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눈의 민족대표들을 기억하다

대한민국 독립을 위해 노력한 선교사들 표현모 기자l승인2017.02.28l수정2017.02.28 15:26l3081호 l조회수 : 1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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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로 3.1운동이 98주년을 맞이했다. 압제에 굴하지 않는 자주적 민족성을 표출한 지 98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그날의 함성과 뜨거운 피, 단결심은 아직도 우리의 DNA 속에 흐르고 있음을 새삼 확인하는 요즘이다.

일반 역사학자들에 따르면 일제 감점기에 한국에 있던 선교사들은 3.1운동 당시 일본과의 정치적인 이해관계로 중립을 표방하고 독립과 같은 정치 문제에 무관한 입장을 표명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평가한다. 이러한 평가를 내리는 역사학자들도 당시 선교사들은 인간성의 문제나 정의의 관점에서 한국교회를 바라보았고, 그들이 할 수 있는 활동을 해나갔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한다.<경향신문 종교백년<65> 기독교편. 1974년 10월29일자>

3.1운동 후 일제는 외국인 선교사들이 사주 혹은 선동을 했을 가능성을 의심하며, 이들에 대한 조사를 벌이는 한편, 선교사들을 회유해 한국교회에 영향력을 행사해 시위를 중단할 수 있도록 협력해줄 것을 촉구하기도 했다. 그러나 선교사들은 일제의 비인도적인 진압에 항의하고 비밀리에 편지와 보고서를 가족들이나 선교본부에 보내 3.1운동의 소식과 일제의 강압적인 탄압을 폭로했던 정황이 최근까지도 속속 알려지고 있다.

이중 대표적인 자료가 미국교회연합회(Federal Council of the Churches of Christ in America)의 동양관계위원회(The Commission on Relations with the Orient)의 '한국의 상황(The Korean Situation)'이라는 제목의 보고서로, 일제강점기 당시 한국에 살던 선교사들이 1920년 6월경 작성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 문서는 일제강점기 당시 뉴욕의 한인 독립운동의 거점지였던 미국 뉴욕 맨하탄 뉴욕한인교회 창고에서 비교적 최근 발견된 문서로, 1919년 3.1운동 이후부터 이듬해 3월까지 독립운동의 과정을 상세히 소개하고 일본의 무자비한 진압에 대해서도 폭로하고 있다. 특히 이 문서에서는 일본 경찰의 고문과 잔혹 행위, 특히 젊은 여성에 대한 성고문에 대한 고발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이 문서는 한국인이 아니라 외국인이 작성했다는 점에서 일본의 비인간적인 만행을 객관적으로 전하는 귀중한 자료로 여겨진다.
지난 2013년에는 독립기념관이 3.1절을 앞두고 화이팅(Harry C. Whiting, 1865-1945) 선교사의 호소문을 최초로 공개해 눈길을 모았다. 이 호소문은 1903~1920년 미북장로회 소속으로 평양선교부에서 의료선교활동을 했던 화이팅 선교사가 미국으로 돌아가 교회를 돌며 강연할 때 한국의 실상을 알리는 데 사용한 자료다. 이 자료에는 당시 한국에서 일어난 3.1운동의 상황, 한국인의 정당한 독립과 자유 요구, 이를 강압적으로 탄압한 일본과 일본의 기만적인 식민통치의 실상을 담고 있다. 그는 1921년 말까지 266회에 걸쳐 이 같은 사실을 알렸다고 한다.

독립을 위해 힘쓴 선교사들 중에는 특히 의료선교사들의 활약이 돋보인다. 그들은 자신이 사역하는 병원이 치외법권 지역임을 이용해 3.1운동의 예비모임 장소 또는 연락 중심지로 제공했다. 의료선교사들은 병원을 3.1운동에 이용하려는 한국인들에게 장소를 제공하고, 평화적인 만세시위애 대해 일제가 총칼로 저지른 만행을 국제사회에 폭로했으며, 이를 사진 또는 문서로 역사에 남기는 증인으로서의 역할을 했다.

캐나다 선교사인 그리어슨은 함경북도 만세 시위 운동의 진원지 성진에서 제동병원과 자기 집을 운동가들의 본부로 내어주고 시위 도중 죽거나 다친 이들을 보호하고 치료했다. 그는 연루 의혹을 받아 일제로 부터 소환장을 받고, 취조 받는 자리에서 "당신네 성경에도 교인들은 왕을 숭앙하고 그들의 다스리는 자에게 복종하라고 가르치지 않소?"라고 말하자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로,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를 거론하며 설교를 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는 후일 회고록에서 "일본인 소방대원들이 도끼를 들고 경찰들은 총을 들고, 일본인 거리에서 한국인들 거리로 몰려와 한가로이 쉬고 있던 한국 사람들을 닥치는대로 치고 도끼질하고 총을 쏘았다. 죄없이 찢기운 채, 또 총에 맞은 채, 그 수를 헤아릴 수 없는 숱한 부상자들이 속속 병원으로 들이닥쳤다"고 기록하고 주일 교회에 나가 감옥에 있는 교인들이 듣고 힘을 낼 수 있도록 길게 종을 울렸던 일화는 감동으로 다가온다.

북간도 용정에서 사역했던 선교사 바커와 의사 마틴도 한국의 독립을 위해 노력했던 인물들이다. 북간도의 3.1운동 시 일본정부의 간섭 하에 중국군이 이 행진을 막고 발포해 17명의 사망자와 수십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마틴과 바커는 한국의 독립운동을 적극 지원하며, 치외법권임을 이용해 고난 받는 이들과 애국지사들을 보호해주었다. 특히 제창병원의 병원장으로 사역하던 마틴은 1920년 일본군의 간도 출병시 한일학살 참상을 세계에 보도하고 부상자와 이재민 구호에도 앞장섰다. 
미국 북장로교 의료선교사 찰스 어빈(1862∼1933)은 아내 베르다 어빈과 함께 독립을 위해 협력했다. 1903년 부산 영주동에 기전병원, 1909년 상애원 등을 짓고 의료선교를 했던 이들은 독립운동을 위해 30만원을 기부해 상해임시정부에 전달하기도 했다.

이외에도 을사조약 후 고종의 밀서를 휴대하고 미국에 돌아가 국무장관과 대통령을 면담하려 했던 헐버트(Homer Bezaleel Hulbert) 선교사도 유명하다. 그는 '한국평론'을 통해 일본을 규탄하고, 고종에게 헤이그 밀사 파견을 건의하는 등 한국의 국권 회복 운동에 적극 협력했다. 1950년 3월 1일 외국인 최초로 건국공로훈장 태극장을 추서했다.

캐나다 토론토에서 재한 캐나다 선교사들의 업적을 연구해 비전펠로우십 선교전시관을 운영하고 있는 최선수 장로는 "일경의 무자비한 폭력 행사로 부상당한 많은 환자들로 1919년은 어느 해보다 진료환자나 입원환자가 급증했고 선교사들이 운영하던 기독교 병원은 이 환자들을 대개 무료로 치료했고, 또한 투옥된 환자들도 치료했다"며 "3.1운동시 기독교 병원이 보여준 그리스도의 사랑은 많은 한국인에게 감명을 주어 기독교로 개종하는 계기가 됐으며, 1920년 초반 한국교회 대확장의 한 요인이 됐다"고 분석한다. 

이 땅에 복음을 전해준 외국인 선교사들이 한국의 독립을 위해서도 노력했음을 다시 한번 기억하고, 이러한 영적 유산을 이어받은 우리들의 역할에 대해 생각하는 것, 3.1절을 맞은 우리의 올바른 자세가 아닐까?

 

#강한 자에게는 호랑이, 약한 자에게는 비둘기
프랭크 윌리엄 스코필드 선교사 특별전

3.1운동 현장과 화성 제암리의 피해 현장을 사진으로 담아 전 세계에 알린 '34번째 민족대표' 프랭크 윌리암 스코필드 선교사의 특별전시가 서울시청 신청사 1층에서 열려 주목을 받고 있다.

(사)호랑이스코필드기념사업회 주최로 '강한 자에는 호랑이처럼, 약한 자에는 비둘기처럼 3.1운동 98주년 기념 특별전시'라는 제목으로 열리는 이번 전시회는 지난 2월 21~3월 9일까지 열린다.

스코필드 선교사는 1919년 2월, 33인의 한 사람인 이갑성 등과 함께 3.1운동을 적극적으로 후원했으며, 거사 당일에는 직접 만세대열에 참가해 갖가지 시위 모습과 일제의 만행을 사진으로 담아 그 진상을 세계 언론에 폭로하는 한편, 한국인의 독립 염원을 세계에 대신 호소했다. 스코필드는 이 일로 인해 일본 경찰로부터 암살의 위험까지 겪었으며, 결국 1920년 내한한 지 5년도 채 못되어 강제로 추방당했다. 지난 2016년 3월에는 국가보훈처가 지정한 '이달의 독립운동가'로 선정되기도 했다.

한편, 스코필드 장학문화사업단은 제2기 스코필드 장학생을 3월 1일부터 4월 17일까지 모집한다. 장학문화사업단은 중ㆍ고등학생 50명을 선정하며, 일반 지원자는 물론 사회적 배려계층 대상자, 새터민 및 다문화 출신자도 지원할 수 있다. 문의는 전화(02-766-2019)로.


표현모 기자  hmpyo@pckworld.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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