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예배]10월 9~14일

한국기독공보l승인2017.09.29l3110호 l조회수 : 3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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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알곡이냐, 쭉정이냐?
본문 : 마 3:10~12
찬송 : 321장

세례요한은 알곡과 쭉정이를 말한다. 마지막날 하나님께서 우리를 심판하실 때, 알곡이냐 쭉정이냐 심판하실 것이다. 알곡신앙이란 무엇인가?
첫째, 알곡신앙은 생명이 있다. 씨앗의 가치는 생명력이다. 알곡과 쭉정이의 차이는 생명의 유무이다. 우리의 신앙도 참된 생명이 있는지가 중요하다.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가 버리운 자니라."
그러므로 우리의 심령 속에 예수님의 생명이 살아있어야 한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 너무나 단순한 진리로 믿는 자는 영생을 얻는다. 그러나 진정한 새 생명의 역사는 내가 죽어야 예수가 산다. 나는 죽고 예수 그리스도가 심령 속에 살아있는 알곡 성도가 되시기 바란다.
둘째, 알곡신앙은 성장한다.
"마치 사람이 자기 채소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으니 자라 나무가 되어 공중의 새들이 그 가지에 깃들였느니라"고 했다.
아무리 작은 씨앗이라도 살아있는 씨앗은 발아하여 성장한다. 믿음의 성장이 이루어져야 한다. 장성한 성도들이 되시기 바란다. 그런데 우리를 자라게 하시는 분은 아버지 하나님이다.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은 자라나게 하셨나니 그런즉 심는 이나 물 주는 이는 아무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나게 하시는 하나님뿐이니라."
우리의 믿음의 성장은 하나님의 손에 달려있다.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라고 말씀하신다. 그러므로 우리의 성장의 목표는 예수 그리스도이다. 겸손하여 죽기까지 복종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닮는 알곡신앙이 되시기 바란다.
셋째, 알곡신앙은 많은 열매를 맺는다.
씨 뿌리는 비유에는 좋은 땅에 떨어진 씨앗이 백 배, 육십 배, 삼십 배의 열매를 맺는다고 했다. 모든 열매는 일정한 기간을 기다리는 자에게 열매의 기쁨을 안겨준다. 본문에 쭉정이는 불에 던져 사른다고 말씀하셨다.
영국의 한 천문학자는 거대한 해성X라 불리우는 니비루가 2017년 9월 23일에 지구에 오는데 자기장 때문에 지구에 커다란 지진과 쓰나미가 일어난다고 예고했다. 지구의 종말은 성경의 약속대로 온다. 세계 도처에서 지진과 쓰나미와 태풍과 해성의 소식이 결코 우연은 아님을 기억하자.

오늘의 기도
우리를 천국백성으로 불러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우리로 알곡되게 하옵소서! 살아있는 신앙, 성장하는 신앙, 열매맺는 신앙을 주시고, 천국에서 면류관 받고 상급 받으며 주님과 영생 복락을 누리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류보은 목사
광천교회


화-거듭나야 한다
본문 : 요 3:1~8
찬송 : 325장

바리새인이며, 유대관원이었던 니고데모가 밤중에 예수님을 찾아왔다.
예수님은 니고데모의 영혼의 갈급함을 알고 계셨다.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이것이 니고데모가 들어야 할 말씀이었다. 니고데모는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는 관원이었지만 그는 거듭나지 못했기 때문에 하나님 나라를 알 수 없었다. 그의 심령은 허전하고 갈급했다. 그가 진정으로 거듭난 사람이었다면 예수님이 단순히 한 랍비가 아니라 메시아임을 알 수 있었을 것이다.
평생을 기도하면서 메시아가 오시기를 기다렸던 시므온과 안나는 아기예수를 보고서도 그분이 메시아임을 알아보았다.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여기서 물은 말씀을 뜻한다.
"너희가 거듭난 것은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살아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었느니라(벧전 2:23)." 
우리의 영은 말씀과 성령으로 새롭게 태어난다. 다른 어떤 것으로도 인간의 영은 거듭날 수가 없다.
육적인 사람이 열심히 설교를 해도 영적으로 거듭나게 할 수 없다. 영으로 거듭난 사람만이 다른 사람의 영을 거듭나게 할 수 있다. 거듭난 사람의 말 속에는 예수의 생명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을 향하여,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면 둘다 구덩이에 빠지지 않겠느냐 하고 책망하셨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율법에 전문인이었지만 영적으로 소경이었기 때문에 영혼을 살리는 일을 하지 못했다. 지식적으로만 말씀을 해석하고 전달한 것이다. 따라서 말씀과 성령은 항상 함께 가야 한다.
오늘 교회의 두 기둥은 말씀과 성령이다. 솔로몬성전의 두 기둥인 보아스와 야긴처럼 오늘 모든 교회의 기둥은 말씀과 성령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인간적인 것들은 배제되어야 한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들었을 때 그 뱀을 쳐다본 사람들은 뱀에게 물린 독이 다 빠져나가 살아났다.
우리가 말씀과 성령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한다.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어야 한다.
이것이 니고데모가 들어야 할 진리의 말씀이었다.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오늘의 기도
우리에게 영생을 주시기 위하여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 감사합니다. 우리에게 참된 믿음을 주셔서 말씀과 성령으로 거듭나게 하시고, 우리 모두 천국백성으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이상란 목사
중리교회


수-우리의 마음을 지키자
본문 : 잠 4:20~27
찬송 : 455장

월트 디즈니사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기업이다. 많은 기업들이 밴치마킹하기 위해 방문하는데, 한번은 경쟁회사의 사원들을 초빙하여 그동안의 경영노하우를 숨김없이 소개했다. 한 사람이 물었다. "이렇게 회사의 아이디어와 노하우를 다 공개해도 되는 것입니까?" 그때 월트 디즈니사의 한 직원이 의미심장한 대답을 했다.
"아이디어나 이런 연구시설은 모방할 수 있지만, 아이들을 사랑하는 월트 디즈니씨의 열정은 모방할 수 없습니다." 외형은 카피할 수 있으나 마음의 열정은 카피할 수 없다는 뜻이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중요한 것은 인간의 눈으로 확인할 수 없는 것이 더 많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 중에 소중한 것이 많지만, 그 중에 가장 소중한 것이 마음이다. 왜냐하면 사람은 마음에 생각하는 대로 살아가고 행동하기 때문이다. 독일의 시인 실러는 "당신의 가슴 속에는 당신의 운명의 볕이 있다"고 했고, 로마의 한 작가는 "현명한 자는 자기 마음의 주인이되고 미련한 자는 자기 마음의 노예가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우리들의 마음 속에는 두 가지의 얼굴이 있다. 하나는, 건강한 마음이다. 하나님의 말씀과 경건의 훈련을 통해 아름답게 가꾸어진 마음이요, 긍정적이고 또 잘 통제된 마음이다. 이 건강한 마음에서 창조적인 생각과 풍성한 생명의 열매들을 맺게 된다. 다른 하나는 병든 마음이다. 이 살벌한 경쟁 속에서 따뜻한 사랑을 경험하지 못한 마음이요, 부정적이고 파괴적인 마음이다. 이 병든 마음속에서 미움과 시기와 질투가 자라고, 결국 한 사람의 삶을 고립시키고 황폐한 삶을 살게 한다. 이런 이유에서 인간의 마음은 생명의 근원인 동시에 부패의 원천이기도 하다. 마음으로부터 악한 생각, 추한 생각, 파괴적인 생각이 나온다. 보이는 것은 보이지 않는 마음에서부터 나온다. 천국도 지옥도 마음에서부터 시작된다. 사람은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하고, 마음에 가득한 것을 행동으로 옮긴다. 마음이란 너무 차가우면 냉정해지고, 너무 뜨거우면 분별력을 상실하게 된다. 그러므로 지혜로운 사람은 마음의 온도를 조절할 수 있어야 한다.
성경은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고 했다. 우리가 마음을 잘 지켜서 하나님과 교제할 때 풍성한 생명을 누릴 수 있지만, 마음이 더러워지면 하나님과의 대화가 단절되고, 결국 영적인 고아로 불행한 삶을 살 수밖에 없다. 우리의 마음 속에 성경말씀으로 가득 채울 때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살게 된다. 오늘 하루도 우리의 마음에 하나님의 말씀으로 파수꾼을 세워 생명력 넘치는 삶의 주인공이 되시기를 바란다.

오늘의 기도
우리에게 새 날을 주셔서 하나님과 이웃을 섬길 기회를 주시니 감사합니다. 성령님께서 내 마음의 주인되셔서 선한 마음을 품게 하시고, 풍성한 생명누리며, 하나님의 사랑을 이웃에게 전하는 복된 하루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기현 목사
방초교회


목-보리떡 같은 인생
본문 : 요 6:1~13
찬송 : 549장

본문은 예수님께서 오병이어의 기적을 베푸신 것을 소개하고 있다.
예수님께서 기도하시기 위해 한적한 곳을 찾으셨을 때 많은 무리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 모여들었다. 그런데 해가 저물었다. 모든 사람이 시장하게 되어 먹을 것이 필요했다. 영혼이 주리고 목마른 지금의 인생들과 유사하다. 이들을 향하여 우리가 해야 할 일을 주님께서 명령하신다. 내게 주신 명령이 무엇일까?
첫째로, 먹을 것을 나누어 주라는 것이다. 본문의 사건은 4복음서에 다 기록되어 있는데 똑같이 "너희 먹을 것을 주어라"고 기록하고 있다. 예수님의 이러한 말씀에 제자들의 반응은 다양했다. 그러나 만일 이런 세상적인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다면 모세는 홍해를 건너지 못했을 것이며, 다윗은 골리앗을 넘어뜨리지 못했을 것이다. 지금도 하나님 없는 인생은 주려 있다. 그들에게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고 당부하시며 할 수 있는 방법과 성령의 권세도 주시며 말씀의 능력도 주신다. 하나님의 인생은 빼앗는 인생이 아니라 주는 인생이다. 소망이 낙엽처럼 떨어진 이에게 소망을 주어야 하고, 피 묻은 십자가의 사랑, 사랑의 복음, 생명의 복음을 주어야 한다. 헐벗고 주린 자에게 양식을 주는 것이 그리스도인들의 할 일이다.
둘째로, 그것을 내게 가져오라고 하셨다. 한 소년이 가진 오병이어는 인생이 가진 초라한 것을 말하며 신령한 의미에서 우리는 보리떡 인생이다. 이 보리떡 인생 그대로를 주님 앞에 드려야 한다는 것이다. 주님 앞에 드려지지 않은 모습은 여전히 죄인이요, 넘어질 수밖에 없는 사망의 몸이다. 그런데 주님은 그것을 "내게 가져오라"고 말씀하신다. 모세가 자기의 힘으로는 이스라엘 60만 대군을 인도해 낼 수 없었지만 하나님이 함께 하실 때 그 일이 가능했다. 모세가 들고 있던 지팡이가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이시며 하나님이 지팡이를 사용하신 것이다. 우리 인생이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그릇이 된다면 귀히 쓰임을 받을 수 있다.
셋째로, "버리는 것이 없게 하라"이다. 예수님은 본문 12절에서 먹고 남은 조각을 거두고 버리는 것이 없게 하라고 하셨으며 그것은 12바구니에 찼더라고 했다. 성경에서 12라는 숫자는 복된 수요, 아름다운 수이다. 우리의 비어 있는 열두 바구니를 채워야 되지 않을까? 사랑의 바구니 그리고 섬김의 바구니를 채워야 한다. 또한 버리는 것이 없게 하라고 말씀하심으로 축복에 대한 귀중함을 알게 하신다. 성도마다 갖고 있는 달란트는 주님이 은혜로 주심을 기억하고 땅에 묻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나의 오다이어를 주님 앞에 드릴 때 주님의 축복이 임한다. 내 지식이 적고 소유가 빈약하다고 낙망할 것이 아니라 나의 한 달란트를 주님께 드리면 오병이어의 기적을 낳는다.

오늘의 기도
부족하지만 주님께 드리오니 주님의 능력을 더하사 주님의 영광 드러내는 데 사용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안승군 목사
덕신제일교회


금-내 삶의 기록
본문 : 계20:12
찬송 : 325장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은, 말씀이신 하나님께서 당신의 말씀을 인간에게 주셨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말씀을 인간에게 사라지지 않는 문자, 기록으로 주시기 위해서 무려 1500년에 걸쳐서 약 40명의 사람을 동원하셨다. 하나님의 그 사랑 덕분에 우리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말씀을 눈으로 볼 수 있게 되었고, 하나님의 말씀을 지니고 다니면서 언제 어디에서나 하나님의 말씀을 힘입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 수 있게 되었다.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해서 성경 속에 하나님에 대한 말씀만 있는 것은 아니다. 성경 속에는 이루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수없이 많은 사람들의 삶이 이야기로 기록되어 있다. 하나님께서 그 개개인의 삶을 통해 어떻게 역사하시고 섭리하셨는지를 우리에게 보여주시기 위함이다. 요한사도가 종말에 대해서 요한계시록 20장 12절에 이렇게 증언한다. "나는 또 죽은 사람들이 큰 자나 작은 자나 할 것 없이 다 그 보좌 앞에 서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책들을 펴놓고 또 다른 책 하나를 펴 놓았는데 그것은 생명의 책이었습니다. 죽은 사람들은 그 책에 기록되어 있는 대로 자기들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삶을 하나님의 방법으로 기록하고 계신다. 그 기록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설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셈하시고 우리에게 상 주시는 근거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그 누구도 보지 않는 곳에서도 우리 모두 참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이 세상 사람들로부터 그 어떤 보상이 없다 할지라도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선행을 거두지 말아야 할 이유도 여기에 있다. 우리 각자의 삶을 하나님의 방법으로 하나님 앞에 반드시 기록해 주신다. 유한한 인간에게 자신의 삶이 영원하신 하나님 앞에 영원한 상급으로 기록된다는 것보다 더 큰 상급은 있을 수 없다. 그래서 오늘도 우리는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상황이 어떠하든 상관없이 소망 속에서 그리스도의 길을 쫓을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셔서 추악한 죄인인 우리에게 거룩하신 말씀을 주셨다. 그래서 우리는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통해 삼위일체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의 구원을 얻고, 하나님의 사랑을 확인한다. 그뿐 아니라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수많은 믿음의 선진들을 만나게 된다. 그들은 거의 대부분 가난하고 배운 것 없는 무명의 인물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예외 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자신들의 삶으로 기록했고,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신비로운 방법으로 그들의 삶을 영원한 당신의 말씀으로 기록되게 하셨다. 그 하나님을 믿기에 사람이 보던 보지 않든 오직 믿음의 길을 걷는 용기 있는 그리스도인이 되어 내 삶의 행적을 통해 이루고자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펼쳐나갈 수 있는 도구가 돼야 한다. 오늘도 나의 삶이 하나님의 기록에 남겨진다고 생각하면 함부로 살 수 없을 것이다.

오늘의 기도
오늘의 나를 바라보며 어떤 상황에 처해있든 소망 중에 주님의 길을 쫓음으로 우리의 삶이 하나님의 영원한 상급으로 기록되어지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연규용 목사
비홍교회


토-주님이 주시는 쉼의 삶
본문 : 마 11:25~30
찬송 : 412장

2012년 기준 우리나라 근로자 1인당 연간 근로시간은 2092시간(임금근로자 기준)으로, OECD 평균을 420시간 초과했다. OECD 평균은 1705시간이다. 한국의 시간당 생산성은 32.3달러로 미국(67.3달러)의 48%에 그쳤다. 근로시간은 많지만 생산성은 높지 못한 것이다. 실제 우리나라 근로자 10명 중 4명은 하루 평균 1시간 이상 야근을 하며, 10명 중 3명은 휴가의 절반도 쓰지 못하는 등 과도한 업무로 인한 휴식의 부족으로 효율성과 집중력이 떨어지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이 시대의 많은 사람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안식이다. 휴식과 안식의 차이는 무엇인가? 한 마디로 휴식은 잠시 쉬는 것이고, 안식은 다시금 충전하는 것이다. 안식에서 중요한 것은 안식의 자리이다. 하나님께서는 아들이신 예수님께 모든 것을 주심으로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 아버지를 알게 된다고 말씀하시면서 이 땅에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을 향해 초청하신다.
첫째, 누구든지 다 내게로 오라고 초청하신다. 오늘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은 수고의 무거운 짐을 지고 있다. 그래서 참 안식이 필요하다. 우리 인생에는 수고와 짐이 있다. 인생의 무거운 죄의 짐이 있다. 죄로 인한 수고가 인생을 힘들게 한다. 죄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인간에게는 참 쉼이 있을 수 없다. 수고는 일이 목적이 되어서 일에 억압되고 짓눌려 살아가는 것이다. 본문에서 말하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은 스스로 많은 일들을 찾아 계속해서 피곤에 지치고, 무거운 짐을 진채 계속해서 지쳐있는 자들을 뜻한다.
둘째,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말씀하신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으로 인해 고통 중에 있거나, 지쳐 있거나, 피곤한 상태에 있는 자들이 주님께 가면 주님께서는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말씀하신다. 휴식이 아닌 안식을 주시겠다는 것이다. 인생의 구세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와의 인격적인 만남과 교제를 통해 전인격적인 쉼이 주어진다. 이 쉼 즉 안식을 통해 우리의 삶은 힘과 에너지를 재충전하게 된다.
셋째, 예수님께 배워야 한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을 향해 다 내게로 오라고 초청하시면서 예수님께 와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한 예수님의 멍에를 메고 참 쉼을 얻으라고 말씀하신다. 온유하고 겸손하다는 말은 화를 내지 않고 온순하다는 뜻보다는 종으로서 타인을 섬기며 고난을 통해서 타인의 아픔을 안다는 의미다. 멍에는 짐을 잘 지기 위한 도구이다. 멍에를 메라는 것은 짐을 버리라는 말이 아니라 짐을 잘 지라는 의미다. 예수님의 멍에는 사랑이고, 행복이고, 쉼이고, 안식이고, 평안이다. 그래서 가볍고 쉬운 멍에다. 어거스틴은 예수님의 멍에를 새의 깃털에 비유했다. 예수님께 나와 예수님의 멍에를 메고 예수님을 배워야 참 쉼과 기쁨과 평안과 구원과 영생과 행복이 있다.

오늘의 기도
주님께서 주시는 쉼과 평안을 누리며, 주신 직분과 사명을 잘 감당하는 삶을 살아가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최경자 목사
제주생명나무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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