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예배]4월 16~21일

한국기독공보l승인2018.04.13l3135호 l조회수 : 1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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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본문 : 삼상 17:41~49
찬송 : 96장

블레셋 군대와 군대의 수장으로서 골리앗은 이스라엘과 대치하는 가운데 40일간이나 아침과 저녁으로 나와서 이스라엘과 하나님을 조롱했다.
하지만 이때 다윗이라는 소년이 아버지의 심부름으로 사울 왕을 따라 전쟁에 나간 형님들의 안부를 살피기 위해서 진영에 들어가게 되었고 이 장면을 목격한다. 하나님께서는 이 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사람으로 다윗을 사용하신다.
첫째, 그는 아직 부족한 사람이었다. 그는 젊고 붉고 용모가 아름다워서 아직은 어리고 부족함이 많은 10대 소년이었다. 골리앗은 그런 다윗을 보자마자 업신여겨 그들 신들의 이름으로 다윗을 저주했다. 현재 우리의 모습도 어쩌면 다윗처럼 상대가 보기에 부족하고 나약하고 어리석고 가난한 자들의 모습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지금도 무시당하고 살고 있는 지도 모르지만 우리에게는 희망이 있다. 나의 구세주이신 예수님을 믿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우리들의 아버지요 지혜이시고 예수님께서는 구원이시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성령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더 이상 부족하지 않다.
둘째,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나아갔다. 골리앗은 어려서부터 장수여서 칼과 창과 단창으로 무장했고 전쟁에 능한 군인이었다. 그러나 다윗은 목동이었다. 전쟁의 문외한이다. 하지만 이 전쟁은 무기와 용사, 능력의 대결이 아니라 하나님의 싸우시는 전쟁임을 다윗은 알게 되었다. 골리앗은 여호와를 무시하였으나 다윗은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을 믿고 의지하여 당당하게 나아갔고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다. 오늘 우리도 매일 같이 사탄과의 영적인 전쟁을 치르고 있다. 다행히 예수님께서는 이름을 사용하도록 하락해 주셨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이름을 사용함으로 귀신을 추방하고 병자를 고치고 승리했다. 우리도 예수님의 이름을 사용하면 반드시 승리할 수 있다.
셋째, 평소 자기 모습 그대로 하면 된다. 다윗은 사울 왕이 입혀준 군복도 벗었다. 그는 본래 양을 칠 때에 입었던 옷과 물매와 돌을 가지고 골리앗 앞에 섰다. 그의 손에는 전쟁의 도구인 칼이 없었다. 본래 양치기 할 때 사용하던 무기로 장수인 골리앗을 상대하여 전쟁에서 그를 죽이고 승리했다. 하나님의 전쟁은 병력이나 무기로 이기는 것이 아님을 알게 하였다. 누구든지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을 충성되게 섬기는 믿음의 사람, 기도의 사람, 성령 충만의 사람이라면 예수님의 이름으로 승리할 수밖에 없다. 현재 나의 신앙의 모습 그대로 어떤 일에 기적을 일으키고자 한다면
다윗처럼 조금도 흐트러짐이 없는 충성된 신앙의 자세를 가지자. 언제나 준비된 사람, 평소에 열심 있는 사람는 무슨 일을 만나든지 만사형통이다. 어떤 일이 갑자기 닥쳐서 하지 말고 늘깨어서 기도하며 준비하는 삶을 살자. 하나님의 방법으로 나가면 지금 부족한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오늘의 기도
부족한 우리지만 예수님의 이름을 믿고 사용하는 사람들이 승리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임기환 목사
여수살리는교회


화-여호와께로 돌아가자
본문 : 호 6:1, 11:8
찬송 : 254장

한국기독공보에 연초에 실린 기사에서 예장 총회에서 전체 노회 예산이 3년간 94억의 예산이 감소했고 3년간 12만 1422명이 감소하여 300명 출석교회 400여개가 3년만에 증발했다는 보도를 보았다. 그래서 필자가 속한 서울북노회에서도 예산절감을 위해 기구 통폐합을 한다고 한다. 한국교회가 점점 추락하고 있는 듯 하다. 교회들마다 탄식하고 또 탄식하고 있다.
본문 말씀과 호세아 서의 두 군데 말씀을 함께 같이 찾아보면서 깨닫고 변화되는 기회로 삼고자 한다. "에브라임이여 내가 어찌 너를 놓겠느냐 이스라엘이여 내가 어찌 너를 버리겠느냐 내가 어찌 너를 아드마같이 놓겠느냐 어찌 너를 스보임같이 두겠느냐 내 마음이 내 속에서 돌이키어 나의 긍휼이 온전히 불붙듯 하도다." 당시 이스라엘은 타락과 변질이 말로 다할 수 없을 정도였다. 도저히 예쁘고 사랑스럽게 보려고 해도 볼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그런 상황에서도 하나님께서는 "내가 어찌 너를 놓겠느냐, 내가 어찌 너를 버리겠느냐"라고 말씀하신다. 
어떤 경우에라도 결코 포기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그 사랑을 경험하고 맛보게 되기를 바라고 또 소망하자. 그 사랑이 어떤 절망의 자리에서라도 우리를 일으켜 줄 것을 믿자. 하나님은 여전이 살아계시고 그 하나님의 사랑이 여전이 우리와 함께 하기에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면 새로운 길이 보이고 인간의 절망이 변하여 희망이 될 수 있음을 믿으시기 바란다.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주실 것임이라." 범죄함으로 징계를 받고 가슴이 아프고 마음이 무너지는 초라한 자리에 빠졌다 할지라도 우리는 여호와께로 돌아가야 할 줄 믿습니다. 여호와께서 찢으셨으나 다시 싸매어 주시리라는 확신을 회복하는 것이 믿음이다. 아프지만 인정해야 한다. 외면하고 싶지만 지금 우리 교회의 상태를 똑바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하나님 앞에 우리의 마음을 정직하게 드러내 보이자. 하나님의 진단 앞에 "맞습니다. 하나님 우리가 세상을 의지하는 영적인 음란함에 빠져 있습니다"라고 인정하자. 그 고백을 들으시고 "내가 어찌 너를 버리겠느냐! 내가 어찌 너를 버리겠느냐"라고 하시는 하나님의 위로를 받아 누리며 은혜를 회복하는 자리로 나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겠다.

오늘의 기도
이땅의 교회가 점점 추락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철저히 회개하며 주님의 보좌 앞에 나아가는 교회되게 하시고, 치유하시고 싸매어 주시는 여호와께로 돌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류지봉 목사
군내교회


수-다윗의 세 가지 기도
본문 : 시 141:1~5
찬송 : 336장

성경에 나온 인물들은 한결같이 많은 고난들이 있었지만,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따라 행, 불행이 결정되었다. 특별히 다윗은 고통을 받을 때마다 기도를 통해 문제를 해결해 나갔다.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는 하나님의 평가는 본문에 나온 3가지 기도대로 한평생 그러한 삶을 살았기에 가능했으리라 본다.
첫째, 내 입술을 지켜 주소서! 아들이 반역하고 백성들까지 등을 돌렸음에도, 다윗은 원수 갚기보다는 입술을 지켜달라고 기도했다. 사람은 사나운 맹수까지 길들일 수 있으나, 인간의 혀는 길들일 자가 없기에, 오순절 성령은 가장 먼저 세치 혀에 임했다. 성령에 충만한 자는 다른 어떤 것보다 입술이 성별되어 있다. 인간의 혀는 큰 배의 키처럼 인생을 이끌어가기에, 온전한 사람은 말에 실수가 없어야 한다고 야고보서 3장에 강조했던 것이다. 한평생 우리는 돈, 건강, 가정, 사업을 지키는 일도 중요하나, 정말 지켜야 할 것은 오늘 하루도 다윗처럼 입술이다. 입을 다스릴 줄 아는 자는 세상을 다스릴 수 있다.
둘째, 내 마음을 지켜 주소서! 입술은 사실 마음에서 시작된다. 마음을 지키기 위해 다윗은 악인, 죄인, 오만한 자와 함께하는 대신에 말씀을 묵상했다. 모든 지킬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고자 한 것은 이에서 생명의 근원이 나기 때문이다. 다윗은 자기를 쫓는 사울을 두 번이나 죽일 기회가 있었다. 또한 자신을 저주하는 시므이를 아비새가 죽이겠다고 해도 거절했다. 다윗은 어떤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며 마음을 굳게 지켰다. 자기 마음을 제어하지 아니하는 자는 성읍이 무너지고 성벽이 없는 벌거숭이 인생임을 다윗은 잘 알고 있었다.
셋째, 내 영혼을 지켜 주소서! 다윗은 의인이 칠지라도 은혜로 여기고, 책망하는 자에게 기름을 붓듯 거절하지 아니하고, 재난 중에서도 그들을 위해 기도한 것은 자신의 영혼을 지키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었다. 공격했던 그들이 넘어지고, 자기 그물에 걸려 넘어지게 해 달라는 것은 예언적 성격이 짙은 내용이었다. 인생은 뿌린 대로 거둔다. 하나님의 눈은 언제나 온 땅을 감찰하시기에 전심으로 자기에게 향하는 자를 위하여 능력을 베푸신다. 그러므로 어떤 상황에서든지 다시 오실 그 분 앞에 우리의 육신과 영혼이 부끄럽지 않도록 기도하며 살아야 한다.

오늘의 기도
주님, 고난 없는 인생이 없음을 압니다. 다윗은 고난당할 때, 언제나 입술과 마음 그리고 영혼을 지켜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인생은 결국 고난에 대한 반응을 어떻게 나타나내느냐 따라 결정되기에, 주의 긍휼을 구하며 하루를 시작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한억만 목사
강릉하누리교회


목-범람하는 물결 앞에서
본문 : 수 3:1~17
찬송 : 432장

여백 또는 공간미를 소위 '비움의 미학'이라고 한다.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을 온전히 비우신 분이라고 증언한다. 본문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 40년 여정을 마치고 마지막 관문인 요단강을 건너기 직전 상황이다. 이제 그 강만 건너면 꿈에도 그리던 가나안 땅에 이르게 되는데 그 강이 곡식 거두는 시기 곧 강물이 범람하여 언덕에까지 이르는 시기다. 그들은 지금 그 범람하는 물결 앞에 서 있다.
그 위기의 순간이 지도자 여호수아의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의 순간이었다. 깊이 기도한 지도자 여호수아가 담대하게 선포한다. "너희는 자신을 성결하게 하라. 여호와께서 내일 너희 가운데서 기이한 일들을 행하시리라." 하나님의 기이한 일을 위한 승부수는 바로 '성결'이다. 온전한 비움을 의미하는 히브리어 '카도시'곧 성결의 3대 의미는 무엇일까?
첫째, 태우다. 성결은 우리의 마음에 임한 절망감을 오직 성령의 불로 온전히 태워버리는 것이다. 그러나 그 태움이 결코 쉽지 않는 일이기 때문에 반복적인 학습과 훈련이 필요하다. 바울은 어떠한 처지에 처하든지 자족하기를 배웠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감사함으로 기도하라." 염려와 근심과 걱정 절망감 등 모든 어둠의 영들을 기도와 성령의 불로 태워 거기 빈 공간이 생기면 주님 친히 임하셔서 위대한 새로운 창조의 역사를 이루실 것이다.
둘째, 잘라내다. 여호수아는 이제 그들이 머물고 있는 요단강 가를 떠나라고 명령한다. 온전히 떠나기 위해서는 아프더라도 많은 것들을 잘라내야 한다. 특별히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아직도 버리지 못한 악한 습관들이 남아 있다. 불평, 원망, 우상숭배, 정욕 이러한 악습의 사슬들은 성령의 검 곧 주의 말씀의 검으로 온전히 잘라내므로 성결하게 된다. 우리 입술의 원망의 말이 소멸되고 감사와 찬양의 말로 채워지기 원한다. 하나님 보다 우선순위에 둔 모든 것을 우상으로 간주하여 자르고 정과 욕심까지도 십자가에 못 박는 깨끗하고 성결한 심령들 되기 원한다.
셋째, 구별하다. 성도들에게는 삶의 모든 영역에 구별의 선이 그어져 있어야 한다. 예수님은 성전을 청결하게 하신 성전의 주인이시다. 생각도 마땅한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아야 하고 언어에도 넘지 말아야 할 경계선이 있다. 음식, 걸음, 자리도 경계의 선을 넘지 않는 그 구별됨이 바로 참된 성결이다. 성결을 결단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놀라운 기적이 일어났다. 범람하는 물결 앞에서도 두려워하지 않고 법궤를 맨 제사장들이 순종하여 발을 강물에 잠글 때 그 강이 길을 열어 온 백성들이 육지같이 넉넉히 그 강을 건너게 되었다.

오늘의 기도
우리 앞에 놓인 범람하는 물결 앞에서, 오직 성결로 승부하여 승리하는 삶이 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이명철 목사
서광교회


금-때에 따라 다르게
본문 : 민 2:2~13
찬송 : 205장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물이 없는 곳으로 인도하셨다. 물이 없는 불편을 참지 못한 백성들이 모세와 아론에게 불평하기 시작했다. 하나님은 전지하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얼마나 불평을 잘하는 민족인지, 이스라엘 백성들이 물을 필요해 할 것도,  그리고 그곳에 물이 없다는 것도 아신다. 하나님은 전능하시다. 하나님은 물이 없는 사막에 물을 흐르게 하실 수도 있고 고이게 하실 수 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물이 없는 곳으로 이끄셨고 물도 준비하지 않으셨다. 왜 이스라엘을 물이 없는 땅으로 인도하셔서 원망을 들으신걸까?
첫째, 모세와 아론이 하나님께 엎드리기를 원하셨다. 이스라엘의 불평 앞에서 모세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음을 알게 된 모세는 회막으로 나아가 엎드린다. 모세의 엎드림은 자신들의 무능을 인정하는 것이다.
둘째, 하나님은 하나님께만 답이 있다는 사실을 알기를 원하신다. 모세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말씀하실 때까지 엎드렸다. 모세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일어섰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사람은 행할 때를 안다. 그 때는 말씀을 들을 때이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모세는 가능성을 타진하지도 않고 곧바로 반석으로 나아갔고 백성들을 불러 모았다. 그리고 손을 들어 지팡이로 반석을 두 번 내리쳤다. 그러자 물이 많이 솟아나오게 되어 회중과 그들의 짐승이 마시게 되었다.
셋째, 하나님은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백성들에게 보여 주시기를 원하셨다.  그러나 하나님은 모세와 아론에게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였다." "이스라엘의 목전에서 내 거룩함을 나타내지 아니하였다"라고 말씀하신다. 모두가 하나님을 믿고 행한 행동들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생각을 달랐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불평에는 침묵하셨다. 모세에게 반석을 향하여 "물을 내라"고 명령하라고 하셨다. 그런데 모세는 하나님의 명령대로 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반석에서 물이 나왔다. 모세와 아론의 잘못이 있었는데도 물이 나왔다. 그러나 하나님은 하나님의 거룩함을 나타내지 않았다고 하셨다.
왜 모세는 반석을 내리쳤을까? 출애굽기 모세는 반석을 쳐서 물을 내게 한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도 예전과 같은 방식으로 물을 내려 했던 것이다. 모세는 예전의 경험을 살려 시도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오늘은 그 때와는 다르게 말씀하셨다. 하나님이 이렇게 다르게 말씀하신 이유는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나타내시기를 원하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때에 따라 다르게 일하신다. 하나님은 같은 방법으로 일하시지 않는다. 그러므로 경험은 하나님의 일을 하는데 중요하지 않다. 하나님을 알고 신뢰함이 중요한 것이다. 하나님을 신뢰하고 때에 따라 다른 하나님의 방법을 구하자.

오늘의 기도
하나님의 뜻을 볼 수 있는 눈을 주옵소서. 때에 따라 다르게 일하시는 주님을 따라 가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최영선 목사
한울교회


토-보배를 담은 질그릇
본문 : 고후 4:5~10
찬송 : 449장

성경에서는 사람을 그릇으로 비유한 경우가 많다. 본문은 우리를 질그릇이라고 한다. 그릇은 그것을 만든 재질과 소재도 중요하지만 무엇이 담겨있는가가 매우 중요하다. 질그릇과도 같은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무엇을 담아주셨는가?
먼저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심령에 빛을 비추어 주셨다. 죄로 인해 어두워지고 하나님께 갈 수 없었던 우리에게 빛이 비추이게 되었다. 흑암 중에 있던 천지에 빛이 있으라 하시므로 어둠을 몰아내고 세상을 밝히셨던 하나님께서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어두워진 인간의 마음의 영적인 무지를 몰아내고 구원의 빛을 비추셨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의 영혼에 비추어 주신 것이다. 그로 인해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또한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지식을 갖게 되었다. 이러한 구원은 하나님께로 부터 온 것이고 구원에 있어서 인간이 무엇을 자랑하거나 어떠한 공로도 주장할 수 없는 근거이다.
둘째로 우리는 보배로우신 예수님을 담은 질그릇이다. 질그릇은 흙으로 만들어 구운 그릇으로서 연약하고 깨지기 쉬운 특성을 지닌다. 바로 우리 인간은 질그릇과 같이 육체의 한계와 연약성을 가질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우리를 구원하신 성삼위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계신다. 그로인해 예수의 생명이 우리 안에 있고,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 그렇기에 우리는 과거의 죄로 인한 정죄감이나 두려움에서 벗어나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회개한 죄에 대하여 기억하지 않으시고 정죄하지 않으신다. 즉,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우리를 해방하셨다(롬 8:2).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은 무엇을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큰 능력을 힘입어 하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짓누르는 정죄감이나 두려움을 떨쳐내고 담대히 하나님의 크신 능력을 힘입어 믿음의 전진을 해야 한다.
셋째로 우리도 주님과 함께 승리한다. 기독교는 복음의 역사 속에서 수많은 박해와 고난의 시기가 있었다. 그리고 지금도 지구 곳곳의 복음의 상황 속에서 박해 가운데 있는 성도들이 있다. 또한 우리 한국의 그리스도인들도 신앙생활을 하면서 사단의 역사와 공격에 욱여쌈을 당한 것 같은 답답한 상황들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십자가의 복음은 생명이다. 우리 예수님께서 사탄이 인간에게 가져다준 가장 극한 죽음의 권세를 이기고 승리하셨기 때문에 성도들의 가는 길은 주님과 함께 승리하는 길이다. 그러므로 성도는 주와 함께 받는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고 주를 위해 살아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가 가는 길은 보배이신 예수님과 함께 하는 승리가 보장된 길이며 생명의 길이기 때문이다.

오늘의 기도
우리는 질그릇과 같은 연약한 존재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강하시오니 하나님의 능력으로 우리를 도우시고 오늘도 믿음을 지키는 승리의 삶을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현숙 목사
푸른초장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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