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존엄과 권리 지켜주는 것이 신앙의 길"

30년째 난민 위한 무료병원 운영하는 미얀마 난민들의 어머니 신시아 마웅 여사 표현모 기자l승인2015.10.20l수정2015.10.20 11:19l3012호 l조회수 : 1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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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유럽으로 향하는 시리아 등 중동의 난민 문제도 심각하지만 아시아에도 오랜 정치 불안과 탄압으로 수많은 난민들이 발생해왔습니다. 미얀마 같은 나라가 그렇죠. 미얀마와 태국의 국경지대에는 많은 미얀마 난민들이 살고 있고 이들의 삶은 열악하기 그지 없습니다. 국제사회, 특히 아시아 국가들이 같은 대륙의 난민 문제에도 관심을 가져주었으면 좋겠습니다."
 
미얀마 난민들의 어머니이자 미얀마 민주화를 위한 운동가, 의료인인 신시아 무앙 원장(55세)은 한국교회가 고통받고 있는 미얀마 난민들에게도 관심을 가져줄 것을 호소했다.
 
태국의 국경지역 메솟에서 미얀마 난민을 위한 메타오병원을 운영하며, 미얀마의 민주화를 위해 노력해 온 신시아 무앙 원장이 한국을 방한했다. 신시아 원장의 이번 방한은 지난 5일 일가상 수상을 위해 총회 파송 태국 선교사 허춘중 목사의 안내로 이뤄진 것.
 
신시아 원장이 미얀마 난민들을 위한 병원을 운영하고 있는 지역은 태국의 메솟으로, 이곳은 현재 약 100만 명의 미얀마 난민 및 이주노동자들이 고통 가운데 삶을 살아가고 있다. 이들은 정치적 상황으로 인한 군사독재의 억압을 피해서 왔거나 경제적인 빈곤과 기아의 상황을 피해서 온 사람들이다. 이 지역은 작은 강 하나를 두고 국경을 이루고 있으며, 미얀마 민주화를 위해 싸우는 카렌 해방군과 정부군의 전투가 이루어지고 있는 심각한 분쟁지역 중 하나이다.
 
1962년 네윈 장군에 의하여 군사 쿠데타가 일어난 후 현재까지 극심한 군사독재 정부가 계속되고 있는 미얀마는 국민들이 여러 차례 민주화를 요구하는 저항운동을 펼쳤고 1988년에는 학생과 지식인, 종교인 그리고 일반시민이 참여하는 대규모 국민 항쟁이 펼쳐졌다. 광범위한 저항에 부딪친 군사정부는 1990년 총선거를 받아드렸고 이 선거 결과로 당시의 야당 지도자 아웅산 수지가 이끌던 NLD(민족민주동맹)이 절대 다수의 지지를 받아 정권교체의 기회를 맞이했으나 군사정부는 불법으로 정권을 이양를 하지 않았다. 이에 다시 국민의 민주화와 정권이양 요구에 네윈 장군이 직접 사살명령을 내려 당시 수천 명의 시민이 사살되었고 많은 민주화 지도자들이 태국국경으로 피신하여 현재의 메솟 지역을 중심으로 거대한 난민캠프가 형성되어 현재에 이르게 된 것.
 
신시아 원장도 의과대학을 졸업한 후 의사로서 지역의 한 병원에서 근무하던 중 학생운동에 투신하여 민주화 운동을 주도했으며, 1988년 버어마 정부의 대규모 학살과 검거령을 피해 망명, 당시 부상을 당했거나 이주 도중에 지뢰를 밟아 중상을 입은 사람들을 돌보며 병원을 시작했다.
 

   
 


현재 메타오병원은 신시아 원장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성장, 확대되어 외과, 정형외과, 내과, 산부인과, 안과, 재활의학과 등 16개 부서를 운영하고 있고, 하루 약 400~500명의 환자를 돌보며 의사와 의료종사자, 훈련요원, 상담요원 등 670명을 거느리는 병원으로 발전했으며, 모두 무료로 진료하고 있다. 메타오병원은 일반적인 의료진료 활동뿐만 아니라 HIV/AIDS, 말라리아 등의 질병 퇴치와 가정의 예방활동, 건강-보건 교육을 통한 질병 예방과 퇴치를 위한 활동과 함께 태국과 미얀마 국경 마을의 보다 증진된 의료 서비스를 위한 의료종사자 교육과 훈련, 국경지역의 어린이를 위한 학교 교육과 인권 보호와 신장 운동, 기타 미얀마의 민주화와 민주화 이후의 사회를 유지할 대안적인 인적, 지적, 사회적 자원을 위한 공동체의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다.
 
신시아 원장은 이러한 험난한 인생 여정을 살아왔음에도 지금까지 인생을 살면서 가장 힘든 점은 대중을 각성시키는 것이라고 말한다.
 
"미얀마 특히 카렌족 사람들은 오랫동안 독재정권의 지배를 당하고 생명을 위협받는 상황에 처했기 때문에 무기력합니다. 고작해야 자신의 먹을 것, 입을 것만 생각하고 내가 장차 무엇을 해야한다는 의지가 없었습니다. 눈 앞에서 가족이 학살당하는 것을 보았기 때문에 개인적인 심리적 고통도 심했죠. 미래도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으니 절망감에 빠져 있습니다. 치료만 하는 것은 의미가 별로 없습니다. 그 사람이 돌아가서도 똑같이 무기력하게 인생을 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대중을 각성시켜 그들의 권리를 찾고 주체적으로 무엇을 할 수 있게 하는 것이 가장 힘든 일입니다."
 
신시아 원장은 이외에도 매순간 약이 모자라고, 재정이 떨어지고, 직원도 태부족인 총체적인 부족함 가운데 병원 사역을 하고 있다. 이러한 열악한 환경 속에서 재정이 부족해 치료를 포기해야만 하는 사람들이 생겨날 때마다 마음이 미어진다고 한다. 또한, 임산부들의 영양 및 위생, 신생아들의 위생, 고아 문제 등 산적한 문제도 많다.
 
이러한 어려움 속에서도 신시아 여사는 14세 때부터 가져온 신앙 안에서 정의와 평화의 길을 가기 위해 몸부림친다.
 

   
 


"저는 국경을 넘어 난민이 된 후 어떻게 내 삶을 살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평화를 만드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평화와 정의가 없으면 제대로 된 삶을 살 수 없습니다. 정치적으로나 지위가 높은 사람이 평화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고 가난한 이들이 함께 평화를 유지하고, 이를 위해서는 도우고 나눠야 합니다. 이것이 신앙의 정수라고 생각합니다. 인간의 존엄과 권리를 지켜주는 것, 그러한 삶을 살게 하는 것, 이것이 신앙인의 길이라고 믿습니다."


표현모 기자  hmpyo@pckworld.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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