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대나물과 별들의 이름

이춘원 장로l승인2018.04.10l3135호 l조회수 : 3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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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겨울잠에서 깨어난 대지가 연둣빛 옷을 입는 4월이다. 땅 위에 뾰족 뾰족 나오는 새싹들, 버드나무 가지에 푸른빛이 도는 모습에서 가까이 와있는 봄을 본다. 봄은 부드러운 숨결인 듯 부는 바람결로 온다. 옷깃으로 스며드는 따스한 햇살과 응어리진 멍울을 풀어주는 봄비 따라 온다. 세미한 하늘의 소리를 듣고 응답하는 것들이 봄을 만들고 우리에게 소망을 주는 것이다.

지난 2월 하순이다. 부여에서 양송이버섯 재배를 하는 친구를 찾은 적이 있다. 봄맞이가 한창인 주변을 둘러보다 텃밭에서 꽃을 피우는 광대나물을 만났다. 초록 잎이 돌려나기를 하고 잎겨드랑이에 피는 얼룩점의 분홍빛 꽃이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이 곱다. 

광대나물은 꿀풀과 한해살이풀로 춤추는 광대와 같다고 해서 얻은 이름이다. 어린잎은 나물로도 먹었다하니 배고픈 시절을 우리와 함께 한 고마운 풀이기도 하다. 잎이 줄기를 감싸고 둥그렇게 나 있는 모습이 광주리 같다하여 광주리나물, 목도리 같다하여 목걸레나물이라는 별명도 정감이 있다. 식물의 이름에 '광대' 또는 '기생'이라는 이름이 붙으면 꽃이 예쁘다는 뜻이다. 국화과에 속하는 '기생초'는 노란 꽃 가운데 짙은 밤색 무늬가 있어 마치 기생이 치장한 것같다하여 얻은 이름이다. 광대나 기생이라는 직업 또는 삶의 모습이 아니라 그들의 화려한 옷이나 치장한 모습을 생각하고 붙여진 이름이다. 이렇게 앙증맞고 고운 모양으로 해마다 우리를 찾아오고, 우리 삶의 현장에서 늘 가까이 살고 있는 이 들꽃들을 알아보는 사람은 많지 않다. 꽃다지, 봄맞이, 봄까치, 꽃마리, 별꽃…. 오늘도 각자의 이름으로 피어 있는 이 작은 꽃들을 보라. 너무 작아 보잘 것 없어 보일지라도 자세히 보면 이목구비도 뚜렷하고 얼마나 순수하고 고운지 영락없이 봄아가씨다. 들에 나가 가장 낮은 자세로 그 꽃들을 만나볼 때 눈에 들어오는 감동의 물결이다.

하늘에는 수많은 별이 있다. 2016년 10월 사이언스저널에서 관측 가능한 은하수가 2조 개 정도라고 발표했다. 은하수 하나에 약 1000억 개에서 1조 개의 별이 있다고 추정한다. 그 별들은 각자의 이름이 있을까? 인간들은 수많은 별들 중 태양계를 중심으로 관측해 온 별들에게 이름을 붙이고 관찰할 뿐 대부분 별들의 이름을 모른다. 별들의 이름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성경은 "그가 별들의 수효를 세시고, 그것을 다 이름대로 부르신다"고 기록하고 있다. 창조주께서 그 별들 이름을 일일이 지어주시고 불러주신다는 뜻이다.

세상에 사는 많은 사람 중에는 세상 기준으로 아주 보잘 것 없어 보이는 사람들이 있다. 그래서 무시당하고 천대받고 소외당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그 사람들도 다 별들 하나 하나를 기억하고 부르시는 하나님께서 일일이 기억하시며 이름을 불러주시는 존귀한 생명이다. 들꽃 하나에도 감동을 하듯 이 땅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에게서 의미를 찾고, 그 이름을 불러줄 때에 관심을 갖게 되고 사랑하게 될 것이다. 사랑이신 하나님의 마음이다.

이춘원 장로
산림교육전문가ㆍ한강교회


이춘원 장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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