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예배]11월 13~18일

한국기독공보l승인2017.11.10l3114호 l조회수 : 21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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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아가라
본문 : 히 4:16
찬송 : 539장

시간 관리에 있어서 귀한 깨우침을 주는 책 '늘 급한 일로 쫓기는 삶'이라는 책에서 저자 찰스 험멜은 이렇게 말한다. "많은 사람들이 우선순위에 따라 살지 않고 급한 일에 쫓겨 마땅히 해야 할 일은 하지 못하고, 하지 말았어야 할 일에만 쫓겨 다닌다."
바쁘게 살아가는 오늘의 그리스도인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 너무 바빠서 잠시 시간을 내어 주님과 만나 주님이 위로부터 부어주시는 은혜와 능력과 지혜로 채움 받는 시간을 내지 못한다. 매일 이른 아침부터 저녁까지 바쁘게 자신의 힘과 노력으로 살아가기에 급급하다. 그리스도인이란 어떤 사람인가? 내 힘과 열심과 지혜로는 결코 구원받을 수 없음을 믿는 자이다. '때를 따라 돕는 은혜' 즉 시시로 늘 언제나 하나님이 도우시는 은혜가 필요함을 아는 자들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매일 매일의 삶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덧입어 구원의 삶을 살아야 한다. 하루도 하나님의 은혜가 없이는 살 수 없는 자임을 안다면 날마다 하나님의 은혜로 부음받는 시간들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오늘 본문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하나님이 위로부터 부어주시는 은혜의 보좌는 기도의 자리이다. 새벽에 주님의 전으로 나아가 무릎 꿇고 기도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자리이다. 혹은 골방에서 주님 앞에서 말씀을 묵상하고 엎드려 기도하면서 하나님이 위로부터 내려 주시는 은혜와 능력과 지혜로 채움 받는 자리이다.
많은 사람들이 너무 바빠서 그럴 시간이 없다고 말한다. 많은 일들, 사람들과의 만남과 각종 행사와 취미 생활 이런 것들로 분주하다. 이런 분주함에 쫓겨 정말 중요한 것, 하나님의 은혜로 날마다 채움 받는 것을 점점 멀리한다. 그리하여 은혜없이 텅 빈 가슴으로 살아가니 세상 속에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구별된 모습을 보이지 못하고 살아간다.
예수님은 공생애 기간 동안 누구보다도 바쁘게 시간을 보내셨다.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가르치고 전도하고 치유하셨다. 그래도 예수님은 새벽 밝기 전에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셨다.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소홀히 하지 않으셨다. 그 시간을 통하여 성부 하나님과 교제하며 성부 하나님이 부어주시는 은혜로 채움 받고 하루를 계획하며 은혜의 시간을 가지셨다. 하나님의 은혜 없이 살아가려는 것이 오늘의 그리스도인들의 비극이다. 하나님이 날마다 부어주시는 은혜가 없이는 하루도 살 수 없다. 이것을 알고 날마다 은혜가 부어지는 자리,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대가 지불을 기꺼이 할 때 하나님은 놀라운 은혜로 부어 주실 것이다. 날마다 담대히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아가면 우리 하나님은 때마다 일마다 풍성한 은혜를 부어 주신다.

오늘의 기도
주님 바쁜 일에 쫓기지 않고 날마다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가 주님이 부어 주시는 은혜로 채워져 날마다 승리하는 삶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주철희 목사
제자교회


화-참된 예배자
본문 : 사 1:10~20
찬송 : 425장

예배는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고 그분의 백성됨을 고백하는 시간이다. 그런데 우리는 예배를 드리기만 하면, 다시 말해 정해진 시간과 공간 안에만 있으면 예배가 드려진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예배는 형식이 아니다. 시간과 공간 속에 있다고 해서 성립되어지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진정으로 원하시는 예배가 어떤 것인지를 살펴보고, 그것을 우리의 삶에 적용할 수 있어야 한다.
첫째, 성결한 삶으로 예배해야 한다. 하나님은 형식적인 예배자들을 향해 이렇게 말씀하신다.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이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냐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 하나님 앞에 우리의 모습을 보이는 것을 예배라고 할 수는 없다. 하나님은 겉모습이 아닌 속모습, 우리의 정결한 삶을 원하신다. 참된 예배자는 하나님 앞에 자신을 돌아보고, 죄를 회개하고, 마음을 하나님께로 집중한다. 예수님은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는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사람이라고 말씀하셨다(요 4:23).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 앞에 성결한 마음을 갖추어야 한다.
그리고 성도로서 거룩한 삶과는 거리가 멀었던 모습들이 있다면 주님께 자백하고 그 죄를 씻고 하나님께 나아가야 한다. 뿐만 아니라 그것이 우리의 삶에 실제적인 행동으로 나타나야 한다. 형제와 다툼이 있었다면 내가 먼저 화해하고 이웃과 갈등을 겪었다면 내가 먼저 용서를 구하며, 악한 길에서 돌이켜야 한다. 예배는 단순한 종교적 의식이 아니다. 주일마다 그저 형식적으로 예배에 참석한다면 성전의 마당만 밟고 가는 것과 다르지 않다.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는 참된 예배자가 되라.
둘째, 선행의 삶으로 예배해야 한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영적 제물은 선한 삶이다. 하나님은 성도가 살아야 할 삶의 모습을 이렇게 말씀하신다. "선행을 배우며 정의를 구하며 학대받는 자를 도와주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며 과부를 위하여 변호하라." 하나님은 제물도 중요하게 보시지만, 그 제물이 담긴 그릇, 즉 제물을 드리는 사람의 삶을 더 중요하게 보신다. 그러므로 성도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선행을 적극적으로 실천해야 한다. 주님의 이름으로 약한 자를 후원하고 위로하며 정의를 실천하고 정직한 삶을 살아야 한다. 예배는 단순히 많은 시간과 많은 제물을 드리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명하신 말씀을 삶에서 실천하며, 하나님의 뜻을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 그 사람이 하나님이 찾으시는 참된 예배자이다.
참된 예배는 하나님 앞에 드리는 성결한 삶과 선행의 삶이다. 스스로 깨끗하게 하여 성결한 영으로 주님 앞에 나아가고, 선행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드러내라. 하나님이 원하시는 예배를 드리는 자가 하나님이 허락하신 땅에서 아름다운 소산을 누릴 것이다.

오늘의 기도
형식적인 예배로 내 의무를 다했다는 착각에서 벗어나게 하소서. 성결한 삶과 선행의 삶으로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는 참된 예배자가 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성기 목사
성계교회


수-동굴에서 만난 하나님
본문 : 시 57:1~11
찬송 : 412장

무명 목동이던 다윗은 골리앗을 죽임으로 민족의 영웅이 된다. 이후 사울의 신임을 얻을 뿐 아니라 백성들의 인기를 독차지한다. 그러나 인기는 사울의 시기심과 분노를 같이 데려왔다. 시기심에 불타는 사울의 공격을 피해 다윗은 적진인 블레셋으로 피신한다. 그곳에서 블레셋 왕에게 잡혀갔으나 미치광이 행세로 겨우 위기를 모면한다.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다윗이 다시 숨은 곳이 아둘람 동굴이다.
아둘람 동굴은 다윗에게 어떤 의미일까? 다시 사울의 위협 앞에 돌아왔다는 의미이다. 세상 어디서도 안전한 곳을 찾지 못했다는 의미이다. 더 이상 나쁠 수 없는 최악의 상황을 의미한다. 다윗은 어둡고 습한 동굴 속에서 여전히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의지한다.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동굴의 현실을 여호와께 의탁한다. 2~3절에서 다윗은 하나님에 대하여 지존하시며 나를 구원하실 분으로 고백한다. 문제가 아무리 커도 전능하신 하나님은 나를 구원하실 수 있다는 믿음으로 구하고 있다.
 성도는 세상 속에서 원치 않는 오해를 받을 수 있다. 위협 속에 던져질 수 있다. 그때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은 지존하신 하나님이 나를 긍휼히 여기심을 믿고 믿음의 끈을 붙잡아야 한다.
하나님은 다윗에게 어떤 응답을 하셨을까? 첫째, 새로운 마음을 주신다. 두려움, 외로움, 절망의 상태에서 하나님을 찾은 다윗에게 평안을 주신다. 상황은 동일했다. 여전히 동굴이고, 사울의 위협은 멈추지 않았다. 그러나 주의 날개가 자신을 품고 있음을 경험하게 된다. 우리는 위기에 빠지면 상황의 변화를 기대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시선을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을 보게 한다. 아둘람 동굴 같은 상황 속에 있는가? 여전히 함께하는 하나님을 바라보라. 그러면 아둘람 동굴은 오히려 하나님의 품 안이 될 것이다. 둘째, 공동체를 만들어 주셨다. 본문의 내용을 자세히 설명하고 있는 사무엘상 22장을 보면 아둘람 굴에 있는 다윗에게 사람들이 찾아온다. 이들은 다윗에게 도움이 될 만한 사람이 아니었다. 환난 당한 자, 빚진 자, 마음이 원통한 자들이다. 다윗도 이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상처받은 자들이 함께 기도하고 찬양하며 하나님을 의지하자 서로를 통해 하나님의 풍성한 위로가 나타난 것이다. 하나님이 세우신 가정과 교회도 바로 이런 곳이다.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없는 자들이 모였지만 기도하고 서로 손을 잡아 줌으로 서로를 믿음의 용사로 세우는 공동체이다.
해결할 수 없는 문제 가운데 있는가? 이제는 끝이라며 절망하고 있는가? 아둘람 동굴에서 여전히 함께하는 하나님을 바라보라. 하나님이 날개로 당신을 품어 주실 것이다. 가족이 문제를 나누고 함께 기도하라. 서로 손을 잡아 주고 감사를 결단하라. 아둘람 굴에서 탄식하는 사람이 있는가 주변을 살펴보라. 당신이 함께함으로 하나님의 위로가 전달될 것이다. 그 안에서 당신은 전혀 새로운 그리스도의 거룩한 병사가 될 것이다.

오늘의 기도
불투명한 미래와 두려움 속에도 존귀하신 하나님을 의지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황성은 목사
제주한빛교회


목-현장에서 승부를 걸라
본문 : 시 78:70~72
찬송 : 335장

하나님은 주어진 현장에 성실한 사람을 쓰신다. 현장이 있는 자에게 큰일을 맡기신다. 다윗은 아버지의 작은 양 몇 마리를 지키기 위해 곰과 사자와 싸우면서 성실하게 주어진 임무를 수행했다. 형들이 단장을 하고 사무엘이 집전하는 제사에 참여할 때도 다윗은 홀로 성실하게 양들을 지켰다. 하나님은 현장에 충실한 다윗을 보시고 마음이 흡족하셨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주권자로 삼아도 되겠다"고 생각하셨다. 오늘 본문 말씀이다. "또 그의 종 다윗을 택하시되 양의 우리에서 취하시며 젖 양을 지키는 중에서 그들을 이끌어 내사 그의 백성인 야곱, 그의 소유인 이스라엘을 기르게 하셨더니 이에 그가 그들을 자기 마음의 완전함으로 기르고 그의 손의 능숙함으로 그들을 지도하였도다."
하나님은 지금 우리의 삶의 현장을 보신다. 지금 우리의 현장이 우리의 미래이다. 하나님은 뽕나무 위에 있던 삭개오를 보셨다. 무화과나무 아래 있는 나다나엘을 보셨다. 로뎀나무 아래 있는 엘리야를 보셨다. 성물을 훔쳐내던 아간을 보셨고, 성령의 감동을 멸시하던 아나니아와 삽비라를 보셨다. 하나님은 이렇듯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현장에서 성실하고 충실하게 섬기는 다윗을 보셨다. 그리고 양 우리에서 다윗을 취하시고, 이끌어 내어 이스라엘의 주권자로 삼으셨다.
성실은 자기를 구원하는 행위이다. 나는 오늘 여기, 내게 주어진 일상에 충실한가? 다윗처럼 매일의 삶속에서 훈련하고 다듬어진 물맷돌이 있는가? 지금, 현장이 없는 사람이, 내일 하나님 앞에 쓰임 받는다는 것은 환상이고 허구이다. 예수님도 현장에서 열심히 그물을 던지는 베드로를 부르셔서 한번 말씀을 선포하면 하루에 삼천 명, 오천 명이 예수 믿고 돌아오는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셨다. 또한 장막 짓는 바울을 부르시어 하나님의 집을 건축하는 지혜로운 건축자가 되게 하셨다. 그리고 그물을 보수하는 요한을 부르시어 원수 사탄이 훼손시킨 교회를 보수하여 원래의 목적대로 회복시키는 사역을 맡기셨다. 오늘도 주님은 현장에 충실한 우리를 부르신다.
오늘 내게 주어진 자리에서 충실하자. 본질에 승부를 걸고, 현장에 승부를 걸자.  어제의 상처와 후회는 다 내려놓자. 오늘을 내 인생 최고의 날로 살아내자. 그리할 때, 후회 없이 잘 살았다고 고백하는 아름다운 황혼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다윗은 왕이 되어서 왕의 리더십을 발휘한 것이 아니라. 현장에서 이미 왕으로서의 리더십을 갖춘 것이다. 하나님이 쓰신 사람은 다 현장에 충실한 사람들이었다. 신실하신 하나님은 현장에 충실한 사람에게 임하신다. 하나님의 마음에 맞으면 하나님이 쓰신다. 주권자로 삼으신다. 왕권을 주시고 통치권을 주신다. 다시 힘을 내어 현장에 승부를 걸자. 성실한 하루하루가 쌓일 때 다윗처럼 쓰임 받는 복된 인생이 될 것이다.

오늘의 기도
다윗처럼 주어진 현장에 충실하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다윗처럼 하나님께 쓰임 받는 복된 인생이 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채영희 목사
사랑나눔교회


금-에바다의 은총
본문 : 막 7:31~37
찬송 : 380장

인간은 사회적 존재다. 따라서 다양한 관계 속에서 살아간다. 특히 경제 생활도 마찬가지이다. 경제 생활과 관련된 삶의 철학 가운데 의미 있게 적용할 수 있는 말씀이 있다. 하나는 디모데전서 6장 10절이고, 또 하나는 잠언 30장 8~9절이다. 바울은 믿음의 아들 디모데에게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됨을 가르친다. 인간생활의 가장 큰 비극은 너와 나의 삶의 관계가 단절된 삶일 것이다. 이것은 단순히 너와 나를 뛰어넘어 결국 하나님과의 단절된 삶에서 필연적으로 이어지는 결과로 나타난다.
오늘 본문 말씀의 주인공은 귀가 먹고 말을 어눌하게 하는 사람이다. 따라서 의사소통이 되지 못하는 절박한 상황이다. 인간관계와 생활에서 이보다 더 큰 비극은 없다. 영적으로 귀가 막혔으니 하나님의 살아 있는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들을 수 없다. 영적으로 혀가 맺혔으니 하나님이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을 하지 못한다. 이러한 상태로 기도를 하고 찬양을 해도 하나님은 그 기도를 알아듣지 못하시고 찬양을 받으시지 않으신다. 그러므로 무엇보다 영적으로 먼저 맺힌 혀를 풀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에바다의 은총이다.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에바다 하시니 이는 열리라는 뜻이라." 이 말에서 두 가지의 단계별 치유의 역사가 진행되고 있다. 첫째는 주님이 탄식하셨다는 것을 주목해야 한다. 그때 그 사람을 보고 탄식하신 것처럼 오늘도 주님은 겉모양은 거룩하고 의로워 보이는데 영의 귀가 막히고 혀가 맺혀서 그리스도다운 온전한 말을 하지 못하는 우리를 보시고 탄식하시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지금도 주님은 주님의 백성이 풀리고 뚫리어 행복하게 너와 내가 더불어 살아가는 축복된 삶을 원하신다.
둘째는 주님이 에바다를 선포하신 것이다. '에바다'는 아람어로서 '열리라'는 뜻이다. 그 순간 그 사람의 귀가 열리고 혀의 맺힌 것이 풀려 말이 분명하게 되었다. 즉 사단의 속박에서 풀리고 사단의 막힘에서 열렸다는 것이다. "그의 귀가 열리고 혀가 맺힌 것이 곧 풀려 말이 분명하여졌더라"고 했다. 막힌 귀가 뚫렸고, 맺힌 혀가 풀어졌다. 이것은 바로 회복의 축복이 임한 것이다. 거짓말을 하던 사람이 정직하고 진실된 말을 하게 되고, 불평하고 원망하던 사람이 감사하고 축복하는 말을 하게 된 것이다. 악하고 불의한 혀가 선하고 의로운 말을 하게 된 것이다. 아첨하고 송사하던 혀가 공의롭고 건설적인 말을 하게 된 것이다. 자기만을 위해 열변을 토하던 혀가 모든 사람을 위해 대변하는 말을 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모든 것이 회복된 축복이다. 이 문제가 해결되면 놀라운 것은 물질도, 건강도, 일상의 범사도 회복된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맺히면 모든 것이 맺힌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풀리면 모든 것이 풀린다. 이것이 에바다의 은총이며 회복된 축복이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맺힌 것, 막혔던 것, 닫혔던 문들이 열려지는 에바다의 은총을 허락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이상동 목사
동고교회


토-감사할 이유
본문 : 살후 2:13~17
찬송 : 588장

필자는 슬하에 남매가 있다. 두 명 밖에 안되지만 청년으로 장성하기까지 왜 그리 힘들었던지. 부모라면 모두가 그러하리라. 그런데 24주년 결혼기념일에 남매가 선물을 준비했다. 그 선물을 받는 순간 힘들었던 상황들이 다 잊혀졌다. 하나님께서도 그분의 자녀인 우리들로부터 감사의 마음을 받으신다면 참으로 기뻐하실 것이다. 본문 13절에서 "마땅히 하나님께 감사하라"고 했다.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
첫째, 하나님께서 우리를 선택해 주셨기 때문이다. "마땅히 하나님께 감사할 것은 하나님이 처음부터 너희를 택하사"라고 말씀하신다. 여기에서 '처음부터 너희를 택하사'라는 말씀은 하나님이 창세 전부터 선택하셨다는 뜻이다.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라고 하셨고, 갈라디아서 1장 15절에서 "내 어머니의 태로부터 나를 택정하시고 은혜로 나를 부르셨느니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께서 나같은 죄인을 선택하여 자녀로 삼아 주셨고 천국을 보증하여 주셨으니 감사함이 마땅하다.
둘째는 하나님이 우리를 성령으로 거룩하게 해주셨기 때문이다. 신학자 폴 틸리히는 "인간들에게는 공개하기 어려운 세 가지 어두운 그림자가 항상 따르고 있는데 첫째는 공허감이요, 둘째는 죄책감이요, 셋째는 공포감이다"라고 했다. 현대인은 아무리 배우고 노력해도 마음의 공허함을 극복할 수가 없는데 그 이유는 '죄책감'때문이다. 죄를 범한 인간은 하나님 앞에 갈 수가 없다. 로마서 3장 23절에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라고 했다. 그러나 성령께서 오셔서 우리를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 주셨다. 13절은 "하나님이 처음부터 너희를 택하사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이라고 말씀하셨다. 갈라디아서 4장 6절에서도 "너희가 아들인고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고 하셨다. 죄인이었던 우리를 하나님의 거룩한 자녀로, 어둠의 자녀이었던 우리를 빛의 자녀로, 지옥백성을 천국백성으로 인도해 주신 것이다. 베드로전서 2장 10절은 "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전에는 긍휼을 얻지 못하더니 이제는 긍휼을 입은 자니라"고 했다. 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죄인된 우리들을 성령으로 거룩하게 하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 주셨으니 감사할 일이다. "하나님께 마땅히 감사하라(살후 2:13)"고 하셨고, "하나님께 끊임없이 감사하라(살전 2:13)"고 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감사할 이유를 깨달아 행복한 삶을 사시길 바란다.

오늘의 기도
죄인으로 살아가는 저희들을 아버지의 자녀로 삼아 주시고 거룩하게 해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이 은혜에 마땅히 감사하며 살아가게 하옵소서. 우리의 주인되시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신세신 목사
부광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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