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예배]8월 14~19일

이경남 기자l승인2017.08.08l3103호 l조회수 :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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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라
본문 : 벧전 4:11~14
찬송 : 67장

고린도전서 10장 31절에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 했다.
만약 우리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염두에 두고 일한다면 그 일은 가치 있는 일이 될 것이며, 실수가 없을 것이며, 후회가 없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힘들고 고난을 겪게 되면 우리에게도 영광이 이루어진다. 고린도후서 4장 17절에서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라고 했다.
그러므로 더욱이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오늘 본문 말씀은 하나님이 영광 받으시게 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고 있다.
첫째,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 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 같이 하라"고 했다.
사람이 산다고 했을 때 말하는 것과 일하는 것이다. 말을 할 때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 같이 진리와 사랑과 의로움의 말을 하고, 일을 할 때는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 같이 힘차고 기쁘고 적극적으로 하면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는 것이라고 했다. 세상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의 말하는 것을 보고, 일하는 것을 보고 '저 사람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기 때문에 저렇게 말하고 저렇게 일하는 구나'라고 칭찬한다면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되는 것이다.
둘째, "연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고 했다.
연단을 위한 시험과 고난이 올 때 그것을 이상히 여기거나, 낙담하거나, 피하려 하지 말고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한다는 마음으로 오히려 즐거워하라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이 당하는 모든 고난은 결코 멸망의 핑계거리가 될 수 없다. 오히려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내는 기회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고난과 시험을 당할 때가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는 기회가 되는 것이다.
셋째,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치욕을 당하면 복 있는 자로다"라고 했다.
예수님을 믿는 것 때문에 세상 사람들로부터 멸시당하고, 따돌림 받고, 박해 받고, 때로 유혹도 받지만 그것을 잘 참고 견디어 하나님 앞에서 언제나 변함없이 든든히 서서 묵묵히 자기소임을 감당하면 그것이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는 것이라 하였다.
우리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함에 있어서 이와 같은 세 가지 일에 힘쓰면 다른 모든 삶은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는 삶을 사는 것이다.
그런 자는 장차 하나님의 영광의 자리에 동참하는 자가 될 것이다.

오늘의 기도
매일 순간마다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삶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찬종 목사
대구엘림교회


화-예수님의 품으로
본문 : 마 11:28~30
찬송 : 95장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외로움에 허덕이며 짐 지고 살아가는 우리를 초청해 주시는 메시지이다. 세상은 우리의 직업, 학력, 경력, 외모를 따지지만 예수님은 아무 조건 없이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모습 그대로 우리를 받아주신다. 세상의 사랑은 '가치를 계산하는' 에로스 사랑이지만 예수님의 사랑은 '가치를 부여하는' 아가페 사랑이기 때문이다. 현재의 모습이 부족해도 미래의 가치를 부여하고 인정하며 용납해주는 사랑이다. 우리를 받아주신 예수님은 우리에게 참된 쉼을 허락하신다. 영적인 쉼은 주님께서 허락하실 때에만 온전히 누릴 수 있다. 많은 현대인들이 고된 현실을 벗어나 일탈에 빠지는 상상을 하지만 쾌락과 만족은 일시적일 뿐 온전한 쉼을 줄 수 없다. 우리를 있는 모습 그대로 사랑하시고 받아주시며 삶의 짐을 져주시는 예수님의 품에 안길 때에 우리는 비로소 참다운 쉼을 누릴 수 있다.
그렇다면 험한 풍랑 같은 세상 속에서 참된 평안을 누리기 위해서 필요한 덕목은 무엇일까? 바로 온유와 겸손이다. 이 두 가지 개념을 정리하자면 온유는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또한 겸손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평안을 얻는 핵심 키워드다.
먼저 '겸손'은 내 삶의 계획과 주권이 하나님께 있음을 온전히 인정하는 것이다. 내가 내 인생의 주인이라고 생각할 때 우리는 끊임없이 답답하고 불안하고 초조한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런 내가 아니라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내 인생을 이끌어주신다는 것은 얼마나 다행인가? 이 사실을 인정하는 겸손을 품을 때 우리의 마음은 평안을 누리게 된다. 이러한 삶을 살았던 다윗은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라고 고백한 바 있다.
둘째로, '온유'는 내 인생을 이끌어 가시는 하나님의 눈으로 내 이웃을 바라보는 것이다. 온유는 한없이 연약하고 부족한 내가 하나님께 용납 받았음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타인을 용납하며 화합하여 살아가는 것이다. 온유는 십자가의 사랑을 먼저 경험한 내가 그 사랑을 증거할 대상인 내 주위 사람들을 포용하고 이해해주며 살아가는 것이다.
끝으로 예수님은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볍다고 말씀하신다. 예수님께서 지신 멍에와 짐은 바로 십자가이다. 예수님은 우리가 혼자 십자가를 지고 힘들어하도록 내버려두시지 않으시고 예수님의 멍에, 예수님의 짐인 십자가를 우리와 함께 져 주신다. 우리가 예수님의 십자가를 함께 질 때, 예수님께서는 우리 삶의 모든 짐을 대신 져 주신다.
지금 외로운가? 지쳐서 쓰러질 것 같은가? 우리를 향한 아가페 사랑이 있는 예수님의 십자가 아래로 오라. 우리가 어떤 모습이든 받아주시고 쉬게 하시는 예수님의 품으로 안겨보라.

오늘의 기도
삶 가운데 지친 우리를 부르시는 주님의 음성에 감사드립니다. 있는 모습 그대로 사랑해 주시고 받아주시는 주님을 의지하여 오늘도 승리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홍융희 목사
성민교회


수-순종이 지혜다
본문 : 마 7:24~27
찬송 : 372장

목수였던 예수님은 집 짓는 것에 대해 잘 알고 계셨다. 집을 짓는 데 있어서 재료보다 디자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집의 기초이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기초를 어디에 놓느냐에 따라 집의 내구성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아무리 좋은 재료로 만들고, 훌륭한 디자인으로 설계되었다 할지라도 모래 위에 지은 집은 무너져 내릴 수 밖에 없다. 믿음도 기초가 중요하다. 믿음의 기초는 어디에 두어야 하는가?
예수님의 관점은 눈에 보이는 말에, 겉으로 보이는 신앙에 관심을 가지지 않으신다. 말, 겉모습을 보지 않으시고, 삶의 기초인 순종의 모습을 보신다. 그렇기에 하나님께서 관심을 가지시는 말씀대로 행하는 순종에 믿음의 기초를 두어야 한다.
본문에서 예수님께서는 말씀대로 행하는 순종의 사람이 곧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말씀하신다. 지혜로운 성도는 입술로 믿음을 건축하지 않고, 순종으로 건축하는 것이다. 즉 순종이 지혜이고, 불순종이 어리석음이다. 세상의 지혜와 하늘의 지혜는 충돌한다. 세상의 지혜에 비춰보면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어리석은 것처럼 보인다. 하나님이 어리석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명령이 어리석어 보인다. "약할 때 강하다",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왼 뺨을 때리면 오른뺨도 돌려 대라."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산 위에 배를 만들라고 명령하실 때에, 노아는 그 말씀에 순종하여 산 위에서 배를 만들었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참으로 어리석게 보였을 것이다. 그러나 120년 뒤의 날씨를 아시고, 산 위까지 물에 잠길 것을 아시는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명령하신 것이었기에 순종했던 노아의 가족 외에는 구원받은 이가 없었다.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님도 죽기까지 복종하심으로 순종의 본을 보이셨다. "그가 아들이시면서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셨은즉 자기에게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히 5:8~9) 순종은 시키는대로 하는 복종이다. 그러나 인간에게는 자기 마음대로 살려고 하는 본성이 있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자기 중심적인 죄악의 본성 때문에 순종하라는 말씀이 이해되지 않고, 받아들이기 힘들지만, 말씀대로 지키는 것이 지혜이고, 시키는대로 하는 것이 지혜이다. 그렇기에 순종은 배우는 것이다. 자기부인을 통한 후천적 성품이다. 또한 순종은 내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님께서 주시는 하늘의 힘으로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시키는대로 하는 것이 지혜이다. 모든 것에 앞서 가시고, 시공간을 초월하시는 하나님의 지혜가 담겨져 있고, 이 모든 명령들은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에 기초하고 있기에 순종하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이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을 경외하여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지혜입니다. 예수님처럼 순종함을 배워 지혜롭게 살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광선 목사
마천세계로교회


목-예수님의 감사
본문 : 마 26:26~28
찬송 : 450장

우리는 많은 것을 갖고 풍족하게 살고 있다. 그런데도 늘 부족함을 느끼고, 만족할 줄 모르고 불평하며, 목말라 한다. 우리의 목마름은 우리의 생수이신 예수님보다는 세상 것들에 대한 것인 경우가 많다. 목마른 삶의 원인은 무엇인가? 많은 사람들이 상대적 박탈감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남과 비교하고 끝없이 욕망을 키워가는 삶은 그리스도인의 삶이라고 할 수 없다. 하나님 앞에 사는 우리에게는 감사하는 삶이 있다. 감사는 삶을 긍정적으로 바꾸고, 나에게 주어진 것을 나눌 때 커진다. 언제, 어떻게 감사해야 할지에 대해 오늘 본문에 나오는 예수님의 감사가 답이다.
첫째, 예수님은 오병이어 앞에서 감사했다. 예수님은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하늘을 우러러 감사기도 하시고 떡을 떼셨다.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 뿐이었지만 축사하셨다. 감사하셨다는 말씀이다. 감사란 꽉 채워져서 하는 것이 아니라 부족한 것을 채우는 주문인 것이다. 예수님의 감사는 모든 사람들을 배부르게 하고 만족을 주는 완전함을 이루는 감사였다. 채워져서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부족함을 감사로 채우는 것이다.
둘째, 예수님은 나사로의 무덤 앞에서 감사했다. 예수님의 감사는 기도응답 후에 오는 감사가 아니라 기도한 것을 이루실 줄 믿는 감사였다. 예수님은 나사로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나사로의 무덤가에서 돌을 옮겨 놓으시고 눈을 들어 우러러 보며,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라고 기도한다. 나사로가 살아난 후에 감사한 것이 아니라 나사로가 죽은 것은 그대로인데도 그 상황을 믿음으로 받고 감사한 것이다. 다니엘은 왕 외의 다른 신이나 사람에게 기도하면 사자굴에 던진다는 조서에 왕의 도장이 찍힌 것을 알고도 하루에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하나님께 감사했다. 다니엘의 감사 또한 자신을 구해주실 것을 믿는 감사가 아니라 지금 상황에서도 삶 자체에 대한 감사를 하나님께 드린 것이다. 내일 죽을지라도 오늘 기도할 수 있음에 감사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감사. 예수님의 감사와 다니엘의 감사가 바로 우리가 드릴 감사이다.
셋째 예수님은 자신의 생명을 주면서 감사했다. 예수님께서 자기 자신을 내어주시면서 오히려 감사하신 것은 예수님의 고난이 바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오셨다. 자신의 생명을 내어 주심으로 그 일을 다 이룰 수 있기 때문에 예수님은 생명을 내어 주시면서 감사하신 것이다. 우리도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태어났고 생명을 받았다. 우리 역시 이 땅에 하나님의 영광과 많은 사람의 복됨을 위해 왔으니 이것을 이루기 위해 나 자신을 내어 주면서, 봉사하면서 감사하자. 전도하면서 감사하자.

오늘의 기도
부족함을 감사하며, 주어진 상황에서 감사하고, 나 자신을 내어주고 봉사하며 감사하는 삶을 살기를 원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노행수 목사
주평교회


금-믿음의 기도
본문 : 막 11:20~24
찬송 : 364장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예루살렘 성으로 들어오실 때 시장하셔서 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열매를 찾으셨다. 그러나 잎사귀밖에 없는 것을 보시고 "이제부터 영원토록 사람이 네게서 열매를 따먹지 못하리라"고 말씀하셨다.
이튿날 다시 그 곳을 지나갈 때 제자들은 뿌리채 마른 무화과나무를 보고 베드로가 "랍비여 보소서 저주하신 무화과나무가 말랐나이다"라고 말씀드렸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져지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루어 질줄 믿고 마음에 의심하지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고 하셨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이런 기적을 체험할 수 있을까요?
첫째로, 믿어야 한다. 성경은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히 11:1)"라고 말한다.
현실 가능한 것을 바라고 보는 것은 믿음이 아니다.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이지 않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고 방주를 준비했다. 아브라함도 갈 바를 알지 못하였으나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했다. 이와 같이 현실적으로 도저히 불가능해 보이는 것을 이미 이루어진 것같이 믿고 바라볼 때 불가능이 변하는 기적의 발판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둘째로, 기도하고 구해야 한다. 큰 믿음이 있어도 구하지 않으면 아무런 역사가 일어나지 않는다.
성경은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하기 때문이요(약 4:2)"라고 말씀하고 있다. 수로보니게 여인이 예수님 앞에 나와 귀신들린 딸을 고쳐 달라고 했을 때 예수님께서는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수로보니게 여인은 포기하지 않고 "주여 옳소이다마는 상아래 개들도 아이들의 먹던 부스러기를 먹나이다"라고 대답했다. 이처럼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간절히 구하는 기도에 감동하신 주님께서 그 즉시 응답해 주셨다. 이와 같이 간절히 구하는 기도는 믿음의 위력을 나타낸다.
셋째로, 의심치 말아야 한다. 의심은 누구에게나 일어나지만 의심 속에 빠지느냐, 아니면 이기느냐에 따라 기도의 응답이 좌우된다.
바다 위를 걷던 베드로가 의심함으로 빠졌을 때 예수님께서는 "믿음이 작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마 14:31)"라고 하셨다. 성경은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두마음을 품어 모든 이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구한 것은 이미 받은 줄로 믿고 의심 없이 나갈 때 위대한 기적을 체험하는 창조적인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오늘의 기도
귀한 것을 주시기를 기뻐하시는 하나님, 필요에 따라 구할 때 구한 것은 받은 줄로 믿고, 의심치 않는 담대한 믿음을 주시고,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하는 신앙생활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탁영구 목사
용강교회


토-천국은 인자
본문 : 마 13:24~30,36~43
찬송 : 205장

천국은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린 사람과 같다. 자기밭에 좋은 씨를 뿌렸다. 그런데 원수가 와서 가라지를 덧뿌리고 갔더니 곡식과 가라지는 함께 자라고 추수 때까지 두라고 말씀하신다. 비유로 하신 말씀에는 해석이 꼭 필요하다.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린 사람은 인자라고 말씀하시며 밭은 세상이요, 좋은 씨는 천국의 아들들이요, 원수는 마귀요, 가라지는 악한 자의 아들들이요, 추수 때는 세상끝이다 라는 것이다. 농부가 좋은 씨를 왜 뿌릴까? 수확을 얻기 위함이다. 좋은씨는 천국의 아들들이라고 하셨으니 하나님의 아들들이 많아지게 하기 위해서 좋은 씨를 뿌리신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흙으로 아담을 만드시고 생기를 넣으시므로 생령이 되게 하시고 생육하고 번성하여 충만하라라고 하신다. 하나님의 아들들이 많아지기를 원하신 것이다. 그러나 사단은 하나님의 사람이 많아지는 것을 원치 않고 악한 자의 아들들이 많아지기를 원해서 하나님의 아들들이 있는 곳에 악한 자의 아들들을 심어서 함께 자라게 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마지막 추수 때에는 구별된다는 것이다.
이 말씀을 다시 생각해 보자. 좋은 씨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좋은 밭에 하나님의 말씀이 있는 하나님의 아들들의 마음에 사단이 가라지를 뿌리고 간다. 사단의 말이 하나님이 가꾸시는 하나님의 아들들의 마음 가운데 뿌려지는 것이다. 하와에게 사단이 하나님의 말씀과 반대되게 "죽지 않는다"라고 말해서 그 말을 따라가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게 한 것과 같다.
이 세상에 육신을 가지고 살아가는 성도들에게 하나님은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게 하려고 좋은 씨, 하나님의 말씀을 뿌려서 아들들로 살아가게 하시는데 사단은 끊임없이 우는 사자와도 같이 우리를 넘어지게 하려고 세상의 보이는 것이 더 좋아보이게 속삭인다는 것이다. 바울사도는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본다(롬 7:23)"라고 고백한다. 결국 우리는 이 육신을 벗기 전까지는 원치 않아도 하나님의 말씀과 사단의 유혹하는 말이 공존함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자는 하나님의 사람이다. "양은 목자의 음성을 안다"라고 하신 주님의 말씀을 기억하며, 그 음성을 따라 선한 삶을 살다가 심판대 앞에 섰을 때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지는 천국으로 스스로 가게 된다. 그러나 사단의 말에 미혹된 자는 사단을 좇아 어둠으로 간다. 좋은 씨를 뿌리시는 주님이 계신 곳 바로 그곳이 천국입니다. 바로 우리 마음이 천국 되어 살아가는 것이지요. 근데 순간순간 사단으로 인해 지옥이 되기도 한다는 것을 말씀하시고 계신다. 깨어 마음을 잘 지키자.

오늘의 기도
주어진 이 하루 우리 마음 보이는 데로 좇아가지 아니하게 하시고 보이지 않지만 언제나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잘 지켜 천국으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배순옥 목사
신산교회


이경남 기자  knlee@pckworld.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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