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예배]12월 3~9일

한국기독공보l승인2017.12.01l3117호 l조회수 : 8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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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예수님은 우리의 희망
본문 : 사 11:1~10
찬송 : 488장

성탄절을 앞두고 4주간의 대강절이 시작되었다. 대강절은 교회력의 시작인데, 이는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은 기다리는 일로부터 시작됨을 암시한다.

하나님은 언약의 하나님이시다. 그리고 믿음은 하나님의 그 약속이 이루어질 것을 확신하고 기다리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지금 성탄절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보내시고 또 그를 통해서 이루시겠다고 약속하신 하나님의 말씀이 이루어질 것을 기다리는 것이다.

모든 사람은 희망을 갖고 산다. 그들이 희망이라고 하는 것들은 대부분 약속되어진 것들이 아니다. 기대 혹은 막연한 요구, 요행들이다. 반면에 이미 약속되어진 것들은 믿지 못하고 기대하지도 않으며 기다리지도 않는 경우를 본다. 약속이란 매우 중요한 것이다. 특히나 그것이 하나님의 약속이라면, 이것은 우리의 희망을 위한 절대적인 것이다. 본문의 이사야 선지자는 심한 고통과 절망의 시대에 활동했다. 소망이 없다. 희망을 접었다. 도무지 미래가 없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선 그 택한 백성을 사랑하셨기에 희망을 선포하셨다. 그것은 구원의 약속이다. 메시야의 오심과 그 왕국의 예언이 바로 그 희망의 총체이다. 그리고 그 왕국의 주인은 메시야요, 그리스도 예수이다.

그분은 언약을 따라 다윗의 후손으로 오셨다. 그분은 약하고 비천하게 오셨다. 그러나 그분은 영원한 생명을 소유하고 오셨다. 부활의 생명력이 충만하신 영생 그 자체로 오신 것이다. 죄악의 관영함과 비천과 절망 가운데 살아가며 내일 일을 알지 못하는 암울함, 이것이 이 시대의 모습이 아닐까? 그러나 하나님의 선민들은 아무리 불의하고 절망적인 역사의 영향력 안에 있다 해도 슬픔과 좌절에 빠져서는 안된다. 고통과 어두움의 이 땅에서 우리 인생들의 기대감을 채워 줄 수 있는 유일하고 참된 희망은 예수 그리스도뿐이시며, 우리는 그분을 신실하게 믿기 때문이다. 그분만이 우리의 구원을 성취하시며, 생명과 진리의 길로 우리를 인도해 주실 것이다. 성도는 벼랑 끝에서도 희망을 보는 사람들이다. 그 희망은 하나님의 약속이다. 그 약속의 중심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신다. 그래서 그리스도는 우리의 희망이시다.

수많은 세월동안 구원의 희망으로 메시야의 약속을 품고 고난을 이기며 살아온 사람들이 있었다. 그리고 때가 이르매 희망의 빛으로 오셔서 만민에게 생명의 소망을 주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사람들, 그리고 그분의 다시 오심을 가다리며 '마라나타'를 외쳤던 사람들, 그 모두에게 진정한 희망은 이 땅의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 그 분 뿐이었다.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성도들에게 더욱 절실한 것은 '우리의 희망, 그리스도 예수'뿐이다.

오늘의 기도
절망 뿐인 세상이지만, 이 땅을 향한 하나님의 언약을 기억하며 소망 중에 기뻐합니다. 그 언약의 중심, 우리의 희망이신 예수님만 바라보게 하시며 희망을 기다리는 대강절이 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이형흠 목사
은석교회


화-참된 기쁨
본문 : 요일 4:15~21
찬송 : 182장

사랑은 떠올리고 생각만 해도 기쁘고 좋다. 여러분은 하나님을 사랑하는가? 지금 내가 하나님을 사랑하는지 어떻게 알 수 있는가? 그분을 생각만 해도 마음이 좋고 기쁜가? 행복해지는가? 입가에 미소가 자연스럽게 번지는가? 기쁨(JOY)으로 사랑하는가 사랑하지 않는가의 여부를 확인할 수 있다.

JOY는 기쁨이다. 이 기쁨은 언제나 지저스(J) 예수 그리스도, 아더스(O) 이웃, 마지막 유(Y) 나. 이 순서 일 때 주어진다.

먼저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해야 한다. 마음과 힘, 뜻을 다하여 먼저 예수님을 사랑해야 한다. 예수님을 사랑하지 않으면, 우리의 영적인 욕구가 채워지지 않는다. 우리에게 아무런 영적욕구가 없다면, 반대로 영적욕구가 엄청 많은데, 그 누구도 이 욕구를 채워주지 않는다면, 이것은 굉장히 안타깝고 모두에게 불행한 일이다. 그래서 먼저 예수님을 사랑해야 한다.

다음은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 마치 떡을 물위에 던지듯 이웃을 위해야 한다. 주님은 떡을 공개적으로 주시기도 하지만, 사적으로 내게만 특별하게 주시기도 한다. 사적으로 주시는 떡을 잘 받기 위해서는 먼저 이웃에게 베풀어야 한다. 받은 만큼 사랑을 나누어야 한다. 자족하면서 행복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은 다 사적으로 받은 은혜를 나누는 사람들이다. 대접받고자 하는 대로 대접하라, 이 말씀이 황금율이다. 이것이 바로 복 받는 비결이다.

마지막으로 유, 당신. 바로 나이다. 다른 사람을 늘 기쁘게 해주려고 애쓰지만, 정작 나에게는 너무 가혹하지 않는가? 물론 하나님 앞에 불쌍히 여김 받아야 할 죄인으로 여기는 것은 좋지만, 자신을 비하시키거나 학대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매일 왕 같은 제사장으로 살아가야 한다. 하나님이 나를 생각만 해도 기뻐하시기 때문에, 나 역시 나 자신을 기뻐하며 살아가야 한다.

이렇게 살아가는 것이 기쁨이다. 이 기쁨이 바로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 변하지 않는 기쁨, 참된 기쁨이다. 이 참된 기쁨이 삶을 충만히 살아가기를 바란다. 이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바라는 삶인 것이다.

오늘의 기도
주님 주님은 우리가 기뻐하길 원하신다는 것을 잊어버릴 때가 많습니다. 막연한 기쁨이 아닌, 먼저 주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섬기며, 나 자신을 아낄 줄 아는 신실한 성도가 되어 주님 안에 있는 참된 기쁨을 누리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우리가 누리는 기쁨을 다른 사람에게도 풍족히 나누게 하옵소서. 어둡고 우울한 이 세상에서 오늘도 승리하며 살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박장덕 목사
도원교회


수-당신은 복의 통로
본문 : 창 24:1~27
찬송 : 211장

아브라함이 충성스러운 종을 친족들이 살고 있는 밧단아람으로 보낸다. 그리고 아들 이삭의 아내감을 구해오라는 사명을 준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받은 약속이 있다.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라." 곧, 아브라함의 가문은 하나님의 복이 전달되는 통로인 것이다. 이걸 아는 늙은 종이 가는 내내 기도하며 생각한다. '하나님, 이 가문에 들어와서 복의 통로로서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여인은 어떤 여인입니까? 제가 그 여인을 어떻게 알아볼 수 있습니까?' 그러다 목적지에 도착해서 우물 곁에서 이렇게 기도한다. "제가 어떤 소녀에게 물을 좀 달라고 하면 그녀가 '드십시오. 제가 이 낙타들도 물을 마실 수 있게 해 드리겠습니다'라고 하면 바로 그녀가 주께서 이삭을 위해 정하신 사람으로 여기겠습니다."

그런데 이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낙타는 한 번에 100리터 이상의 물을 마신다. 게다가 고대 중동의 우물은 구조가 우리 것과 다르다. 마치 지하실에 내려가듯이 계단을 타고 내려가 바닥에 있는 우물에서 길어서 올라와야 한다. 그 깊이가 매우 깊고, 깊이가 30m나 되는 것도 있다. 그런데 여행에 지친 노인과 낙타 열 마리를 보자마자 '낙타들에게도 물을 줘야겠다'라고 생각할 수 있는 여성은 흔치 않다. 힘이 있다고 이렇게 섬길 수 있는 게 아니다. 남의 필요를 채우고자 하는 성품이 갖춰지지 않고서는 도무지 생각할 수 없는 일이다. 실제로 복의 통로가 될 수 있는 사람은 다른 사람이 아니다. 타인의 필요에 민감한 사람, 타인의 고통에 민감한 사람이다. 그래서 내가 받은 건강, 지식, 부를  필요한 사람에게 흘려보내지 않으면 견딜 수 없어하는 사람이다. 마치 나눔이 자신의 사명인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이다. 거기에 부합하는 여인이 바로 리브가였다.

그렇다면 리브가는 어떻게 이런 성품을 갖추었을까?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들처럼 눈가림으로 하지 말고, 주님을 두려워하면서, 성실한 마음으로 하십시오. 무슨 일을 하든지 사람에게 하듯이 하지 말고, 주님께 하듯이 진심으로 하십시오." 이 말씀은 '주님이 지켜보고 계신다는 것을 명심하라'는 뜻이다. 리브가는 '지금 이 우물곁엔 나 밖에 없는데, 내가 아니면 이 힘없는 노인을 누가 돌볼까? 주님이 나를 지켜보신다. 여행에 지친 노인을 섬기는 지금 이 순간도 주님이 나를 지켜보신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래서 그녀를 하나님이 복의 통로인 가문의 여주인으로 뽑으시고 높이신다. 주님이 우리를 지켜보고 계신다. 눈가림만 하지 말자. 가정에서도, 학교에서도, 직장에서도 주님이 나를 복의 통로로 세우셨다는 것을 잊지 말고 항상 훈련하자. 언제 어디서나 축복의 통로로 살아가자. 그러면 우리를 통해 사람들이 살아나고 주님은 그런 우리를 높이신다.

오늘의 기도
저를 복의 통로로 세우셨으니 남의 필요에 민감한 마음을 주시고, 남의 필요를 볼 수 있는 눈을 주옵소서. 그리하여 주의 이름으로 남의 필요를 채워주며 살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박경훈 목사
큰숲교회


목-회개와 용서
본문 : 눅 17:3~4
찬송 : 279장

"성도님 가정은 안녕하십니까?" 보통 가정이 안녕하냐는 안부의 인사에 대한 대답은 거의 90% 이상이 "안녕하다"이다. 하지만 그 대답 속에는 보이지 않는 걱정과, 불안과, 답답함, 상처 등이 있다는 것을 좀 더 깊이 들여다보면 알 수 있게 된다. 물질은 넘쳐나고, 유흥거리, 오락거리는 넘쳐나는 시대 속에서 정신적으로 병들어가며, 어그러지기 쉬운 관계들 속에 수많은 가정들이 알게 모르게 고통을 받고 있는 때가 지금 이 시대이다. 우리는 왜 이렇게 가장 가까운 또 소중한 이들로 하여금 상처를 받고, 또 커다란 염려와 불안을 떠안게 된 것일까?

첫째, 회개하지 않아서이다. 아픔과 상처는 갑자기 나타나기보다는 시간이 지난 후 터져 나오는 경우가 많다. 이것은 스스로 죄를 죄로 여기지 않거나 중하지 않게 여기며 살아갈 때 나타난 결과이다.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 기쁨이 된다고 하셨다. 내가 주님과 바른 관계를 만드는 것도 회개부터이다. 우리가 가족과의 바른 관계를 만드는 것도 회개로부터이다. 나의 죄를 회개할 수 있는 진짜 용기가 필요할 때이다. 회개는 주님의 첫 번째 사역이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고 하였으니 회개만이 주님께로 나아가는 길이요. 생명을 찾는 길이요. 상처를 회복하는 길이며, 무너진 가정을 회복시키는 길이다. 죄에서 자유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진정한 회개를 통해서이다. 회개 없이 주님의 은혜를 받을 수 없다. 회개를 통해서 무한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시길 바란다.

둘째는 용서하지 않아서이다.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면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시려니와." 예수님이 우리를 용서해 주셨다. 값없이 주님의 보혈로 우리는 더러운 죄에서 해방된 자녀가 되었다. 주님의 십자가 죽으심은 나를 어둠에서 빛으로 옮겨주셨다. 고통에서 자유로 옮겨주셨다. 영원한 생명의 길로 인도해주셨다. 예수님의 용서의 손을 기억하자. 지금, 우리는 누군가에게 손을 내밀어야 할 때이다. 먼저 용기 있는 용서의 손이 되어주자. 용서의 손은 가장 아름답다. 우선 가정에서부터 시작되는 용서가 중요하다. 그 용서는 건강한 가정을 만든다. 내가 내 가족을 용서해야 나도 주님으로부터 용서를 받을 수 있다. 예수님께서 용서의 매개체로 이 땅에 오셨듯, 용서에는 그런 커다란 힘이 있다. 우리는 삶 가운데 그 힘을 제대로 발휘하기 위해 용서해야 한다.

셋째, 회개와 용서는 끊임없이 이루어져야 한다. 주님은 우리의 회개와 용서를 세지 않으시고 우리를 긍휼히 여기셨다. 가정에서 나로부터의 회개와 용서가 끊임없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것이 진정한 회복의 시작이고 힘이다.

오늘의 기도
회개하게 하옵소서. 용서하게 하옵소서. 내가 먼저 손 내밀게 하옵소서. 나로부터 회복되고 가정이 회복되는 건강한 삶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경희 목사
밀알교회


금-회복의 빛을 비추소서
본문 : 시 80:1~7
찬송 : 104장

대림절의 기다림은 아기 예수님의 탄생이 아니라 예수님의 다시 오심이다. 대림절은 그리스도의 몸이 되는 교회가 지키는 새로운 시작의 출발점이다. 그리스도의 삶을 중심으로 하는 성도들은 대림절을 교회력의 첫 시작으로 정하여 믿음 안에서 새로운 다짐과 각오를 세워간다. 본문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국가의 회복을 위해 드리는 탄식시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신들이 처한 절망적인 상황에 대해 탄원하면서 하나님께서 자신들에 대한 분노를 멈추시고 구원해 주시길 간구한다. "하나님이여 우리를 돌이키시고 주의 얼굴빛을 비추사 우리가 구원을 얻게 하소서."

'회복하다'의 사전적 의미는 '원래의 좋은 상태로 되돌리거나 되찾다'는 뜻이다. 우리는 회복이 필요한 사람들이다. 우리나라도 회복이 필요하다. "하나님이 지으신 그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고 하셨던 그 때의 회복이 필요하다. 회복을 위해 우리는 다시 하나님의 얼굴을 바라보아야 한다. "여호와는 의로우사 의로운 일을 좋아 하시나니 정직한 자는 그의 얼굴을 뵈오리로다."(시 11:7)

하나님의 얼굴을 뵙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충분히 경험한다는 뜻이다. 하나님이 자기 얼굴을 사람에게로 향하신다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상징적인 표현이다. 반대로 하나님이 얼굴을 숨기신다는 것은 진노의 표현이다. 대림 절기를 맞아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을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백성들은 주님의 탄생과 재림의 사이에 서서 우리를 구원하려 이미 오신 주님을 기억하고 다시 구원하시고 회복하시기 위해 오시는 주님을 기대하고 소망하자. 하나님은 빛이요 사랑이시다. 하나님 안에는 조금도 어둠이 없으시다. 빛이 있는 곳에 영광이 있다. 빛의 역할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어둠과 죄를 순식간에 몰아내는 것이다. 우리 안에 하나님을 모셨다는 것은 어두운 우리 인생을 밝게 비춘다는 의미이다.

본문의 빛은 '구원'과 '회복'이다. 어둠 속에 있을 때는 어두운 줄 모른다. 그냥 적응하고 살다보면 야행성 동물처럼 어둠의 자녀가 된다. 빛 없이 사는 동물은 빛이 없어도 불편하지 않다. 어둠 가운데 장기간 있다 보면 적응하며 산다. 누군가 어둠에 있다는 사실을 가르쳐 주지 않으면 알 길이 없다. 주님의 빛이 오실 때 이 모든 어둠의 세력은 물러간다.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고 하면서 계속 죄 안에 거한다면 이것은 잘못된 신앙이다. 세상은 아직도 교만한 자가 잘 되고 겸손한 자가 끝까지 어려움을 당하는 세상이다. 그러나 예수께서 다시 오실 때에 그 영원한 빛이 밝혀지면 그곳에는 애통하는 자가 복이 있다. 핍박을 받는 자도 복이 있다. 빛보다 어둠을 좋아하는 우리 인생들에게 대림절기가 우리의 정체성을 다시 드러내는 소중한 절기가 되게 하자.

오늘의 기도
하나님의 빛으로 우리 안에 있는 죄와 허물을 몰아내시고 우리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자녀로 회복시켜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박재학 목사
광명교회


토-좋아하는가, 사랑하는가?
본문 : 마 18:21~35
찬송 : 314장

하나님께서는 범죄하고 교만한 우리를 좋아하시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를 사랑하시기에 그의 외아들까지 내어 주셨다. 성경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연애편지이다. 그 연애편지 속에서 수천 번 강조하고 강조하는 말씀이 무엇인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라고 하셨지 당신을 좋아하라고 하지 않았다. 예수님께서 부르신 제자들을 보자. 그들은 훌륭한 인품을 가진 자들이 아니었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을 좋아하지 않으셨다. 그러나 예수님은 제자들을 사랑하셨다. 그 주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고 말씀하신다. 그러면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가장 확실한 방법은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는 것이다. 말씀은 곧 예수님이시다. 예수님은 곧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을 사랑하길 원하는가? 그러면 말씀을 사랑하시라. 말씀을 사랑하는 자는 그 말씀대로 산다. 그 말씀 중에서 핵심이 뭔가? 그것은 하나님 사랑이요, 이웃 사랑이다.

주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죄를 전가 받아 모든 죄 짐을 짊어지고 십자가에 죽으셨다.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고 말하셨다. 버린다는 말의 뜻은 예수께서 짊어지신 그 인류의 죄를 외면하셨다는 뜻이다. 우리를 위해 대신 지신 그 죄 짐이 그토록 컸기에, 그토록 더럽고 추하고 가증스러웠기에 하나님께서 얼굴을 돌리신 것이다. 우리의 죄를 전가 받으신 주님은 죽으심으로써 우리의 일만 달란트를 탕감해 주셨다. 주님은 말씀하신다.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다가 거기서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줄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하나님은 가난한 분이 아니시다. 온 우주만물이 하나님의 것이다. 하나님은 무언가가 모자라서 예물을 받으시려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진정으로 받으시려는 예물은 용서의 예물이다. 이웃을 용서하고 사랑하는 것이 일만 달란트 탕감 받는 자들이 드릴 예물이다.

적어도 하나님이 한 교회로 불러 묶어준 우리 성도들만이라도 서로 용납하자. 내가 좋아할 수는 없어도 사랑할 수는 있다. 한 마디를 해도 주의 깊게 말하자. 잘못을 지적할 때도 넓은 아량과 사랑의 양념을 쳐서 지적하자. 내가 용서하지 못했던 그 갈등과, 속상함과, 아픔을 주님의 십자가에 내려놓자. 그리고 주님께로 나아와 배우자.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 최고의 행복임을 깨닫자.

오늘의 기도
주님의 용서와 사랑을 받아 살아가는 것임을 잊지 않고 다른 사람을 용납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노태윤 목사
번암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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