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대 갈등은 소소한 대화에서 해소되고 교단의 개혁은 총대 감축에서 출발한다

김지철 목사와의 대담 한국기독공보l승인2016.11.29l수정2016.11.29 14:12l3069호 l조회수 : 32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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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보 창간 70주년을 맞이해 연중기획으로 진행한 '신앙의 대잇기 지금부터 시작이다'가 이번호를 끝으로 대 단원의 막을 내린다. 현장 취재와 전문가의 원고, 그리고 목회 사례현장 취재까지 광범위하게 진행한 이번 기획은 소망교회(김지철 목사 시무)의 후원으로 이루어 졌다. 기획을 마무리하며 김지철 목사와 대담을 통해 다음세대를 향한 목회, 신학적 과제를 제시한다. 

<편집자주>

 

박만서 편집국장: 본교단을 비롯해 한국교회 교세 감소 현상이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때에 기독공보가 소망교회의 후원으로 '신앙의 대잇기 지금부터 시작이다'를 주제로 2016년 연중 기획을 진행해 왔다. 이번 기획을 후원해 주신 김지철 목사님 그리고 당회에 감사드린다. 우선 목사님이 생각하시는 한국교회를 전반적으로 진단해 주시기 바란다.

김지철 목사: 개인과 교회의 만남, 영적지도자의 만남은 똑같다. 사람 중에도 충전이 되는 분이 있고, 방전되는 관계가 있다. 이것을 한국교회에 적용하면 한국교회도 일종의 방전상태에 이른 것 같다.

신앙의 방전, 교육의 방전, 기독교인이 가지고 있는 매력에 대한 방전, 즉 교회에 대한 에너지를 빼앗기고 상실이 된 상태를 말한다. 교회 지도자를 만나고 싶지 않은 것처럼 이 같은 방전에 사람들이 큰 충격을 받은 상태이다. 목사를 먹사, 기독교를 개독교라고 부르는 언어는 우리의 마음도 아프게 한다.

기독교가 사람을 충전하고 치유하는 느낌을 주는 것이 아니라 기독교 복음의 핵심이 방전상태가 돼 세상 속에 에너지를 빼앗기는 모습으로 가는 것은 큰 문제이다. 이것을 현대적 용어로 정의하면 기독교의 매력이 사라진 것이다. 예수를 믿는 것이 매력적이던 접근 방식이 이제는 예수 믿는 것을 창피하고 부끄럽게 한다. '예수를 왜 믿느냐?'는 의문도 갖게 한다. 믿는 너와 믿지 않는 나의 다름이 있느냐에 대한 대답을 할 수 없을 만큼 교회의 상태가 무너지고 있다.

특별히 20~30대 청년들을 만나고, 사역자의 이야기를 경청할 때 청년 대부분이 패배주의에 매몰돼 있어 보인다. 교회를 삶의 자랑이 아니라 도피처로 생각하는 모습으로 이해할 수 있다. 신앙의 역동성을 갖지 못하고, 치열한 경쟁을 벗어나기 위한 일종의 도피처로 여기는 모습이 참으로 안타깝다. 또 교회만큼 권위주의적인 곳이 없다. 권위는 참 좋은 말이다.

권위는 헬라어로 '엑수시아(ex-oo-see-ah)'이다. 수시아는 '본질'이다. 본질로부터 나오는 것이 권위라는 뜻이다. 하지만 권위주의는 본질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외면과 형식을 강조한다. 여전히 목사 장로에게서 이 같은 권위주의적인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권위주의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우리는 고민해야 한다.

박만서 편집국장: 목사님은 목회자이시면서 신학자이시다. 오늘의 한국교회의 모습을 성서신학적으로 분석한다면 어떠한 결론이 나올 수 있을까?

김지철 목사: 고린도교회는 한국교회와 비슷하다. 이름도 비슷하다. 고린도 약자는 COR이고, 독일어로는 KOR이다. 이외에도 영적인 열광주의가 있고, 분파주의, 기복주의, 도덕적 타락 등 이 같은 복합적인 문제가 나타나고 있다. 그중에서 가장 큰 특징은 분파주의다.

하지만 고린도전서 1장과 3장을 통해 권위주의가 가지고 있는 계층(하이라키hierarchy) 구조를 뒤집어 놓았다. 바울은 교인들이 내 것이 아니라 내가 교회 것이고, 내가 성도들의 것으로 생각했다. 교인은 사도들에게 속한 존재가 아니라 예수님께 속한 존재로 인식했다.

계층 구조가 가지고 있는 교회의 성도와 사도들의 구조를 뒤바꾼 것이다. 성도들이 사도의 것이 아니라 사도는 성도와 교회를 위해 섬기는 존재로 보고 있다. 결국 근본적인 권위주의에 대한 인식을 뒤집었다. 바울의 신학이 중요한 이유이다.

잘 못된 권위주의를 비판하고, 타파하는 말씀의 메시지가 그 안에 담겨 있다. 하지만 한국교회 안에는 권위가 목회자에게 예속돼 있다. 대형교회일수록 심각하다. 목회자가 권력자가 되는 지배구조이기 때문이다. 이것을 극복하지 않으면 안 된다.

성경에는 또 하나의 구조가 있다. 그것은 '지혜서' 이다. 잠언ㆍ시편ㆍ전도서ㆍ욥기가 지혜서이다. 이것의 특징은 삶의 신학이다. 여기서는 평준화된 대화를 한다. 그러면서 지혜가 무엇인지 찾아내고 있다.

하지만 한국교회는 모세오경처럼 교리주의에 우선권을 갖거나 대 사회적인 예언을 통해 남의 탓, 네 탓을 하는 시대 비판적인 틀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대화적 공동체를 만드는 지혜의 문학적인 삶의 패턴이 형성되지 못하고 있다. 한국교회가 가지고 있는 교육의 부재 때문이다. 주일에도 대화는 없다.

목회자는 주입하고 있다. 예수님은 제자들과 대화적 공동체를 이루셨다. 교육은 지혜적 공동체에서 이뤄진다. 결국 우리 교육의 사고적, 해석학적 패턴도 변화되어야 한다. 주입식 방식과 예언적 전통의 획일화 두 가지를 존중하면서 대화적 지혜공동체를 이뤄가야 한다. 거기에 예수님이 가지고 있는 지혜의 모습, 고린도교회의 권위주의적 분파를 극복하고 회복하려는 바울의 노력이 필요하다.

특별히 신학교육의 핵심을 기독론으로 바꾸면서 우리가 따라가야 할 예수님의 인간상을 드러내야 한다. 복음적이면서도 수평적인 대화와 소통의 장을 열어놓기 위해서는 지혜적 특징이나 전통을 이어받아야 한다. 주일예배가 너무나 중요하지만 한계에 직면해 있기 때문에 이것을 극복하기 위해서 지혜적 사고를 교인들이 활용할 수 있도록 강조해야 한다.

박만서 편집국장: 이번 기독공보 연중기획을 통해 특별히 한국교회의 3040세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음을 확인하게 되었다. 세대를 이어 지속적으로 부흥하는 한국교회의 바람직한 목회 모델을 제시해 주시기 바란다.

김지철 목사: 한국교회 30~40대, 50~60대는 교리주의, 권위주의, 일방적 훈계 중심에 있던 부모의 자녀들이다. 그 세대에는 대화가 없었다. 제일 행복한 가정은 부모와 자녀 간의 대화가 있는 가정이다. 아들과 대화하는 아버지는 최고의 아버지이다. 하지만 30~40대는 이런 훈련을 받지 못했다.

교육의 핵심은 대화이지만, 대화하는 법을 어려워 한다. 신학교의 구조, 학교의 구조, 우리의 모든 구조는 질문하면 왕따가 된다. 전체적으로 해석학적 틀을 바꿔나가야 한다. 이것은 30~40대만의 문제가 아니라 교육의 근본적인 문제이다. 질의하고 응답할 수 있는 구조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대화할 수 있는 교육 콘텐츠와 교육적인 방법론, 미래 지향적인 목표가 동시에 나타나야 한다. 대화공동체가 되지 않으면 모든 교육은 실패한다.

부부간에도 대화가 없다. 전 세대를 소통하게 하는 교육 방향을 지혜적 교육으로 바꿔 나가야 한다. 지혜의 문학, 잠언 전도서를 보면 경제, 관계, 결혼, 권력, 목표 등 인간이 고민하는 삶의 이야기에 대한 답이 모두 있다. 전도서는 물음의 책이다. 나머지 65권은 대답하는 책이다. 결국 우리는 지혜로 전체 교육의 틀을 바꿔 나가야 한다. 그래야 대화가 된다.

소소한 삶의 이야기를 나누고 소통하면서 하나님의 섭리와 간섭을 경험해야 한다. 지혜교육을 변화의 출발점으로 삼아야 한다. 다음으로 30~40대는 바쁜 삶을 살고 있다. 먹고 살아야 한다. 자녀를 양육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소망교회도 30~40대 연령별로 그룹을 조직하고, 목회자를 투입하고 있다.

가족 간의 모임도 한다. 목회자와 함께 자발적으로 성경공부를 하면서 교제한다. 이와 함께 교회 내 성도들에게 가족카톡방을 만들게 했다. 부모와 자녀, 형제까지 그룹을 형성하고, 카톡방을 만들어 대화의 장을 만들도록 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성경말씀, 축복의 메시지를 전하도록 했다.

SNS대화채널을 통해 끈끈한 가족, 형제애와 말씀 중심의 기도 공동체를 이루면 큰 변화가 있을 것이다. 기독공보가 이를 위한 캠페인도 전개하면 좋겠다. 이외에도 소망교회는 30~40대 미혼자, 돌아온 싱글을 위한 청년 플러스 사역도 시작했다. 변화의 시발점이다.

박만서 편집국장: 우리 사회의 인구 감소 현상을 두고 인구절벽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기도 한다. 이러한 현상이 결국 한국교회를 크게 위협하고 있다. 인구절벽 시대에 교세가 유지되면서 꾸준히 성장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김지철 목사: 사실 인구 감소는 대책이 없다. 저는 결혼 주례를 할 때 반드시 2명 이상 자녀를 낳겠다는 서약을 받는다. 요즘 30~40대 젊은이 대부분 맞벌이를 한다. 출산율을 높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교회와 국가적 재앙이 될 수 있다. 이제 다음세대 어린이들이 교회학교에 참여하는 것은 대형교회에만 주어지는 혜택 아닌 혜택이 될 수 있다. 작은 교회들은 고통받을 수밖에 없고, 더 작은 교회는 교회학교가 문 닫는 지경에 이를 수밖에 없다.

박만서 편집국장: 교회학교의 감소는 위험수위를 넘어서고 있다. 교회학교를 위한 과제를 제시해 주시기 바란다.

김지철 목사: 소망교회는 지방의 자립대상교회 청소년을 위한 캠프를 진행하고 있다. 초등학교 자립대상교회 어린이 캠프도 진행한다. 우리가 도와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늘 고민하고 있다. 작은 교회의 다음세대를 훈련하고 교육하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국가의 미래를 생각하는 정치인이 등장해 아이를 잘 낳게 하는 것에 정책의 초점을 맞춰야 한다. 특별히 어린 자녀를 둔 30~40대를 영적으로 지도하는 영적 지도자가 필요하다. 역시 지도자 문제이다. 자녀를 낳고, 양육하는 것이 최고의 축복임을 알도록 지도해야 한다.

최근 대형교회의 리더십이 교체되고 있다. 우리 교단도 세대교체가 진행되면서 목회자들의 평준화 시대가 오고 다. 평준화 시대에는 카리스마 리더가 아닌 소통하고 대화하는 영적 지도자가 필요하다. 그렇게 해야 사람들을 바른길로 이끌 수 있다. 리더가 어떤 사역을 담당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 기독교의 영적 리더십은 말씀의 권위를 가지고, 기도와 사랑으로 따뜻하게 돌보는 것이다. 스펙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성품과 인격이 중요하다.

박만서 편집국장: 2016년을 마무리하고 2017년을 맞이하고 있다. 우리 교단을 보면 2016년엔 '화해'가 주제였다면 2017년은 '개혁'이다. 지난 1년에 대한 평가와 함께 목회적 차원의 새해 전망과 목회실천 과제를 제시해 주시기 바란다.

김지철 목사: 화해 때문에 불화가 나타나기도 했다. 화해와 용서는 다르다. 용서는 일방적으로 하는 것이고, 화해는 쌍방의 문제점을 고백하고, 더 이상 과거에 연연하지 않고 새로운 미래를 위해 함께 전진하겠다는 약속이다.

하지만 화해가 값싼 화해로 변질 되진 않았는지 우리는 반성해야 한다. 또 개혁은 회개부터 시작한다. 복음서의 첫 메시지는 회개를 강조했다. 마틴루터 95개조 1항은 마태복음을 인용하면서 회개를 강조했다.

헌금통에 동전을 넣는 것, 신부 앞에서 참회하는 것으로 회개하는 것이 아니라 본질적으로 하나님 앞에서 회개하라고 했다. 이것은 모든 개혁의 시초이다. 최근 알파고와 이세돌의 바둑 대결 후 이세돌은 모든 고수가 '복기(復棋)'를 해야 한다고 했다. 복기는 내 수를 확인하고 아는 것이다.

아마추어는 복기를 못 한다. 내가 어디에 두었는지 모르는 것이다. 하지만 프로는 알고 있다. 한국교회가 개혁이 안 되는 이유는 복기할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아마추어에 머물러 있다. 회개할 능력을 잃어버렸다.

회개할 능력이 있어야 개혁이 된다. 회개할 능력을 잃어버리면 개혁은 안 되고, 잘 못된 부정 속에 서서히 함몰되는 위험을 겪을 수밖에 없다. 최근 정치와 사회적 문제에 대해서도 교회의 역할은 한계가 있다. 총회와 연합기관 등은 문제의 본질을 다뤄야 한다. 정치의 본질을 확인해야 한다.

본질을 놓친 비판은 천박한 비판이 될 수 있다. 예수님도 정치적이셨다. 초대교회는 황제대신 예수님을 큐리오스(Kurios)로 불렀다. 그리고 예수님의 첫 메시지는 회개였다.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음을 강조했다.

황제가 아닌 새로운 하나님 나라의 제시였다. 황제가 주인이었지만, 예수님이 주인인 나라가 도래했다는 것은 혁명적이고 정치적이었다. 본질적 정치에 참여한 것이다. 예수님이 가지고 있던 죄목은 정치적 죄목이었다.

예수님의 형틀도 정치적 형틀이었다. 당대 사람들은 예수님의 죽음을 정치적으로 이해했지만 놀랍게도 예수님의 제자들과 믿음의 사람들은 정치적인 예수님의 형틀을 뛰어넘는 신학적인 이해를 했다.

그것은 바로 예수님의 죽음을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의 죽음으로 받아드린 것이다. 그분을 통해 하나님이 인간을 사랑하는 보편적 구원의 인간의 역사가 이뤄졌고, 정치적 왕권을 뛰어넘는 하나님의 왕권이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통해 나타난 신학적 이해로 이해했다.

결국 예수님의 죽음은 정치적 죽음이면서 신학적 죽음이었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 운동이면서 동시에 신학적인 운동이었다. 정치적 현상을 뛰어넘는 근본적 현상이었다. 이것이 진정한 개혁의 길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늘 본질을 다뤄야 한다. 총회의 정치적 성명서도 이 같은 판단에 따라 본질에서부터 현실까지 확인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으면 천박한 것이고 미숙한 것이다. 그런 점에서 에라스무스와 루터는 '아드폰테스(ad fontes)' 원점, 본질로 돌아갈 것을 강조했다. 루터는 성경을 통해 본질로 향했다. 성경으로 돌아가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시작이다. 그리고 회개하는 것이 모든 개혁의 시작이다.

박만서 편집국장: 마지막으로 한국교회의 주요 개혁 과제를 제시해 주시고, 이에 대한 한국교회의 당부의 말씀도 전해 주시기 바란다.

김지철 목사: 우리 교단의 개혁은 총대 1500명 감축에서 시작해야 한다. 총대가 300명 되면 개혁이 시작된다. 대형교회 목사들의 총대권을 3년간 보류하고, 총대 격년제를 시행하면 개혁된다. 그러면 대화가 시작되고 논의가 된다. 지금은 목소리 큰 총대들만 주장하고 있다.

총대 300명이면 충분히 소통할 수 있다. 1500명 유지하면 개혁은 절대 안 된다. 교단 개혁의 시작은 총대 감축에 있다고 생각한다. 또 한국교회는 두 가지 축을 동시에 붙잡아야 한다. 하나는 시대 정신을 가지고 있는 NCCK가 시대적 비판을 통해 하나님 나라의 의를 구하는 것과 또 하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복음을 가지고 목회적 현장에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 두 축이 무너졌다. 한기총, 한교연, NCCK도 무너졌다고 볼 수 있다. 시대적 비판을 가지고 기독교 공동체에 안에 머물며 소외된 이웃을 치유하고 돌보는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 이 두 가지가 경쟁하고, 상생하고 비판하면서 더 불어가야 한다. 언론도 각자의 역할에 따라 개혁이 필요하다. 그리고 교단은 지혜적 사고를 확대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그동안 교회는 교리배우기, 제자훈련, 선교훈련을 많이 했다. 이제는 삶의 훈련, 지혜의 훈련을 더 해야 한다. 교회 안팎에서 자기 직분에 맞는 지혜를 갖추도록 도와야 한다. 기독교 신앙의 이분법을 깨고, 신앙과 삶이 함께 가는 지혜 교육의 틀을 맞춰나가야 한다. 이것이 개혁의 과제가 될 것이다.

저에게 있어서 소망교회를 잘 세우는 것이 내게 주신 큰 사명이다. 우리 성도들이 예수님 사랑하는 것, 예수님 자랑하는 것, 예수님께 감사하면 무엇을 해도 좋다고 늘 강조하고 있다. 예수님이 진짜 멋있고, 매력적인 분이기 때문에 우리 크리스찬도 매력적이어야 한다. 교회도 마찬가지이다.

외형을 떠나 인간의 본질, 성품과 인격, 언어와 생각, 인간관계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모든 것을 포함해야 한다. 그러면 교회가 다시 한 번 소중한 관심을 받는 자리가 될 것으로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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