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을 사랑한 캐나다 선교사들의 발자취를 찾아

캐나다 토론토 선교답사 팸투어(상) 표현모 기자l승인2016.05.17l수정2016.05.17 15:19l3043호 l조회수 : 3994

크게

작게

메일

인쇄

신고

   
▲ 서머나교회 비전펠로우십 선교전시관에서 함께 한 팸투어 참가자들.

【토론토=표현모 차장】구한말 한반도에 복음을 전해준 외국인 선교사들이 한국사회와 교회에 끼친 영향은 지대했다. 이중 가장 많이 알려진 이들은 언더우드, 아펜젤러를 필두로 한 미국인 선교사들이다. 하지만 한국 기독교 초창기 미국 다음으로 우리나라에 많은 선교사를 파송한 캐나다 선교사들은 상대적으로 많이 알려지지 않다. 이들은 1800년대 말엽부터 우리나라에 복음의 열정이 불붙게 하고, 사회발전을 견인하며, 심지어는 독립운동에 까지 절대적인 기여를 했음에도 한국교회의 일반 성도들에게 그 존재감이 제대로 인식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대한항공 토론토지점장을 역임한 강사겸 집사(현 대한항공 대구지점장)가 게일 및 하디 선교사의 생가와 모교회, 선교사들의 발자취를 모은 전시관, 수많은 선교사를 배출한 토론토대학 등을 방문하고, 평생을 선교사 연구에 헌신한 유영식 교수의 설명을 들을 수 있는 의미 있는 관광코스를 개발해 한국교회 성도들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선교사 유적지 탐방을 골자로 한 관광상품의 정식 런칭을 앞두고 대한항공과 캐나다관광청 한국사무소(대표:이영숙)는 지난 3~7일 캐나다 현지의 폴라리스여행사(대표:김범수)와 협력해 교계의 목사, 장로 및 언론사를 초청해 캐나다 토론토 선교답사를 위한 팸투어를 진행했다.

# "미래는 역사를 기억하는 자들의 것"
비전펠로우십 선교전시관

지난 3일 오전 캐나다 토론토에 도착하자마자 일행들이 향한 곳은 시내에서 30분 가량 떨어진 서머나교회. 이곳에는 19세기 말 한국에 와서 복음을 전한 캐나다 선교사들을 기리고, 그 소중한 업적을 전시해놓은 비전펠로우십 선교전시관이 있기 때문이다.
 
전시관의 크기는 아담했지만 이곳에는 한국의 복음화와 사회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한 캐나다 선교사들의 업적과 신앙을 계승하려는 한 노(老) 장로의 헌신과 열정이 담겨 있어 방문자들에게 깊은 감동을 주었다.
 
그 주인공은 바로 이 선교전시관을 설립한 최선수 장로(81세). 그는 치과의사로 남부럽지 않은 삶을 살다가 나이 50이 넘어 선교의 열정에 불타 병원을 비롯한 재산을 모두 정리하고 캐나다 이민을 와 온누리교회의 파송으로 15년간 동북아 선교를 한 열정적인 신앙인이다. 방문단을 맞이한 최 장로는 비전펠로우십 전시관을 시작하게 된 계기를 설명했다.
 
"선교를 하다가 밴쿠버로 잠시 들어온 적이 있었습니다. 지인이 캐나다 선교사 한 분의 병문안을 간다고 해서 동행했죠. 90세가 넘은 할아버지였어요. 인사를 드리니 '한국 축복, 한국 축복'이라고 인사를 하셔요. 그분은 황해도 해주에서 오랫동안 선교를 하셨다고 해요. 깊은 인상을 받고 돌아왔는데 6개월 후

   
▲ 비전펠로우십 설립자 최선수 장로.

선교사님의 부인이 찾아와 3달 전 남편이 세상을 떠났다며 남편이 쓴 '조선회상'이라는 책을 주셨어요. 그런데 그 책을 받고는 10년 동안 책장에 놓고 잊어버렸죠. 어느날 한국의 교보문고에 갔더니 '닥터 홀의 조선회상'이라는 책이 꽂혀있는 거예요. 제가 만난 분은 평생을 한국에서 의료선교사로 헌신하며 결핵퇴치 등에 앞장 선 셔우드 홀 선교사였습니다. 강한 충격을 받았어요. 그날로 밤을 세워 책을 읽었습니다. 그 이후 2005년부터 캐나다 선교사에 대한 자료를 찾기 시작해 전시관까지 만들게 됐죠."
 
고국에 생명의 복음을 전하고, 개화를 앞당긴 선교사들에 대한 감사의 마음으로 최 장로는 자료를 모으기 시작했지만 그 과정이 쉽지는 않았다. 여러 문헌을 뒤져 선교사들의 교회와 생가, 출신학교를 알아내기 위해 수차례 인근 지역을 뒤져야 했으며, 아카이브를 꼼꼼하게 검색해 자료를 수집했다. 생소한 한국인의 방문에 순순히 자료를 넘겨주지 않는 이들도 많았다. 또한, 수많은 사진들도 한 장당 25달러를 들여 구입을해야 했기에 재정적인 부담도 많았다. 이렇게 그가 찾아낸 캐나다 선교사는 182명에 달한다
 
최 장로는 "한국의 교인들이 이 선교전시관을 방문해 복음전파 뿐 아니라 학교와 병원을 세우는 등 근대화에 기여했던 캐나다 선교사들의 업적을 알고 기릴 뿐 아니라 믿음과 헌신 또한 계승하기를 바란다"고 바람을 피력했다.
 
전시관을 방문한 방문단들은 "이렇게 많은 선교사들이 고국에서 출세의 길을 버리고, 영적 불모지이자 미개의 땅이었던 한반도를 찾아 헌신한 것을 잘 몰랐다"며 "또한, 이러한 선교사들의 업적을 기리고 신앙을 계승하기 위해 노력하는 최 장로님에게 감사드린다"고 인사했다.

   
▲ 비전펠로우십에서 관장의 설명을 듣고 있는 방문단.

#"다문화 사회 토론토는 선교 훈련장"

이날 이동 중에는 토론토영락교회 송민호 목사가 동행해 한국에 온 최초의 캐나다 선교사 제임스 게일이 살았던 당시의 토론토의 상황에 대한 설명을 이어나갔다.
 
송 목사는 당시 시대상황에 대해 "19세기 중반 토론토에는 다양한 배경의 이민자들이 유입되면서 이곳의 사람들은 다문화적 상황을 경험함으로서 타 문화권에 대한 적응이 용이했다"며 "이 땅의 전도유망한 젊은이들이 당시 엘리베이터가 설치되고 수세식 화장실이 설치되는 등 생활방식이 날로 진보하는 장밋빛 세상을 버리고 미개의 땅 조선으로 향했다"고 말했다. 또한, 송 목사는 "1870년대 토론토의 교회들은 막강한 영적인 권위와 힘을 가지고 조선으로 선교사를 파송했다"며 "그러나 지금의 캐나다는 전세계에서 세번째로 동성결혼을 합법화시키고, 교회들은 박물관화 되어 가고 있어 오히려 한국교회가 토론토의 복음화를 위해 기도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교회의 힘이 미약해지고 있다"는 송 목사의 지적대로 현재 토론토 시내 각 교단의 모교회들이 모여 있는 '처치 스트리트(church street)'는 동성애자들의 거리로 변해버렸을 정도로 교회들의 영향력이 쇠퇴하고 있어 오히려 이제는 한국 교민들이 캐나다 교회의 회복을 위해 기도하고 있는 상황이다.

#선교사들 배움의 터전 토론토大

첫날의 마지막 일정은 게일 선교사와 하디 선교사의 모교인 토론토대학 방문이었다. 토론토대학 내에는 단과대학인 존녹스대학, 빅토리아대학 등 4개의 단과대학이 있다. 토론토 최고의 인재를 길러내는 대학 답게 이곳에서는 한국에 파송된 선교사들을 다수 배출했다. 한국에 온 최초의 캐나다 선교사인 제임스 게일도 이곳 출신으로, 당시 평신도의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학생자원운동의 영향을 받아 토론토대학 내 YMCA 파송으로 한국에 왔다. 현재 우리나라의 신학을 이끌어가는 많은 학자들이 이곳 출신으로 각계 각층에서 활약하고 있다. 인상 깊은 점은 토론토대학에는 에이비슨, 스탠리, 플로랜스 등 한국 기독교 초기 의료선교를 했던 3명의 선교사들에 대한 감사의 의미로 탑이 세워져 있는 것. 연세대 의과대학에서 세운 이 탑은 3명의 선교사들이 한국에 복음을 전하고 의학의 발달을 이끈 공로를 기리며, 후대들이 기억할 수 있도록 다보탑 모양의 탑을 설치했다. 현재 이곳에서는 다수의 한국의 신학생들이유학을 하고 있으며, 교수진 중에도 한국인이 있을 정도로 우리나라와 깊은 연관성을 갖고 있다.
 

   
▲ 토론토대학 내 빅토리아대학 연세대에서 감사의 뜻으로 세운 탑


유영식 교수(토론토대 은퇴교수)의 안내로 진행된 토론토대학교 방문에서 한국 방문단 일행은 게일, 하디 선교사 등이 수학하고 생활했던 교정을 거닐며, 미명의 땅 조선의 영혼들을 위해 인생을 바친 선교사들의 숨결과 흔적을 느낄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다고 고백했다. 이들은 연세대 의과대학이 세운 선교기념탑 앞에 모여 120년 전 한국을 위해 선교사를 보내준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고, 남겨진 예수 그리스도의 지상명령을 이루는 후대들이 될 것을 다짐하는 기도를 드렸다.

 

#조선에 대한 헌신 고스란히


토론토 서머나교회 비전펠로우십 선교전시관

"원산 대부흥의 가장 큰 주역 하디 선교사의 회개는 어떤 배경에서 이뤄졌을까?"
 
"3.1운동을 도운 선교사들은 누구였을까?"
 
토론토 서머나교회의 비전펠로우십 선교전시관에 들르면 이러한 궁금증을 해결할 수 있다.
 
선교전시관에서는 캐나다 선교사들에 대한 귀한 자료와 정보들이 알기 쉽게 전시되어 캐나다 선교사들이 당시 우리나라에 미친 영향과 공헌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다.
 
원산 대부흥은 여성선교사인 매컬리와 화이트가 작은 기도모임을 만들어 부흥이 일어나게 해달라고 기도하면서 시작됐다. 이 모임이 커져 12명의 선교사들이 사경회에 참여하면서 선배 선교사인 하디에게 성경공부를 인도해달라고 요청했던 것. 하디는 이 성경공부를 인도하며 자신의 신앙과 선교활동에 대한 반성이 많이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하디 선교사가 원산 감리교 교인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회개하면서 커다란 부흥으로 발전하게 된 것.
 
이곳에선 3.1운동 당시 캐나다 선교사들이 미친 영향도 한 눈에 확인할 수 있다. 미국 선교사들은 일본과의 정치적 이해관계로 3.1운동에 대해 다소 소극적이거나 비판적이었지만 캐나다 선교사들은 3.1운동을 준비하는 한국인들을 격려하고, 사역하는 병원이 치외법권 지역임을 이용해 3.1운동의 예비모임 장소로 사용되거나 연락의 중심지가 될 수 있도록 배려했다. 또한, 스코필드 선교사의 경우는 만세운동 현장에 나가 일제의 만행을 국제사회에 폭로하고 이를 사진과 문서로 남겨 역사의 증인 역할을 했다. 성진 제동병원의 그리어슨 선교사, 바커 선교사와 용정 제창병원의 마틴 선교사, 세브란스 병원의 스코필드 박사 등이 그들이다.


표현모 기자  hmpyo@pckworld.com
<저작권자 © 기독공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표현모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기기사

기사 댓글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0 / 최대 400byte

숫자를 입력해주세요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합니다.
여백
여백
한국기독공보 사람들기사제보광고안내광고검색지사장모집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이메일무단수집거부청소년보호정책새 생명 새 빛 운동
한국기독공보  |  등록번호: 서울, 아0429  |  등록일: 2016년 12월 22일  |  발행인: 이성희  |  편집인: 천영호
발행소: 서울특별시 종로구 김상옥로 30, 1402호(연지동, 한국기독교연합회관)  |  청소년보호책임자: 차유진
편집국: 02) 708-4713~6 /4720(fax)   |  총무국: 02) 708-4710~2 /4708(fax)   |  광고국: 02) 708-4717~9 /4707(fax)
Copyright © 2004 - 2017 한국기독공보. All rights reserved. 외부필자의 원고는 본보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