트남 강영미 선교사(6)

'안식년' 이란 말은 안식년을 누리고 나서야 말할 수 있는 단어다. 선교사들에게는 안식년을 준비하는 일 조차 일종의 부담스런 과정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지나고 보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이지만, 우리는 파송교회의 분쟁으로 후원이 중단되면서 교인들의 기도와 후원이 얼마나 중요한지 깊이 느끼는 안식년이 됐다. 한편으로는 레위인의 먹이는 까마귀가 물어다 주는 것임을 확인했던 기간이기도 했…

여기까지 도우셨다 |2018. 07.17
[ 땅끝편지 ]   베트남 선교사 강영미 목사(5)

어느 성실하고 심성이 착한 의대생이 있었다. 그는 2년 때 어느 수련회에서 주님이 주신 지상명령을 인생의 비전으로 삼았다. 그리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자신을 훈련했다. '주님의 제자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훈련으로 만들어진다'는 믿음으로 스스로를 복종시켰다. 결혼 후 의료선교사를 준비하던 그는 대한예수교장로회 목사가 됐고, 아내인 필자도 선교대학원을 다니며 꿈을 키워갔다. 그리고 2000…

함께 세워가는 신학교 |2018. 06.05
[ 땅끝편지 ]   

어느 날 몇 명의 현지 목회자들이 찾아왔다. 각자가 교회에서 제자 양육을 시키고 있는데 그들에게 신학교육을 시켜서 목회자로 카자흐스탄의 중·소지역에 교회를 개척하고 싶다고 했다. 현지 목회자들은 신학교를 운영할 재원을 준비하는 것이 어렵고 또한 신학교 운영하는 행정적인 경험도 없기 때문에 함께 연합하여 신학교를 개교하자는 것이다. 필자는 지난 10여 년 동안 선교사들과 연합으로 신학교를 운영…

   1112131415161718
카드 뉴스
많이 보는 기사
오늘의 가정예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