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척박한 동티모르 땅, 한국교회가 품어주세요."

이경남 기자l승인2017.03.23l수정2017.03.23 16:44l3084호 l조회수 :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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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정수 장로.

"동티모르 70여 개 장로교회들이 건강하게 자립할 수 있도록, 이제는 물고기 낚는 법, 즉 우리의 노하우를 전수해줘야 합니다." 척박한 땅에서 가난한 교회와 국민들이 자립할 수 있도록 농업기술을 전수하는 선교사역을 하고 있는 여수 동티모르선교회(회장:김봉구)의 이정수 장로는 4년 전 동티모르로 향했다.
 
국민의 삼분의 일이 독립운동을 하다 희생당한 아픈 역사를 갖고 있는 동티모르인 130만 명을 이정수 장로는 예수님의 사랑으로 품어주고 싶었다. "포르투갈은 식민지배 당시 동티모르 사람들에게 삼무 정책을 실시해, 글을 배우는 것을 금하고, 쇠로된 연장을 만들지 못하게 하고, 술을 마시는 것을 금했다"며, "2002년 인도네시아로부터 독립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국민의 문맹률은 70%에 이르고, 60~70%가 영양실조에 시달리고 있다"고 현지의 열악한 상황을 전했다.
 
이 장로는 먹거리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척박한 동티모르 땅에 선교센터를 짓고, 주변 7000평의 땅에서 한국에서 가져온 씨앗으로 호박, 오이, 참외, 가지, 고추, 상추를 심었다. 이 농작물을 동티모르의 수도 딜리의 가장 큰 마트 4곳에서 판매하고, 판매수익금으로 교회 자립 지원, 교회 급식 제공, 농장 관리 및 운영, 전국에서 농업기술을 전수받고자 하는 교육생 지원, 교회학교 활성화, 동티모르의 교회들을 지원하고 있다. 또한, 2명의 현지인을 목회자로 세우기 위해 대학원 과정의 학업을 지원하고 있다.
 
현재 동티모르에는 72개의 장로교회가 있지만 그중 2곳만 자립한 상태이다. 이 장로는 교회 목회자들에게 농업기술을 전수해 교회가 더 이상의 지원이 없이도 자립할 수 있게 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한국 교회의 지원이 끊기면 동티모르 교회의 목사님들은 교회를 그만 두게 된다. 이제는 현지 교회가 자립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하는 선교정책이 필요하다"는 이 장로는 "한국교회가 선교지에 재정을 지원하는 차원에서 더 나아가 현지 교회 자립 프로그램을 개발할 것"을 강조했다.
 
연중 내내 무덥고, 8개월 동안은 비 한방울 내리지 않는 동티모르는 450년간 포르투갈에게 식민지로 지배당하고 독립 후 일주일만에 다시 인도네시아의 식민지가 되어 27년간 독립을 위해 싸운 나라다. 종교는 국민의 약 95%가 천주교이고, 기독교인은 1.6%에 불과하다. 이러한 환경에서 이정수 장로는 동티모르의 장로교회가 모두 자립하는 날을 꿈꾼다.
 
이 장로는 "우물파기 작업에 돌입했는데, 꼭 물이 솟아나와 1년내내 농사를 지을 수 있게 되길 바란다"며, "앞으로 파파야 과일나무도 심어 교회 자립을 돕는 사역을 적극 전개할 예정"이라고 말한 뒤 "현지에서 농업기술 전수 사역을 혼자 감당해왔는데, 함께 사역할 동역자가 생긴다면 동티모르 교회들을 자립시키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며 한국교회와 교인들의 관심을 거듭 당부했다.


이경남 기자  knlee@pckworld.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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