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방정교회의 깊은 영성 경험 … 카리스마타 수도회

영성이 살아 숨쉬는 수도원을 가다 정원범 교수l승인2014.04.07l수정2015.04.28 14:30l2942호 l조회수 : 10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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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이 살아 숨쉬는 수도원을 가다  2. 카리스마타 수도회
성령의 은사 나눠 받은 형제ㆍ자매 서로 돕고 섬기며 코이노니아

 

 

   
 

카리스마타 수도회를 방문한 것은 꽤 오래전의 일이다. 2005년부터 2010년까지 6년간 매 1학기 월요일마다 약 25~30명 정도의 목사들, 그리고 10명의 신대원생들과 함께 전국에 있는 수도공동체들을 탐방하는 중에 두세 번 정도 카리스마타 수도회(예수기도원)를 방문하였다. 카리스마타 수도회는 감리교의 박효섭 목사가 거제도 남단 홍포 바닷가에서 초기 사막 교부들의 영적 전통을 따르고자 하는 스케테 형식(사막 이름이기도 하지만 스케테 형식이라고 할 때는 한곳에 모여 사는 게 아니라 각각 흩어져 살되 정기적으로 시간을 내어 함께 모여 삶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기도생활을 함께 하는 수도생활의 한 형태를 의미)으로, 개신교 내에서 수도적 이상을 꽃피워 보려는 갈망을 담고 있는 수도회이다.

우리가 아름다운 바다 풍경을 즐기며 굽이 굽이 산길을 지나 카리스마타 수도회에 도착했을 때, 박효섭 목사와 두 명의 수사가 우리를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아담하게 지어진 2층에 올라갔을 때 창문을 통해 시원하게 한눈에 들어온 것은 아름답게 펼쳐진 홍포의 바다 풍경이었다. 동방교회의 이콘들을 둘러 본 후, 수도회를 소개하는 자료집을 펼치자 "카리스마타 수도회란 성령의 은사를 나누어 받은 형제, 자매들이 서로 돕고 보살피며 섬기는 코이노니아"를 지칭하는 곳이라는 글귀가 눈에 들어왔다. 또한 수도자(monk)란 '하나'란 뜻의 모나코스(monachos) 라는 말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에 근거하여 수도자란 "단지 홀로 있어서 하나가 아니라 형제들과 함께 공동체와 하나가 되고, 이로써 하나님과 하나가 된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라는 수도자에 대한 설명도 눈에 띄었다. 따라서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보며 하나님만을 갈망하며 하나님만을 위해 일하고 하나님만을 섬기며, 형제, 자매들의 평화를 도모하는 '하나'된 사람들을 카리스마타 수도회원"이라고 한다. 수도회의 의미와 추구하는 정신이 무엇인지를 잘 보여주는 소개말이었다.
 

   
 

박 목사의 강의 주제는 '나의 인생과 기독교: 마음에 이르는 길'이었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구도자요, 구도자의 신분이란 영혼의 여행자이다."(바질) '신앙생활은 영혼의 여정'(데오도로스)이라는 말을 소개하면서 그리스도인이란 영원으로부터 와서 영원으로 향해 가는 여행- 깊이의 차원을 찾아 들어가는 마음의 여행- 중에 있는 사람들이라고 하였다. 여기서 그는 동방교회의 영성인 헤지카즘의 영성에서 말하는 '깊은 마음'(Deep Heart, Inmost Heart)의 중요성을 설명했다. 왜냐하면 하늘로 가는 길은 우리 마음속 깊은 곳에 있기(막시무스) 때문이고, "무엇보다도 마음을 지키고 가꾸어야 하나니, 내버려두면 가시와 엉겅퀴를 낼 따름"(아빌라의 데레사)이기 때문이다. 그가 소개해준 "우리의 마음에는 측량할 수 없는 깊이가 있다"고 한 마카리우스의 말과, "마음의 가장 깊은 곳에 이르면 거기서 하늘의 궁방을 보리라"고 한 시리아의 이삭의 말, 그리고 "심장은 완전한 중심이다. 의식뿐만 아니라 무의식의 중심이며, 혼의 중심일 뿐만 아니라 영의 중심이고, 영의 중심일 뿐만 아니라 육체의 중심이며, 이해할 수 있는 것뿐만 아니라 이해할 수 없는 것의 중심이다. 한 마디로 그곳은 완전한 중심이다"라고 한 보리스 부쉬슬라체프의 말 등은 모두 동방교회의 영성에서 깊은 마음으로의 여행이 왜 그토록 중요하게 강조되고 있는지를 잘 보여주었다.

그러면 어떻게 깊은 마음(마음의 가장 깊은 곳)에 도달할 수 있을까? 그 방법이 바로 '예수기도'였다. '예수기도'란 "하나님의 아들, 주 예수 그리스도여(숨을 들이쉬면서), 이 죄인을 불쌍히 여기소서(숨을 내쉬면서)"라고 부르는 기도인데, 박 목사는 예수기도를 통해 마음에 이르는 길을 구체적으로 이렇게 설명했다. 1) 집중과 경계로 마음을 지켜야 한다. 2) 예수의 이름을 불러야 한다. 3) 슬픔을 가지고 불러야 한다. 신적인 아름다움과 순수한 빛을 통해서 자신의 죄성을 보며 슬퍼하는 슬픔이다. 4) 쉬지 말고 끊임없이 불러야 한다.

이렇게 해서 마음의 깊은 곳에 이르면 무엇이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해 헤지카스트 사부들은 "빛과 고요와 평화로 가득찬 가없는 사랑"이라고 대답할 것이고, 바로 그것이 '헤지키아'라고 하였다. 그리고 헤지키아에 대한 니키타스의 정의를 박 목사는 이렇게 설명했다.

1) 헤지키아의 상태: 헤지키아(고요)는 마음의 평정상태이며, 자유롭고 즐거운 영혼의 잔잔함이고, 흔들림 없이 하나님 안에 편안히 거하는 마음의 안정성이다. 2) 헤지키아 상태에서의 경험: 빛에 대한 관상이요, 하나님의 신비에 대한 지식이고, 깨끗한 정신에서 오는 덕에 의한 지혜이며, 신적 사유의 심연이요, 마음의 황홀이며, 하나님과의 영교이다. 3) 헤지키아의 실천 방법: 잠들지 않고 깨어 있음이요, 영적 기도이며, 큰 고통 가운데 안식이다. 4) 이 모든 것의 결론은 마침내 하나님과의 일치와 연합이다. 이 결론은 인간(그리스도인) 삶의 궁극적인 목적은 신화(deification)와 하나님과의 연합이라고 말하는 동방교회 영성의 핵심을 상기시켜주는 것이었기에 나에게는 매우 중요한 의미로 다가왔다.
 

   
 

이 경험은 수 년 전의 일이었기에 카리스마타 수도회 방문기를 써달라고 하는 요청을 받고 나서 수도회 상황도 궁금하고 박 목사께 안부도 전하고 방문 기억도 더듬을 겸 수도회에 연락을 해보았다. 그랬더니 후임목사는, 박 목사는 작년에 은퇴하셨다고 했다. 그런데 안타까웠던 소식은 그동안 거주하셨던 두 분의 수사 분들은 신학공부를 하기 위해 떠나셨고 박 목사가 은퇴하신 후에는 한 달에 한 번씩 열리던 정기적인 피정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며칠이 지났는데도 그 소식이 아직도 진한 아쉬움으로 남아있는 것은 아마도 한국 개신교의 소중한 영성의 샘터를 잃었다는 느낌 때문일 것이다.

박 목사가 카리스마타 수도회를 통해 추구하던 동방정교회의 영성은 깊이의 차원을 잃어버린 한국교회에 적잖은 공헌점이 있다고 여겨진다. 동방교회의 영성과 신학에는 몇 가지 장점이 있다. 첫째로, 동방교회의 전통은 영성과 교리, 신비와 신학, 신비적 하나님 체험과 교리를 단호하게 구별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 점은 영성과 교리, 신비와 신학의 분열이 발생한 한국교회의 위기를 극복하는데 좋은 지침을 제공하는 것이라 여겨진다.

둘째로, 위의 장점은 동방교회의 고유한 신학사상인 부정신학(아포퐈틱 신학)을 통해 더욱 분명해진다. 즉 부정신학은 순전히 지적인 신학을 엄격하게 배제한다는 점이다. 신학은 하나님 존재에 대한 지식들을 위한 탐구라기보다는 모든 오성을 초월해 계시는 분에 대한 하나의 체험이어야 한다. 체험 밖에서는 어떠한 신학도 존재하지 않으며 그 체험은 변화이며 새로운 사람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을 알기 위해서는 그분에게 가까이 나아가야 한다. 만약 하나님과의 연합의 길을 따라가지 않는다면 누구라도 신학자라 할 수 없다. 그러나 사실 이 연합의 길은 성직자들이나 신학자들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동방교회의 가르침에 따르면, 신화(theosis, deification) 또는 하나님과의 연합은 모든 그리스도인의 삶의 목표이기 때문이다.

셋째로, 동방교회 영성의 또 하나의 장점은 수덕생활과 신비생활의 조화이다. 수덕생활이 영적, 도덕적 삶의 진보를 위해 애쓰는 인간의 노력과 훈련이라면, 신비생활이란 인간의 노력으로는 도달할 수 없는 초월적인 하나님을 체험하는 것을 의미한다. 비유로 말하면, 전자는 배를 저어가는 것이고 후자는 돛을 달고 항해하는 것이다. "노는 수덕적인 노력이요 돛은 하나님의 바람을 잡기 위해 펄럭일 필요가 없는 신비적인 수동성이다." 기도도 마찬가지이다. 노를 저어가듯 능동적인 기도가 있고, 바람이 불 때 돛으로 배가 나아가듯 수동적인 기도가 있다.

넷째로, 동방교회의 영성은 기독교신앙의 깊이의 차원을 궁구하는 장점이 있다. 헤지카즘 영성을 통해 언급했듯이 동방교회의 영성은 존재의 중심이 마음이고 그 마음의 깊은 곳에서 하나님을 만날 수 있고, 하나님과의 일치와 연합을 맛볼 수 있다고 생각하기에 깊은 마음으로의 여행에 집중한다. 이상의 여러 특성들은 깊이의 차원을 잃어버린 한국 개신교의 갱신에도 많은 유익을 줄 수 있다고 여겨진다. 다섯째로, 동방교회의 영성은 쉬지 않고 기도하는 '예수기도' 전통을 가지고 있다. "하나님의 아들, 주 예수 그리스도여, 이 죄인을 불쌍히 여기소서"라는 '예수기도'는 우리의 영혼을 정화할 수 있고 구세주 하나님을 쉬지 않고 부를 수 있게 해주는 유익이 있다. '예수기도'를 통해 우리는 그리스도의 능력과 우리 자신의 무능함을 인정하게 된다. 도날드 블러쉬는 오늘날 현대 개신교가 위기에 처하게 된 것은 영적 훈련을 상실했기 때문이라고 하였는데 동방교회의 '예수기도'는 개신교인들에게도 유익한 좋은 영적 훈련 방법으로 활용될 수 있다고 여겨진다.

정원범 교수 / 대전신학대학교

 


정원범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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