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아주고 쓰다듬는 격려의 표현, 고학년 갈수록 조심하라

교회도 '미투(MeToo)'처방전 필요, "친밀감과 격려표현으로 신체접촉 대신 인격적 대우를" 이수진 기자l승인2018.02.09l수정2018.02.13 14:42l3128호 l조회수 : 1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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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력 피해를 고발하는 '미투운동(#MeToo)'이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교회 안에서도 친밀감을 나타내는 행동이나 말을 함에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기업이나 대학가에서도 '불필요한 회식자리를 줄이자', '신입생에게 장기자랑 강요 말자'는 등 사회 전반적으로 '미투' 처방전이 나오고 있다.

성희롱이나 성추행은 행동하는 사람의 주관적인 의도보다는 상대방이 느끼는 감정을 더 중요시하기 때문에, 상대방이 불쾌해 하거나 혐오감을 주는 행동이나 제스처는 삼가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특히 교회안에서 감수성이 예민한 시기의 청소년들을 대하는 교역자나 교사는 더욱 유의해야 할 점이 많다.

지난 4일 서울의 한 중대형교회 산하 교육위원회 모임에서는 현재 사회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미투운동을 통해 성폭력에 대한 심각성을 인식하고 '고학년일수록 쓰다듬어주는 격려의 표현은 자제하자', '오랜만에 출석해 반갑다고 안아주는 것은 삼가자', '신체에 대한 품평으로 오해할 수 있는 발언은 하지 말자' 등 교사나 교역자들이 학생들을 대할 때 주의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다. 이와함께 외부세계의 자극이나 반응에 민감한 사춘기 청소년들을 대하는 교사들은 특히 이런 부분의 교육이 필요하다고 의견이 모아져 빠른 시일내에 교육일정을 잡기로 논의했다.

교사나 교역자의 입장에서 애정을 표현한다며 하는 행위가 학생의 입장에서 성추행이나 성희롱으로 느껴질 수 있다는 것은 그동안 한국교회에서 좀처럼 인식하지 못한 부분이었기에 무심코 던지는 한마디, 행동, 제스처 하나하나부터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는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장신대 이상억 교수(목회상담학)는 "우리의 친밀감 표현에 대한 근본적인 인식변화가 있어야 한다"며, "우선 계급적 구도나 가부장적 자세, 사람을 소유물로 생각하는 인식을 버려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친밀감과 격려의 표현으로 신체접촉을 사용할 수 있지만 그것보다 상대에 대한 인격적인 대우와 관계형성을 통해서도 친밀감과 격려를 표현할 수 있다"며, "특히 아이들이나 청소년 혹은 새신자들에게 제왕적으로 군림하려는 자세를 버려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교회내에서 신앙성장과 훈련을 이유로 사람을 인격적으로 대하지 않고 마치 소유물로 인식하여, 자신에게 순종해야 좋은 신앙인이라는 잘못된 생각을 강요할 때가 있다"고 지적하며, "상대방을 인격체로 또 존중받아야 할 존재로 인정한다면 보다 좋은 매너로 친밀감을 표현할 수 있다. 결국 문제는 '에티켓(규정이나 규칙)'을 어떻게 수행하는지에 대한 매너의 문제"라고 바라봤다.

사회전반으로 미투운동이 번지고 있는 가운데, 교회도 위계적 위치에 있는 구성원들이 먼저 스스로 자세와 태도를 점검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수진 기자  sjlee@pckworld.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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