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근리 진상규명을 위한 교계의 노력

[ 연중기획 ] 끝나지 않은 전쟁, 휴전에서 평화로 ⑦작은 연못

최샘찬 기자 chan@pckworld.com
2020년 07월 31일(금) 08:00
한국기독공보 2000년 5월 27일자 / 디지털 아카이브
1950년 미군이 한국인 양민 300여 명을 사살한 노근리 양민학살사건은 1990년대에 와서 교계의 노력으로 세상에 알려졌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를 중심으로 교계는 사건의 진상규명을 지속적으로 촉구했으며, 피해자들에게 위로를 전하고 평화 운동을 지속적으로 전개해왔다.

노근리 사건은 1994년 4월 고 정은용 씨가 유족들의 비극을 담은 '그대 우리의 아픔을 아는가' 실화 소설을 출간하며 알려지기 시작했다. 1999년 9월 미국 AP통신 보도로 전 세계에 알려졌는데 이를 위해 한국교회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NCCK 1997년 11월 노근리학살사건진상규명대책위원회(위원장:정은용)로부터 청원을 받고 12월 진상조사단을 파견해 생존자의 증언을 녹취하며 조사했다. NCCK는 1998년 4월 피해보상을 위한 청원서를 김대중 대통령과 법무부 장관에게 사건의 진상과 피해자에 대한 정당한 보상을 요구하는 탄원서를 제출했다. 또한 미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USA)를 통해 클린턴 대통령 앞으로 사건의 정당하고 조속한 해결을 촉구하는 청원서도 제출했다. 이후 1999년 9월 AP통신에 의해 전세계에 노근리 사건이 알려졌다.

한국기독공보 1999년 11월 27일자 / 디지털 아카이브
NCCK는 노근리 피해자들과 함께 한국과 미국에서 기자회견을 개최하며 사건을 국제공론화했다. NCCK는 1999년 10월 기독교회관에서 62개 시민단체와 함께 공동기자회견을 열고 진상규명과 함께 한미 행정협정의 개정을 촉구했다. 이어 11월 미국교회협의 초청으로 노근리 피해자 대표단 5명이 미국 클리브랜드 워싱턴 LA 등에서 열린 기자회견에 참석했다. 이 자리에서 일부 피해자들은 얼굴과 복부에 남은 총상을 보여주며 당시 참상을 고발했다.

2000년 NCCK 목요기도회가 재개했다. 1974년 민청학련 사건으로 NCCK 인권위원회가 조직되고 시작된 목요기도회는 유신체제 아래 집회 자유가 억압된 상황에서 독재 권력의 폭력성을 알리는 대안적 공간이었다. 20여 년 전 유신정권을 비판하는 성명서가 발표됐던 목요기도회가 다른 인권문제를 갖고 다시 전개됐다.

미국교회협은 2000년 5월 미국방성 장관에게 노근리 양민학살 사건의 공정하고 조속한 진상규명을 요청했다. 노근리사건대책위도 주한 미대사와 면담을 갖고 클린턴 미대통령에게 보내는 서한을 전달했다.

그러나 이에 대해 2001년 1월 한미 양국 정부는 양민학살을 실제적으론 부정하면서 사격 명령과 살인의 고의성을 발견하지 못한다고 주장했다. 클린턴 미대통령은 1월 노근리사건 피해자들과 한국 국민들에게 사과가 아닌 깊은 유감의 성명을 발표했다. 곧장 교계는 미 대통령 사과와 재조사를 촉구했고, NCCK는 2002년 한국전쟁 참전 미군으로 당시 노근리 현장에 있었던 미군의 증언을 확보해 성명을 발표했다.

2017년 11월 노근리를 방문한 미국장로교 / 한국기독공보 DB
이후 시간이 흘러 2017년 미국 교계의 최초 공식 방문이 이뤄졌다. 미국장로교(PCUSA)는 2016년 제22차 총회에서 '노근리 결의문'을 채택하고, 정부에 진상규명 및 사과를 촉구하는 진정서를 제출했다. 2017년 11월 미국장로교 한반도 평화순례단이 노근리를 찾아 유족들에게, 미군의 책임 인정과 사과 및 유감 표명, 적절한 보상, 미군 훈련 과정에 노근리 사건 정보 포함 등의 조치를 취하도록 미 대통령과 미의회에 제안한 결의문을 전달했다. 이어 순례단은 정세균 당시 국회의장을 만나 결의문을 전달했다.

한편 한국전쟁 70주년이 되는 올해 코로나19 사태로 '노근리 학살' 사건이 제대로 조명받지 못하고 있다. NCCK는 6월 미국 워싱턴 DC에서 노근리국제평화재단과 함께 한국전쟁 70년을 기억하는 화해예배와 평화기도회 등을 전개하려고 했으나 코로나19로 진행하지 못했다. 노근리평화공원에서 29일 제70주년 노근리사건 기념식도 당초 2000여 명이 참석하는 대규모 행사였으나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100여 명으로 축소됐다.

한국교회가 노근리 사건을 끈질기게 대처해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몰고 왔다. NCCK의 노력은 한·미 양국 정부가 진상조사를 시작하는 원동력이 됐고 해외언론이 관심 갖도록 결정적인 역할을 했으며, 노근리 사건이 결국 세계적인 인권문제로 부상했다. 코로나19를 맞아 예정된 관련 행사들이 기대 만큼 진행되지 못하지만, 교계의 꾸준한 관심이 필요한 시점이다.


최샘찬 기자

한국기독공보 1999년 11월 20일자 / 디지털 아카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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